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중국은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다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한자문화권의 중심인 중국은 장기간 우리보다 모든 영역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는 상태였으나, 새로운 시대의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최근 수 십년은 한국이 몇몇 영역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며 나름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16년. 우리는 믿었던 주력산업의 붕괴로 또 한 번 한자문화권의 중화제일주의에 일격을 당하고 있다. 중국의 역습이다.

"이미 따라잡혔다"
최근 반도체 업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국내 회사들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출렁이는 가운데 중국 반도체 굴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마이크론(Micron Technology, Inc.)과 샌디스크(SanDisk Corporation) 인수를 시도하던 칭화유니그룹이 그 중심에 있다. 칭화유니는  2013년 자국의 스트레드트럼을 인수하고 2014년 알디에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RDA Microelectronics)까지 합병했고 대만의 미디어텍을 손에 넣었다.

그 기세를 몰아 미국의 반도체 경쟁력까지 장악하려고 시도했다. 샌디스크의 경우 메모리 반도체의 핵심 중 하나인 낸드플래시 기술력을 보유한 상황에서 또 다른 업계 강자인 일본의 도시바와 합작공장을 운영하던 상태였다.

만약 이 거래가 성사됐다면 칭화유니그룹은 낸드플래시가 주로  사용되는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 시장의 패권을 쥔 삼성전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칭화유니는 지난해 말 국내 SK하이닉스 인수를 타진하기도 했다.

물론 미국 반도체 기업 장악은 기술유출을 걱정한 미국 당국의 견제에 가로막혔으나, 반도체에 대한 중국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핵심적인 사례다. 샌디스크와 마이크론 인수가 불발로 끝났지만 끝내 미국 반도체 기업 지분 일부를 확보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13일(현지시각) 칭화유니가 미국의 래티스 반도체 지분 6%를 사들인 사실을 공시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몹시 신경쓰이는 지점이다.

현재 중국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를 연간 2300억 달러라는 거금을 통해 수입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중국 반도체 시장의 매출규모가 3015억 위안(약 54조 원)에 달하지만 실질적인 자체 생산율은 약 10%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반도체 중심의 핵심사업에 전력을 투입하고 있다. 국영기업까지 총동원되어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반도체 자체생산율 40%, 2025년까지 7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10년간 1조위안(약 182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0년 7대 전략적 신흥산업에 반도체 산업을 포함시킨 중국 정부는 2014년 6월 24일 공신부가 정식으로 '국가 반도체산업 발전 추진 요강'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2020년까지 반도체 산업 연평균 20% 성장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설계분야에 있어 제조 분야는 16나노 및 14나노 대량생산, 후공정 분야는 세계 최고수준을 달성한다는 복안이다.

현재 중국 정부는 반도체 시장 전반을 장악하기 위한 맹공을 거듭하고 있다. 칭화유니를 중심으로 설계에 RDA, 제조에 동방국신 및 SMIC, 후공정에 동복미전 등 다양한 기업들을 내세우며 촘촘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설계 및 제조, 후공정 등 반도체 산업의 유기적인 '체인'들을 적절하게 육성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약한 소재 및 제조분야를 키우는 한편 매출액 기준 상위 50개 기업 중 총 10%를 보유한 설계의 경우 강력한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후공정은 이미 글로벌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24일 칭화유니가 지방정부와 사모펀드 등으로 약 300억 달러를 조달받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공략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힘입어 칭화유니그룹은 지난해 매출 21억 달러의 10배에 달하는 200억 달러의 매출을 자신하고 나섰다. 이러한 움직임에는 산업의 쌀인 반도체를 장악하기 위한 중국 정부 차원의 야망이 깃들어 있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현재 한국기업이 주도하던 LCD 사업의 주도권은 중국에 넘어갔다는 것이 중론이다. 중국 최대 LCD 제조사인 BOE는 20조원을 투자해 안후이성 허페이에 10.5세대 패널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시야를 넓게 보면 샤프를 인수한 폭스콘의 행보도 LCD적 측면에 집중한 중화권 공략의 단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국내는 LCD 라인을 폐쇄하며 체질개선에 나서는 상황이다. LG디스플레이가 지난해 6개 중소형 LCD 라인 가동을 중단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중국에서 시작된 LCD 박리다매 전략을 이겨낼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글로벌 디스플레이의 주력은 여전히 LCD라는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이미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현재의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어울린다.

중국 자본의 글로벌 도시 공략이 빨라지며 국내에도 가시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자본의 국내 부동산 및 임대업 FDI 신고 금액은 1억6560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존재감이 강렬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들에게 친숙한 관광지인 제주도를 기점으로 의미있는 변화가 엿보인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뤼디(綠地)그룹과 롯데관광개발이 공동으로 시행하는 제주 드림타워 프로젝트의 시공권을 중국건축고분유한공사(CSCEC)가 가져갔기 때문이다. 이 정도 규모의 시공권을 중국자본이 가져가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문화 및 콘텐츠 사업에도 중국공습은 거세지고 있다. 텐센트가 카카오의 주요 주주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제작한 NEW에 중국 엔터테인먼트 화처미디어는 13%를 투자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소녀시대의 SM엔터테인먼트에는 알리바바가 4%를 투자했으며  쑤닝유니버설미디어는 유명가수를 보유한 FNC엔터의 지분 22%를 보유한 상태다.

