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D 프린터 기술이 화제다. 시제품 제작뿐만 아니라 심지어 3D 프린터로 수술 부위 모형을 만들어 수술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까지 개발되면서, 3D 프린터는 갈수록 그 응용 분야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3D 프린터는 금형이나 선반과 같은 공작 기계 없이도 물체를 간편하게 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물론 획기적인 기술이지만, 이제는 유형물조차 인터넷을 통해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 더 큰 의의가 있다. 종래에는 주로 사진, 음악, 동영상과 같은 ‘정보’만 인터넷상에 공유할 수 있었을 뿐 ‘유형물’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3D 프린터가 등장하면서 이제는 3D 모델링 데이터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3D 프린터를 통해 소량의 제품도 손쉽게 제작할 수 있게 되었고, 3D 모델링 데이터를 전송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유형물을 손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3D 프린터(출처 : www.flickr.com)]

3D 프린터 모델링 데이터에 관한 표준 형식인 STL(Stereo Lithography) 파일[1]을 공유하는 사이트도 점차 그 규모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외국에서는 이미 Thingiverse 및 Shapeways와 같은 공유서비스 플랫폼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고, 국내에서도 3d make, 3d market 등 여러 3D 도면 공유사이트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처럼 인터넷을 통한 공유의 대상이 ‘유형물’로 확장되면서 3D 프린터를 통한 저작권,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Thingiverse 홈페이지(출처 : www.thingiverse.com)]

 

[왕좌의 게임 포스터(좌측) 및 휴대폰 거치대 모형(우측)
(출처 : www.trademarkandcopyrightlawblog.com)]

아직 국내 사례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해외에서는 3D 프린터를 통한 지식재산권 침해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페르난도 소사(Fernando Sosa)는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 등장하는 ‘강철 왕좌’를 본뜬 아이폰 거치대를 3D 도면으로 만들어 이를 3D 도면 공유 사이트인 Instructables에 등록했는데, <왕좌의 게임>을 방영하는 HBO가 지적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제품 판매와 도면 공유를 중단할 것을 요청했고, 결국 페르난도 소사는 이에 응했다.

[미켈란젤로 상(좌측) 및 3D 모형(우측)

(출처 : www.3dprintingprogress.com)]

다른 사례도 있다. 제리 피셔(Jerry Fisher)는 어구스타나 대학교(Augustana College) 캠퍼스에 전시되어 있는 미켈란젤로 상을 수백 차례 사진으로 촬영한 후, 이를 기초로 미켈란젤로 상을 3D 도면으로 제작해 Thingiverse에 등록했다. 그러나 이를 발견한 어구스타나 대학 측은 저작권법 위반을 이유로 제리 피셔에게 해당 도면을 인터넷상에서 즉시 삭제할 것을 요구했고, 제리 피셔는 이에 따라 도면을 삭제했다.

 

저작권법에 따른 검토

3D 프린터와 관련해 저작권법상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이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먼저 3D 도면, 즉 STL 파일의 법적 성격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3D 도면은 일반적으로 (ⅰ) 기존의 유형물을 3D 스캐너로 스캔(Scan)하는 방법, (ⅱ) 기존의 유형물을 기초로 3D 모델을 디자인하는 방법, (ⅲ) 기초가 되는 유형물이 없이 3D 모델을 창작하는 방법, 총 3가지 방법에 의해 생성될 수 있다. STL 파일의 법적 성격 역시 이에 따라 달라진다.

먼저 기존의 유형물을 단순히 스캔하는 경우에는 기존 유형물이 저작물인지 여부에 따라 STL 파일의 법적 성격이 달라진다. 예컨대 저작물인 ‘헬로키티(Hello Kitty)’의 피규어를 스캔한다면 그 3D 도면 역시 저작물일 것이고, 저작물이라고 볼 수 없는 ‘사과’를 스캔한다면 그 3D 도면 역시 저작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스캔 대상물이 저작물이라면 3D 스캐너를 이용해 이를 3D 도면으로 변환하는 행위는 저작권법상 ‘복제’에, 3D 도면을 인터넷에 업로드 하는 행위는 ‘전송’에 해당한다. 따라서 원저작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에 대한 3D 스캐너를 이용해 3D 도면을 제작하거나 그 도면을 인터넷상에 공유하는 행위는 모두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한편 스캔 대상물이 저작물이 아니라면 당연히 저작권 침해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이하에서는 저작물로 인정될 수 없는 유형물에 대해서는 별도로 논의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기존의 유형물을 기초로 3D 모델을 디자인하는 경우 기존의 유형물은 원저작물이 되고 3D 도면은 그에 대한 2차적 저작물이 된다. 그러나 2차적 저작물의 작성권 역시 원저작권자에게 있으므로, 원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3D 도면을 작성하거나 이를 공유하는 행위는 모두 저작권 침해가 된다. 위 사례에서 ‘강철 왕좌’를 본뜬 휴대폰 거치대의 3D 도면과 미켈란젤로 상에 대한 3D 도면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기초가 되는 유형물 없이 디자이너가 3D 도면을 작성하는 경우 이는 원칙적으로 새로운 저작물로 평가될 수 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저작권 침해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3D 도면이 추후에 다른 저작물과 실질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에는 여전히 저작권 침해가 문제될 수 있다.

