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IBM

배우이자 가수인 양동근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는다. 휴대폰이 벽돌 크기다. 2000년대 초반 MBC에서 방영된 시트콤 ‘뉴 논스톱’의 한 장면이다. TV 너머로 그 장면을 보던 우린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 포인트는 휴대폰의 크기에 있다. 당시 그렇게 커다란 휴대폰을 사용하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휴대폰은 점점 얇아지고 가벼워졌다. 두께 5mm 이하에, 무게가 100g 남짓인 제품들이 우리 곁에 있다.

기술의 진보다. 휴대폰 부문에서만 기술 진보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휴대폰과 마찬가지로 TV도 가까운 과거에는 지금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브라운관 TV의 경우 거대한 뒤통수 때문에 여유 공간이 충분히 있어야지만 설치가 가능했다. 지금은 종이처럼 얇고 운동장처럼 거대한 TV가 나오고 있는 시대다.

전자기기는 첫 발명 이후 기술 발전을 거치면서 아담해지기 마련이다. 부품이 소형화되면서 제품이 작아지는 것이다. 한계치 혹은 적정 사이즈가 될 때까지 작아지고 가벼워진다. 이제 막 상용화 단계를 밟고 있는 기기가 충분히 아담하지 않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최근 사례 중 하나는 가상현실(VR) 헤드셋이다. 가상현실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꼭 필요한 장비다. 안경처럼 눈앞에 착용한다. 소비자용 제품이 출시되기 시작한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아직 가상현실 헤드셋은 충분히 작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상현실의 현실은 목디스크?

시중에는 다양한 가상현실 헤드셋이 나와 있다. 가상현실 헤드셋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스마트폰과 연결해 사용하는 제품이 있는가 하면 PC나 게임기와 연결하는 제품이 있다. 후자가 더 진짜 같은 현실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고성능 제품인데 현재 출시된 제품은 모바일 연동 제품이 대부분이다.

모바일 연동 가상현실 헤드셋은 기어VR이 대표적이다. 갤럭시 스마트폰 프리미엄 라인업과 연결해 사용 가능하다. 다른 브랜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면 사용이 불가능하다. 중국의 폭풍마경 시리즈나 구글의 카드보드도 있다. 둘은 ‘저렴한 가격’이 미덕인 제품들이다.

PC나 게임기와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가상현실 헤드셋은 이제 막 출시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자회사 오큘러스VR의 ‘오큘러스 리프트’는 지난 3월 말에 출시됐다.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플스)4과 연결해 사용 가능한 소니 플스VR은 예약판매를 진행 중이다. 스마트폰으로 유명한 HTC와 게임 회사 밸브가 힘을 모아 만든 ‘바이브’는 4월 중에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이 제품들의 무게는 400~600g 사이다. 기어VR의 경우 318g이지만 스마트폰과 결합하면 500g에 가까워져 별반 차이가 없다. 크기는 제품들 대부분 양동근의 휴대폰처럼 큼직하다. 헤드셋을 착용하면 머리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연스럽게 목뼈와 인대에 무리가 가게 된다.

가상현실 헤드셋을 잠시 체험해본다고 목에 엄청난 무리가 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매일 같이 몇 시간씩 가상현실 영상을 보고 게임을 한다면 분명 목에 무리가 갈 것이라고 의사들은 말한다.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 쏠리니 고개가 숙여지게 된다. 이때 목이 받는 하중은 평소의 5배 이상으로 높아진다.

이런 하중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목디스크를 야기할 수 있다고 의사들은 경고한다. 또 각종 통증은 물론 거북목·일자목과 같은 VDT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몸이 뒤로 젖혀지는 소파나 의자에서 가상현실을 즐길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소형화·경량화’ 화두…누가 선점할까

업계에서는 가상현실 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보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는 올해 가상현실 헤드셋 출하량 규모가 1400만 대 수준일 것으로 내다봤다. 2020년에는 3800만 대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숙제들 남아있다. 그 중에 하나가 제품 소형화와 경량화다. 이는 사용자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여 사용자가 조금 더 긴 시간 가상현실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유도할 것이다. 콘텐츠를 즐기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가상현실 관련 업체의 수익 극대화에 도움이 된다.

물론 다른 숙제도 쌓여 있다. 일단 고사양 가상현실 헤드셋은 충분히 저렴하지 않다. 일부 사용자가 가상현실 환경에서 멀미를 호소하는 등의 문제도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콘텐츠를 충분히 확보해 수급 체계를 효율화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현실과 가상을 혼동하는 리셋 증후군·리플리 증후군 등에 대한 대비도 요구된다.

가상현실 헤드셋 소형화 과제의 경우 몇몇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 LG전자는 무게가 118g에 불과한 제품인 LG 360 VR을 공개했다. 모바일 기반 헤드셋인데 다른 제품들과 달리 스마트폰을 제품에 끼우는 방식이 아니다. 대신에 USB-C 케이블로 연결하는 방식이라 다른 제품에 비해 가볍다. 더구나 쉽게 벗고 쓰는 고글 형태로 만들어 휴대하기도 편리하다.

▲ 출처=LG전자

최근 중국의 스타트업 도도테크놀로지는 선글라스 형태 가상현실 헤드셋을 공개했다. 토마스 리 도도테크놀로지 CEO는 중국 선진에서 열린 IFA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직접 ‘V1’을 소개했다. 경량화·소형화가 업계 화두인 만큼 많은 관심이 쏠렸다.

그는 자신만만했다. “삼성전자, 소니, 오큘러스VR, HTC 제품은 무게가 300g 이상입니다. 최고의 VR 제품은 가벼워야 합니다. V1은 계란 하나의 무게인 78g에 두께는 16mm에 불과합니다. 겉모습은 선글라스와 구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다만 발표 현장에서 공개한 제품은 개발 단계의 모형 제품이었다. 리 CEO는 제품의 세부사항을 묻는 질문에 비밀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V1 모형을 소개하던 중 안경 한쪽 다리가 빠지는 웃지 못할 장면도 연출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도도가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개발을 끝내지도 못한 제품을 무리하게 공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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