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업체가 정부 규제로 인한 국내 제약업 성장 둔화를 벗어나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수출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한미약품처럼 기술수출을 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하기도 하지만 원료의약품(API) 수출에도 집중하고 있다. 그간 국내 제약업체들은 API 수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그 결과 매년 수출은 늘어나고 있고 국내 업체들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인도의 저가 원료의약품이 쏟아지면서 국내 의약품 시장으로 밀려오고 있다. 제약업체들의 성장 동력 중 하나로 손꼽히는 API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저가 제품과의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세계 원료의약품 시장, 연평균 6% 성장 전망

세계 원료의약품 시장 전망은 여전히 밝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리포트링커에 따르면 오는 2022년 원료의약품 시장 규모는 2000억달러(약 23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4년 약 1200억달러(약 138조원) 수준이었던 시장이 연 6.4%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어 원료의약품 시장뿐만 아니라 세계 의약품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전망이다.

원료의약품 시장이 가장 큰 규모로 자리 잡은 곳은 북미 지역이다. 다음으로 일본 시장도 크다. 최근에는 아시아·태평양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2022년까지 연평균 8%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원료의약품은 완제의약품을 제조하는데 사용되는 원료다. 사람에게 투여할 수 있는 의약품 바로 전 단계의 의약품이라고 보면 된다.

원료의약품 시장이 발달한 것은 제네릭 의약품 성장과 관련이 있다. 세계 원료의약품 시장에서는 전통적으로 유럽 제약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네릭 의약품 시장이 성장하면서 제약업체들이 약가 경쟁에 돌입하자 원가를 낮추기 위한 저가 원료의약품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중국이나 인도 등의 신흥의약품 시장의 원료의약품 제약사들이 주목을 받게 된 이유다.

이에 국내 제약업체들은 중국·인도의 저가제품들과 경쟁을 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인력을 줄이고 중국에서 원료를 수입해 정제만 파는 전략을 짜는 업체와 기술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고품질 제품에 주력하는 업체로 나뉘었다.

국내 원료의약품 시장 규모는 약 2조원 수준이다. 국내 원료의약품은 2011년 12.9% 자급률을 보이다가 2014년 33.6% 수준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완제의약품 제약사들은 원료 생산 전문 계열사로부터 원료를 공급 받거나 저가의 원료를 중국·인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 제약 선진국 수출에 집중

국내 제약사들은 일본·미국·중국·이탈리아·캐나다 등 주로 제약 선진국에 원료의약품을 수출하고 있다. 세계 원료의약품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과 유럽은 최근 의료비 억제 정책을 펼치면서 비용이 더 저렴한 중국·인도·한국·대만 제품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제약사의 원료의약품 수출액은 11억 6956만달러(약 1조 3400억원)로 전년대비 6.4% 증가했다. 한국제약협회에 따르면 같은 해 원료의약품 생산액은 2조 1390억원으로 전체 의약품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의약품 생산액에서는 그리 큰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수출액은 생산액의 41%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수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원료의약품 수출액은 지난 2012년 처음으로 10억달러를 돌파한 뒤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수출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 국가는 일본과 중국이다. 두 나라에 수출하는 원료의약품 비중은 2013년 기준 30% 수준이다.

일본의 의약품시장은 약 110조원에 달한다. 일본은 저가 원료가 나오더라도 자국 원료를 최우선으로 쓰고 다음으로 한국이나 대만 원료를 선호하는 성향을 보였다. 2014년 우리나라가 의약품 수출을 가장 많이 한 나라는 일본으로 그 중 원료의약품은 총 2억 2599만달러(약 2594억원)를 수출했다. 일본에 수출하는 원료의약품은 우리나라 원료의약품 총 수출의 19.3%를 차지한다.

국내 주요 원료의약품 업체로는 유한양행, 코오롱생명과학, 종근당바이오, 경보제약, 에스티팜, 대웅바이오 등이 있다.

