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마케팅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가들의 전략을 알지 못해서? 비용이 없어서? 필요성을 못 느껴서?

마케팅은 그저 가만히 놓아두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제 단순히 마케팅에 대한 관점뿐만 아니라, 마케팅이 실행되는 회사라는 조직 관점을 포함해서 마케팅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12가지의 이유를 파악해보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보자. 추가로, 이 글은 극히 평범한 수준의 마케터 관점에서 작성되었다. 평범한 마케터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 된다면, 회사와 마케터 모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Chapter 1. 마케팅은 고객만족? 사장님 만족!

오늘은 NPD* 보고가 있는 날이다. 나 평범한 과장(39)은 극히 평범한 수준의 마케터지만 마케터 인생에서 제대로 된 제품 하나는 꼭 출시해 보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 꿈을 안고 2년 전 ‘꿈꾸는 식품’의 우유 마케팅팀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우리 팀의 보고
차례가 되었고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한 PPT를 열고 발표를 시작했다.

“현재 출시 계획 중인 B milk, 즉 Beauty Milk입니다. 전에 보고드린 사항들 중 주요사항을 다시 정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유 빛깔 피부는 우유로’라는 슬로건으로 우유를 통해 피부 관리에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의 제품입니다.

현재 뷰티 시장은 기존의 여성 중심 시장에서 ‘그루밍족’이라 불리는 남성 시장도 생길 만큼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에 뷰티를 겨냥한 제품의 시장 성은 충분히 확보 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제품은 우유를 Base로 여기에 피부에 좋다고 알려진 채소들을 첨가하는 방식입니다.

자체 조사 결과,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피부 트러블 상황 세 가지는 1. 피부 건조 2. 피부 탄력 3. 다크서클입니다. 이에 이를 해결해주는 솔루션으로 건조한 피부에 좋은 아보카도, 피부 탄력을 올려주는 빨간 파프리카, 다크서클에 좋다고 알려진 브로콜리를 첨가해 제품을 출시하려고 합니다. SKU*는 총 6종으로, 제품별 180㎖, 750㎖로 각 2종씩 운영 예정입니다. 운영 품목은 시장성을 보아가며 늘려나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1차 보고 후에 FGI*를 실행했습니다. 메인 타깃 고객인 20대 초‧중반 여대생을 대상으로 행했고 전반적인 만족도와 구매 의사 모두 상당히 높았습니다. 최근 우유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생기긴 했지만, 우유 선택 시 미용에도 도움이 된다면 해당 우유로 구매하겠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어서, 뷰티 우유라는 신규 시장창출과 더불어 경쟁사의 시장점유율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참을 듣더니 사장이 말하길, 

“좋아, 좋아, 그래. 그런데 말이야, 저기에 우리가 최근에 밀고 있는 ‘저온 살균 30분’도 추가하면 어떤가? ‘저온 살균 30분, B Milk’ 괜찮은 것 같은데.” / “아, 네?”

순간적으로 너무나 당황했다.

“그게 나쁘진 않지만, 콘셉트를 뷰티로 잡았기에 ‘저온 살균 30분’을 추가하면 저온 살균 우유의 추가 제품으로 보일 수 있어서, 뷰티라는 콘셉트가 상당히 약화될 것 같습니다. FGI 반응도 뷰티라는 콘셉트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온 살균을 추가하려면 뷰티 콘셉트가 먼저 확실하게 자리 잡은 후에 프리미엄 급의 제품으로 저온 살균을 추가해 출시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자네 무슨 소리 하는 건가? 미용에 좋고 거기에 또 좋다고 알려진 ‘저온 살균’까지 추가하면 더 많은 고객들이 선택하겠지. B Milk 론칭과 동시에 저온 살균도 같이 알리면, 저온 살균 제품도 같이 판매가 올라갈 거고, 이런 게 바로 시너지 아닌가? 저온 살균에
미용 기능까지 갖춘 우유, 얼마나 좋아.”

그쯤 되니 회의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눈에 뻔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저온 살균 우유에 저 채소들을 붙여보라고, 그리고 패키지 디자인 봐봐.” / “네, 여기 1차 가안을 잡아봤습니다. 각 채소들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피부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담았습니다. FGI에서도, 사내 설문에서도 좋은 반응을 거뒀습니다.”

“아 그래? 음…. 어디 보자…. 평 과장, 자네가 디자인 의견을 냈나? / “아 저도 내고 디자인 팀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습니다.”

”자네 디자인 안목은 영 아닌 것 같아, 디자인 팀장, 당장 이거 디자인 다시 해. 우리 꿈꾸는 커피 있잖아, 그 디자인 콘셉트를 따라가라고, 왜 그 성공작을 두고 왜 엄한 디자인을 하고 있어. 평 과장, 내가 그 제품 론칭할 때 디자인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지 알
아? TV에 나오는 디자이너 불러다가 디자인시킨 거라고, 얼마나 좋아, 당장 디자인 수정해.”

‘아 그 4년 전 디자인을…. 산으로 가는구나.’

