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일하던 때의 그 일을 필자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전시 미술 저작권과 관련된 논쟁이었는데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는 수익을 위해 작가가 그려낸 전시 작품의 이미지로 아트상품을 만들고 판매해서 계획했다. 그런데 애초에 그 계획에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 비용은 고려되지 않은 것. 단지 ‘우리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인데 당연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작가는 당연히 자신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며 나섰고 그 사이에서 의견은 충돌했다. 당시 필자는 상사인 큐레이터의 행동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보복(?)이 두려워서 작가의 편에 서지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이후에 필자는 필요를 느껴 저작권을 공부했다.

최근 ‘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한국의 이명호 작가가 자신의 작품 일부를 무단으로 도용하고 변형해 사용했다며, 유명 패션 디자이너 마리 카트란주를 상대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연방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하고 소송 중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그의 변호사는 “저작권 침해 행위가 주로 발생한 장소가 미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이미지가 마리 카트란주의 ‘마리 A to Z’ 컬렉션 중 알파벳 T에 해당하는 반팔 티셔츠와 가방에 일부 도용됐다고 주장했다. 소송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디자이너는 그 상품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소송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는 지켜봐야겠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싶다.

논란이 된 이명호 작가는 자신만의 화풍을 가진 사람이다. 자신만의 생각과 이미지를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에서는 여느 작가와 마찬가지지만 그는 작품을 제작하는 독특한 방식을 갖고 있다. 캔버스를 놓고 그곳에 일상의 물체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나무 뒤에 캔버스천을 설치하고 사진을 촬영해 일상의 물체에 작품을 옮겨놓는 듯한 제작 방식을 구사한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나쳐가던 나무들의 변화를 일깨워준다. 봄이 와 벚꽃 잎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순간, 그 나무를 보는 때때로 다른 우리의 시각을 작품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그는 나무를 잘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의 역할은 계절과 닮아 있다. 나무의 사계절을, 그 변화를 기다렸다가 포착해 보여준다. 이명호 작품은 이미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인정받아 뉴욕의 요시 밀로 갤러리에서 전속작가로 활동했다.

이명호 작가와 마리 카트란주, 마이클 케나 작가와 대한항공, 권경엽 작가와 미스에이 등 비슷한 에피소드가 업계 안팎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큐레이터, 디자이너, 기업마저도 작가들의 작품을 도용하거나 무단으로 변경하여 사용하기가 너무 쉬운 세상에 살고 있다. 창작물에 대한 권리 보호와 관련된 법으로는, 예술 작품과 관련된 대부분의 창작권을 보호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을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을 악용하여 키치적인 작품으로 포장하고, 약간의 변경과 차용만으로 다른 작품이라고 주장한다면 법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또한 유명 작가가 ‘전시를 위해’라는 명분을 내세우거나 자신의 권위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힘없는 작가들의 저작권을 무시하는 것도 일상화돼 있다.

비교적 음악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저변화되어 있고, 작곡가도 가수도 저작권으로 발생되는 수익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술의 저작권은 음악의 저작권보다 약하고 미비한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작가들도 발 벗고 자신의 권리를 찾는 데 힘써야 할 때가 아닌 가 싶다. 그림으로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외치는 것을 넘어서, 그림으로 먹고 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