유한양행은 2013년 국내 제약업체 최초로 원료의약품 1억달러(약 1148억원) 수출을 달성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자회사인 유한화학이 생산하는 30여종의 의약품 원료 중 95% 이상을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일본에 22개 원료의약품을 수출한다. 자사 전체 수출 중 일본에만 85%를 수출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가 제네릭 의약품 비중을 늘리는 정책을 펼치면서 제네릭 원료의약품 사업 성장이 기대를 받고 있다.

종근당 자회사인 종근당 바이오와 경보제약도 눈길을 끈다. 종근당 바이오는 국내 최대 규모(1500t)의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발효기술을 갖고 있다. 발효와 정제기술은 원료의약품 산업에서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 중 하나로 손꼽힌다. 경보제약은 1996년 종근당그룹에 편입된 API 전문기업이다. 전체 매출 중 45.4%가 해외에서 나오는 것인데다 일본과 유럽에 각각 67.1%, 4.2%의 수출을 이뤄내고 있다.

동아쏘시오홀딩스 계열사인 에스티팜은 지난해 상반기 원료의약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해 482억원을 달성해 업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웅바이오는 대웅제약 제품인 '우루사'의 주원료 우루소데옥시콜릭에시드(UDCA)를 특화했다. 이에 이탈리아 PCA, 일본 미쓰비시와 함께 세계 3대 UDCA 생산업체로 인정받게 됐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중국·인도 저가공세...품질 경쟁력 높여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국내 원료의약품 생산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저가 원료의약품의 위협을 받고 있다.

글로벌 원료의약품 산업에서 저가 제품으로 경쟁력을 높여온 국가는 중국과 인도다. 국내에도 중국·인도 제품들이 물밀듯 밀려오고 있다. 두 나라 제품은 국산에 비해 약 20~30% 정도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2014년 원료의약품 수입 규모는 전년 대비 0.4% 증가하는데 그쳤지만 중국·인도산 제품 수입 규모는 각각 5.8%, 13.9% 증가했다. 국내 원료의약품 시장에서 중국·인도산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09년 13.9% 수준이던 것이 2014년 22.9%로 매년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과 같은 규제로 수익성이 악화된 제약사들이 원료의약품을 더 저렴한 수입산으로 바꾸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국내 원료의약품 업체들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의약품 산업은 처음에는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낮은 인건비를 내세워 가격경쟁력으로 성장해왔지만 최근에는 품질을 내세울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평가다. 중국은 이제 글로벌 기업들과 비슷한 수준까지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중국 원료의약품 품질이 많이 나아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중국·인도산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세계 원료의약품 시장의 35%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은 의료비용 억제 압력이 커지면서 저가의 인도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식품의약국의 DMF(원료의약품등록제도)에 등록하기까지만 2~3년 이상이 걸릴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기로 유명하다. 물론 한 번 이 진입장벽을 넘어서면 대량 수주가 가능해지고 단가도 높아져 제약사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세계 의약품 생산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인도는 미국 FDA 승인을 받은 연구소를 세계 여러나라에 보유하고 있으며 제약사들의 최선호국으로 꼽힌다고 알려져 있다.

제약 전문가들은 원료의약품 시장이 국내 제약사들의 수익성에 도움이 되고 성장 전망도 좋은 만큼 저가 제품을 제공하는 중국·인도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전략을 잘 세워야한다고 지적했다.

그 전략으로 가격 경쟁력을 선택하는 것 보다는 품질 경쟁에 더욱 집중하고 포트폴리오 차별성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격 경쟁에서는 중국·인도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원료의약품 시장 점유율을 넓히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R&D가 이뤄져야 하고 고품질의 원료의약품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특화를 이뤄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래도 품질 검증이 까다로운 미국·유럽·일본 등의 선진국을 중심으로 맞춤형 포트폴리오와 마케팅 전략을 짜야 한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