한편, 저작물로 인정될 수 있는 유형물에 대한 3D 도면을 작성하는 행위가 언제나 저작권 침해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목적으로 적법하게 구매한 제품에 대해 3D 도면을 작성하는 행위는 저작권법상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로서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특허법 및 디자인보호법에 따른 검토

특허권에 의해 보호되는 특허 제품을 3D 도면으로 변환하거나 이 도면을 인터넷상에 업로드 하는 행위에 대해 특허 침해가 성립할 수 있을까? 특허 침해는 특허 발명을 ‘실시’하는 때, 즉 특허 제품을 생산, 양도, 대여 또는 수입하거나 그 물건의 양도 또는 대여의 청약(양도 또는 대여를 위한 전시를 포함함)하는 때 성립한다(특허법 제2조 제3호). 따라서 3D 도면을 이용해 특허 제품을 ‘프린트’한다면 특허 침해가 성립할 수 있을지 몰라도, 특허 제품에 대한 3D 도면을 작성하는 행위나 3D 도면을 인터넷상에 업로드하는 행위를 ‘특허 제품의 생산’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특허 침해는 ‘업으로서’ 특허 발명을 실시할 때만 성립한다(특허법 제94조). 즉, 개인이 3D 도면을 다운로드한 후 가정에 비치된 3D 프린터를 이용해 특허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이는 특허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어떤 회사가 특허 제품에 대한 3D 도면을 작성한 후 소비자에게 3D 도면을 판매함으로써, 소비자로 해금 3D 프린터로 특허 제품을 출력할 수 있도록 하더라도 특허 침해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된다.

한편 특허 발명을 직접 실시하지 않더라도, 특허 제품의 생산에만 사용하는 물건을 생산, 양도, 대여 또는 수입하거나 그 물건의 양도 또는 대여의 청약을 하는 행위는 특허 침해로 간주된다(특허법 제127조). 이를 이른바 특허의 ‘간접침해’라 한다. 3D 도면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특허 제품을 제작하는 데에만 사용되므로 3D 도면을 인터넷상에서 전송하는 행위가 특허의 간접침해에 해당한다고 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특허법상 간접침해는 특허 제품의 생산에만 사용하는 ‘물건’을 양도하는 경우에 성립하는데, 3D 도면 파일을 특허법상 ‘물건’으로 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디자인보호법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있다. 디자인권의 침해는 디자인에 관한 ‘물품’을 생산, 사용, 양도, 대여, 수출 또는 수입하거나 그 물품을 양도 또는 대여하기 위해 청약하는 경우에 성립하는데(디자인보호법 제2조 제7호), 3D 도면을 이용해 물품을 출력하는 경우에는 디자인권 침해가 성립할 수 있을지 몰라도(다만, 이 경우에도 소비자가 개인적으로 출력하는 경우에는 디자인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3D 도면 자체는 ‘물품’이라 볼 수 없으므로 3D 도면을 제작하거나 인터넷상에 전송하는 행위를 디자인권 침해라고 보기 어렵다.

 

상표법에 따른 검토

샤넬 상표에 대한 3D 도면을 작성해 인터넷상에 유포하고, 그 도면을 다운로드한 개인들이 3D 프린터로 상표를 출력해 자신의 가방 등에 부착하고 다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샤넬 상표를 출력해 제품에 부착한 개인들에게는 상표권 침해가 성립할 수 있지만, 많은 수의 개인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결국 3D 도면의 유포를 금지할 수밖에 없다. 3D 도면을 작성하거나 도면을 유포하는 행위는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이라 볼 수 없으므로 상표권 침해라고 보기 어렵다(상표법 제2조 제7호). 3D 도면을 등록상표를 위조하기 위한 ‘용구’로 보아 상표권에 대한 ‘간접침해’로 볼 여지도 있기는 하나(상표법 제66조 제1항 제3호), 명확하지는 않다.

 

제조물 책임법에 따른 검토

3D 프린터는 지적재산권법 외에도 다양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제조업자는 제조물 책임법에 따라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 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이를 배상해야 하나, 3D 도면만을 유포한 자에게 제조물 책임법이 적용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더구나 3D 도면이 차례로 유포되는 경우 최초 유포자를 찾아 책임을 추궁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상에서는 3D 프린터의 등장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지적재산권법에 관한 문제점을 살펴보았으나, 3D 프린터의 적용 범위가 확대될수록 의료법이나 관세법 등 다양한 법령에 따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3D 프린터의 응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만큼 그 추이를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