“그래, 소비자가, 출고가, 마진은 저 정도면 될 거 같고.” / “아, 사장님. 지금 말씀주신 저온살균을 베이스로 하면 원가는 더 올라갈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 소비자가를 올리면 소비자들의 가격저항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저온살균 우유의 적용을 막아보고자 작은 반항을 시도했다. 여태까지 봐왔던 사장님의 특성상 제품과 광고에다 제품의 장점을 있는 대로 다 적을 텐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차별화된 제품인지는 얘기도 못 하고 그냥 좋은 말만 다
적혀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알 수 없는 우유’만 또 탄생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평 과장, 그렇게 자신이 없어서 무슨 일을 하겠나, 답답한 소리를 하고 있어. 가격 올려.”
“예, 알겠습니다.” 괜한 반항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일단 그 정도로 하고, 그럼 출시는 언제로 잡혀 있나?” / “지금 7월 중순으로 잡아놨습니다.”
“그래 빨리 준비해서 고객들이 진짜로 만족할 만한 제품을 만들어 보라고.”

회의를 마친 심정은 답답했다. 이런 상황을 아예 예상 안 한 건 아니지만. 제품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기 때문이다. ‘저온 살균 30분’ 콘셉트가 강조되면 뷰티 콘셉트가 약해질 것이 뻔하고,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제품이 될 확률이 높아졌다. 거기에 디자인까지 4년 전 콘셉트로 가다니, 막막하기만 했다. 산으로 가는 제품을 어떻게든 다잡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용어해설>

NPD: New Product Development - 신제품 개발 

SKU: Stock Keeping Unit – 제품 관리를 위한 최소 구분 단위

FGI: Focus Group Interview – 집단심층면접으로 보통 6~10명의 참석자들이 모여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정해진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하고, 이를 통해 정보나 아이디어를 수집한다.

 

평범한 과장의 마케팅 제안:

일반적으로 ‘마케팅’하면 고객 만족을 추구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사장님 만족에 의해서 출시되는 제품들이 상당하다. 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회사에서 행해지는 ‘마케팅’은 회사라는 ‘조직’에 대한 관점이 필수이기에 ‘조직 측면’과 ‘마케팅 측면’ 2가지의 방향으로 개선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 조직 관점

“리더로서 중요한 건 ‘조직 구성원들에게 적절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만일 적정 목표가 주어진다면, 이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와 능력을 발휘해줄 것이다. 이때는 어설프게 참견하지 않아도 된다. 리더로서도 그만큼 편한 것이다. 하지만 목표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으면 직원들도 뭘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특별히 열의를 갖기 힘들다. 따라서 충분한 노력도, 일의 성과도 얻을 수 없다. 결국, 책임자로서의 역할은 ‘목표를 주는 데서 시작하고 끝난다’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사업은 사람이 전부다> 中 - 마쓰시타 고노스케 (파나소닉 창업주)

그렇다면, 여기서 얘기하는 ‘적절한 목표’란 어떤 것일까?

“내가 반복해서 외우는 주문은 집중과 단순함이다.” – 스티브 잡스

‘고객 만족’과 같이 애매모호하고도 막연한 목표가 아닌, ‘단순함’과 같은 목표를 내려준다면 어떨까? 어떤 제품을 출시하건, 프로젝트를 실행하건 어떻게 하면 더 단순화할 수 있는지를 준비단계부터 반영해 실행할 것이다. 이렇게 추구할 수 있는 일관된 목표가 주
어진다면 회사는 리더가 원하는 모습으로 방향을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케터에게 일관된 목표, 책임, 권한을 줘라

리더는 상대적으로 지식과 경험이 많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확률 또한 더 높다. 그렇기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더라고 하루가 48시간인 것은 아니다. 리더의 시간 역시 24시간으로 정해져 있기에 회사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모든 제품과
프로젝트에 신경 쓸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리더가 세부적인 모든 것을 관여하고 결정한다면 업무 담당자들은 처음에는 자기 의견을 개진하겠지만, 점차 자신의 의견대로 되는 게 없음을 깨닫고 시키는 일만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리더, 본인이 모든 것을 신경 쓰지 않으면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더 좋은 제품이 출시되고 프로젝트가 실행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해당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세부적으로 더 신경 쓸 수 있는 마케터에게 일관된 목표, 책임,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어떨까?

▶ 마케팅 관점

“집중의 법칙(The Law of Focus): 마케팅에서 가장 강력한 개념은 소비자의 기억 속에 하나의 단어를 심고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어떤 회사든 소비자의 기억 속에 단어 하나를 심고 그것을 소유할 방법을 찾아낸다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집중의 법칙’이다. 단순한 하나의 단어나 개념에 초점을 모으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마케팅 ‘희생’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 中 - 잭트라우트, 알리스

'1+1=2'이듯, 좋은 속성들이 다 합쳐지면 정말 좋은 무엇인가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마케팅에서는 좋은 속성들이 다 합쳐지면 그 합이 ‘0’이 될 수 있다. ‘저온 살균 30분’, ‘뷰티 밀크’ 모두 좋은 속성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들이 합쳐진다면 이도 저도 아닌 그저 좋은 제품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결국 모두 자기 제품이 좋다고 얘기하는 경쟁사 제품들과 아무런 차별화도 이루지 못한 채, 수많은 제품 중의 하나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모두를 다 만족시키려 든다면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 글에 하나 예외가 있다. 만약 리더가 스티브 잡스 수준의 능력자라면 그냥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겨라.
*이 글의 회사, 인물, 제품은 모두 가상의 설정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