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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크린] AOL과 타임워너, 세기의 잘못된 만남‘세기의 만남’은 어떻게 최악으로 향했나

뉴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대형 인수합병이 성사됐다. 누군가는 섣부르게도 ‘21세기 최대 이벤트’라고 했다. 인터넷과 미디어의 컨버전스 서막을 알리는 중대 사건이라는 논평도 뒤따랐다. 모든 미국인의 생활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2000년 타임워너와 AOL이 손을 맞잡았다. 타임워너는 초대형 미디어 기업이었다. AOL은 미국 최고 인터넷 회사였다. 스티브 케이스 AOL 창업주와 제럴드 레빈 타임워너 회장은 두 회사의 합병 소식을 전했다. 14년과 73년이라는 업력 차이는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인수 금액이 무시무시했다. 1650억달러(약 189조580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오갔다. 1년 전 보다폰이 만네스만을 인수할 때 들인 1486억달러(170조7400억원)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둘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합병 1년 만에 혹평이 뒤따랐다. “두 회사가 합병 이후 새로운 미디어 사업 개척에 실패했다.”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논평이다. 둘은 오래 만나지 못했다. ‘금세기 최악의 합병’이라는 평과 함께 근 10년 만에 갈라섰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 출처=뉴시스

400조원 가치 미디어·인터넷 공룡의 탄생

1999년 가을 레빈과 케이스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만났다. 중국 정부 건립 50주년 기념 행사장에서였다. 둘은 당시 합병에 관해 아무런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둘은 미국 뉴욕에서 다시 만났다. 합병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합병 제의는 AOL이 먼저 했다. 우호적 인수합병 형태를 유지하면서 유가증권 교환을 통한 인수 방식을 제안했다. 최종 결정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 1월 합병 발표 초기에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타임워너 주가가 하루에 40% 가까이 치솟았다.

결국 두 회사는 몸을 합쳤다. 회사 이름은 AOL 타임워너로 바꿨다. AOL이 합병회사 지분 55%를 갖는 조건으로 계약이 이뤄진 탓에 AOL이 타임워너를 인수하는 모양새였다. 어쨌든 두 회사는 직원 수 약 8만명에 시가총액이 3500억달러(402조1500억원)에 육박하는 회사로 다시 태어났다.

두 회사는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했다. AOL은 당시 인터넷접속서비스(ISP) 시장에서 50% 점유율을 확보한 선두 인터넷 기업이었다. 광대역 서비스에 대한 강력한 하부조직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강점이었다.

타임워너는 미디어 콘텐츠에 강했다. 타임워너가 거느리고 있는 CNN을 소비하는 이들은 10억명에 달했다. 타임워너가 발행하는 잡지 구독자는 1억2000만명에 달했다. 또 케이블 설비를 제공하는 타임워너 케이블은 AT&T에 이어 시장 2위 사업자였다. 점유율은 전체 20%에 달했다.

두 회사의 계산은 단순하지만 명료했다. AOL의 인터넷 서비스로 타임워너의 고품질 콘텐츠를 유통하면 어마어마한 시너지가 발휘될 것으로 내다봤다. 타임워너는 AOL 손을 잡고 올드 미디어에서 탈피해 인터넷 시대로 나아가고 싶어 했다. AOL은 타임워너의 콘텐츠가 이용자 확보에 따른 수익 극대화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출처=뉴시스

‘세기의 만남’에서 ‘잘못된 만남’으로

미몽에 지나지 않았다. AOL과 타임워너는 2009년 연말에 결별했다. AOL이 분리 독립해 뉴욕증권거래소에 재상장했다. 뒷맛은 씁쓸했다. 합병 당시 1600억달러(183조6500억원)에 달했던 AOL의 시가총액은 재상장 후 30억달러(3조4400억원)로 추락했다.

오히려 더 빨리 헤어졌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AOL 타임워너는 2002년에 무려 1000억달러(114조95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엔 주식가치가 2000억달러(229조9000억원)에서 750억달러(86조2100억원)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차라리 이때가 나았다.

두 회사가 갈라서기까진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일단은 성격 차이가 컸다. “합병 이후 타임워너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생활에 직면해야 했죠. 두 회사는 문화가 너무 달랐어요. 처음에 우린 그 차이를 너무 과소평가했죠.” 리처드 파슨스 전 타임워너 CEO의 진술이다.

AOL은 하이테크 중심 회사였다. 회사 복장은 캐주얼했다. 경영 스타일은 상부에서 통제하는 톱 다운 방식이었다. 또 주가 상승에 큰 의미를 뒀다. 반면 타임워너는 전통과 안정을 중시하는 회사였다. 복장은 전통적인 양복과 타이였고 조직 규모가 AOL에 비해 컸다. 주가보다는 조직적 성장에 더 중점을 뒀다는 후문이다.

합병회사의 인사 결정도 분란을 일으켰다. 합병회사 CEO는 합병 당시 타임워너 CEO였던 제리 레빈이 맡았다. 그러나 고위직 대부분은 AOL 출신들에게 돌아갔다. 경영진 사이에서도 혼선이 빈번했다. 이는 조직 전체의 실패를 야기했다. 조직 내 반목은 톱 다운 방식으로 흘러내려갔다. 심지어 임직원들은 서로를 증오하게 됐다.

당시 AOL의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분석도 있다. 타임워너는 벤처 거품이 급격히 빠지기 직전에 공교롭게도 ‘인터넷 기업’ AOL과 손을 잡았다. 그 시절 AOL의 매출 규모는 타임워너의 20%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기업가치는 AOL이 1750억달러(201조1600억원)로 타임워너(900억달러·103조4500억원)의 2배에 달했다.

그런데도 두 회사는 거의 동등한 조건으로 합병에 합의했다. 타임워너가 AOL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잘못된 평가였다. 인터넷 사용자가 초고속 인터넷으로 몰리기 시작한 시점에 사용자 대다수가 전화 접속 방식(모뎀)을 사용하는 AOL에 판돈을 걸었으니 말이다.

합병 조건도 결과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다. 미국 규제당국은 6가지 규제를 전제로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을 승인했다. 규제 내역에는 경쟁 케이블 사업자에 고속 서비스를 제공하고 AOL의 일부 서비스를 경쟁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2002년에 합병회사가 엄청난 금액의 벌금을 물게 된 점도 악재였다. 당시 <워싱턴포스트>가 AOL의 광고 수입 부풀리기 행태를 폭로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와 법무부 등의 조사를 받게 됐고, 벌금 탓에 금전적 손실을 입게 됐다. 이 사건으로 타임워너 출신 인력이 강한 불만을 제기해 AOL을 창업한 케이스가 회사를 떠나게 됐다.

무엇보다 시너지가 부재했다는 점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두 회사는 합병 이전에 통합 시너지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하지 못했다. 과대 포장된 이상론에 휩싸여 역사의 주인공이 되려 했다. 물리적 결합 이후에 화학적 통합을 위한 PMI(인수합병 후 통합)에 안일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결국 ‘세기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으로 끝나버렸다.

조재성 기자  |  jojae@econovill.com  |  승인 2016.05.06  06: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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