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의 내부 문서가 공개되면서, 각국의 정치인들과 유명인사들의 조세 회피 의혹으로 전 세계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자신의 이름이 공개된 유명인사들은 밀려드는 비난과 질타에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파나마 페이퍼의 공개로 난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또 있는데, 바로 배우자들에게 이혼 위자료를 주지 않기 위해서 조세 회피 지역으로 돈을 빼돌렸던 사람들이다.

보스턴글로브는 이들 중 한 명인 성형외과의사 마이클 브랜너의 사례를 공개했다. 브랜너는 28년간 결혼생활을 한 아내가 이혼소송을 제기하기 직전, 재산 300만달러를 자기앞수표로 바꾼 후 코스타리카로 날아갔다. 그는 코스타리카에서 계좌를 개설해 입금하고, 가지고 갔던 귀금속은 은행 개인금고에 보관한 후 다시 파나마로 이동해서 유령기업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했다.

이후 코스타리카의 계좌에서 돈을 파나마 계좌로 옮기는 등 총 460만달러의 재산을 파나마로 이동시켰다. 브랜너는 이혼소송에서 보유 재산이 모두 투자에 들어간 상태라고 주장했으며 이후 투자가 실패해서 돈이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는 모두 아내에게 위자료를 적게 주기 위한 ‘꼼수’였다. 결국 파나마 페이퍼가 공개되면서 그의 수법도 들통나게 되었고, 위자료 금액을 줄이기는커녕 사기와 세금포탈 혐의로 48개월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부유층 가운데서는 이혼소송 시 위자료를 줄이기 위해서 재산을 축소하거나 조세 회피 구역으로 옮기는 것은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파나마 페이퍼에서는 브랜너 외에도 여러 명의 부유층들이 현금이나 귀금속, 고가 예술작품 등을 파나마로 빼돌려 배우자가 재산 분할 시에 청구할 수 없도록 한 사례가 여러 건 발견됐다.

조세법을 위반하면서까지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것은 이들이 내야 하는 위자료의 액수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혼 위자료는 부부가 이혼한 후에도 결혼 전과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금액을 지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즉, 맞벌이가 아닌 외벌이 가정의 경우에도 이혼 후에 직업이 없는 배우자가 결혼 시와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위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온 측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유명인들의 과거 이혼 위자료를 보면 그 수치가 어마어마한데 농구 황제로 불리던 마이클 조던이 2002년 이혼할 당시 전부인 주아니타에게 준 1억6800만달러,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스캔들을 일으킨 후 부인에게 이혼 위자료로 지불한 1억달러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중산층 가정도 개별 소득 수준에 따라서 돈을 덜 버는 배우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하기 때문에 이혼 가정들 중에 재정 문제로 허덕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다행스러운 소식이 있는데 미국의 이혼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시간대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1990년대에 결혼한 부부의 70%가 15년간 이혼하지 않았으며 2000년대에 결혼한 사람들의 15년간 결혼 지속비율은 이보다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결혼한 부부들은 결혼 15년을 지속한 비율이 65%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실제로 미국인들이 밥 먹듯이 이혼을 한다는 선입견이 자리 잡은 것은 70년대와 80년대의 이혼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 고학력자의 경우 이혼율이 낮아졌다. 2000년대에 결혼한 학사학위 이상의 부부는 결혼 후 7년 사이에 이혼 비율이 11%이지만, 학사 학위가 없는 부부의 경우 17%로 70~80년대와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율이 전반적으로 감소한 이유는 결혼을 늦게 하면서 결혼에 대해서 환상을 갖거나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는 것이 줄어들었고, 부모의 주선이 아닌 연애결혼이 절대적으로 높으면서 결혼 전에 상대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높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교육 수준이 낮은 부부의 경우 남편이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많아서 실업이나 경제위기 등으로 문제가 생기면 이혼건수가 늘어났다고 미시간대 측은 설명했다.

 

맨해튼 컬처기행

위키피디아

앤디 워홀이 다니던 나이트클럽

브로드웨이 극장 스튜디오54는 다른 극장에 비해서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다. 1927년 처음 극장이 세워졌을 때는 극장주 포춘 갈로의 이름을 따서 갈로 오페라하우스로 지어졌고 첫 공연작은 <라보엠>이었다.

이후 30년대에 뉴욕시의 페더럴 뮤직 씨어터로 이름과 주인을 바꾼 극장은 1939년 뉴욕 극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1943년 방송국 CBS가 극장을 사들여서 스튜디오52로 이름을 개명하고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1976년 CBS가 스튜디오52를 매각하고 나서자 비즈니스맨 스티브 루벨과 이안 슈라거가 인수, 1977년 나이트클럽으로 탈바꿈해서 재개장했다.

‘스튜디오54’ 나이트클럽은 70~80년대 디스코문화를 주도하는 장소였으며 당시 주요 고객으로는 앤디 워홀, 믹 재거, 마이클 잭슨, 캘빈 클라인, 토미 힐피거 등이 있다. 스튜디오54는 워낙 유명세를 타서 1998년 극장의 이름을 타이틀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1993년 극장은 ‘리츠’로 이름을 바꾸고 콘서트 전용 극장으로 변모했다. 이후 다시 이름을 스튜디오54로 바꾼 극장은 뮤지컬과 연극을 올리면서 극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첫 공연 작품은 <캬바레>였으며 이후 <고도를 기다리며>, <조지와 일요일 공원에서> 등의 작품이 공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