▲ 출처=태양의 후예

2차 전지도 안심할 수 없다. 테슬라와 협력하는 일본 파나소닉의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의 역습이 현실로 다가오는 상황이다. LG화학 및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글로벌 수준에 걸맞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거대한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기세는 더욱 강력하다는 설명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BYD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3위를 차지하며 국내 주요 3사를 뒷쪽으로 줄 세웠다.

조선업도 중국의 역습을 설명하는 매우 핵심적인 단서다. 최근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는 한국의 수주잔량은 4월 초 기준 2759만CGT로 집계, 12년만에 최저치로 집계됐으나 1분기 전세계 선박 발주량은 232만CGT 중 절반을 중국이 쓸어갔다고 밝혔다. 실제로 중국은 1분기 114만CGT를 확보하며 17만1000CGT를 확보한 한국을 압도했다는 평가다.

물론 4월 초 기준 전세계 수주잔량이 1억261만CGT로 전월 대비 155만CGT나 감소할 정도로 업황자체가 나쁘고 중국해양선박중공그룹처럼 회사이름을 바꾸고 주차장 사업을 시작한 업체도 있지만, 그나마 사정은 중국이 낫다. 국내 조선업계는 해양 플랜트 발 대규모 해직사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직전이다.

스마트폰 시장도 안심할 수 없다. 국내 삼성전자가 글로벌 점유율 20%를 사수하며 여전히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2014년과 비교하면 약 3%나 수치가 빠졌다. 그 틈을 노려 중국기업들이 넘어오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글로벌 10대 스마트폰 업체에 이름을 올린 중국기업은 3위 화웨이를 비롯해 레노버, 샤오미, TCL, 오포, BBK/VIVO, ZTE 등 무려 7곳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에서 더욱 극적으로 표출된다. 삼성전자는 이미 5위권 밖으로 밀렸으며 그 자리는 샤오미와 화웨이 등이 자리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프리미엄에서 중저가로 번지며 전선이 넓어지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말 그대로 샌드위치 공격을 당하고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ICT 기업의 공습도 예정되거나, 혹은 현재 진행되고 있다. 알리바바를 필두로 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공습은 여전하며 텐센트의 게입업계 및 엔터테인먼트 진출도 빨라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ICT 정책은 위협적이다. 한중일 정상이 만나 구상된 동아시아 전자상거래 개방은 이런 측면에서 득보다 실이 크다는 말이 나온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규모는 무려 3조5000억 위안에 달하며 상무부가 발표한 ‘2014년 중국 전자상거래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중국 전자상거래 증가율은 28.64%에 달해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 성장율 7.4%의 4배에 달한다. 지난 해 중국 온라인 소매판매액 증가율도 중국 전체 사회소비 증가율보다 37.7% 포인트 높았다.

심지어 보험업계도 중국발 공습에 고민하고 있다. 국내 보험사가 신규지분을 취득할 경우 일반계정 자기자본의 60%와 총자산의 3% 중 금액이 더 작은 만큼만 투자한도로 정한 규제에 막힌 사이 중국을 필두로 하는 외국 보험사들의 자본침투가 거세지고 있다. 일단 하반기 중소형 생명보험사 매물이 더 나올 것이 확실한 상태에서 금융당국은 인수의지가 있는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즉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운다는 입장이다.

도망칠 길은 없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중국 자본의 국내 유입은 2013년 이후 더욱 빨라지고 있다. 실제로 2012년까지 8331억 원 수준이었던 중국 자본은 2014년 1조3630억 원으로 올라간 뒤 지난해 2조2672억 원을 찍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기업이 각 사안별로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먼저 반도체의 경우 미세공정을 바탕으로 기술 고도화에 나서는 방식, 디스플레이는 OLED를 중심으로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부동산 및 엔터테인먼트적 측면에서는 협조를 강화하는 한편 중국 내수시장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 나와야 하고 스마트폰 및 ICT적 발전에서는 '도태'를 인정하는 쪽으로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외 다양한 영역에서는 국내의 규제를 풀어주는 방향도 고민해야 한다.

한중 FTA 발효로 중국을 노리는 외국기업들이 그 전진기지로 한국을 택하는 분위기도 살펴야 한다.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 한국 소비재 기업들에 대한 현지의 투자와 더불어, 중국 외 기업들의 국내 투자도 빨라지고 있다.

다만 중국의 한국에 대한 투자는 냉정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투자 후 인프라를 빼가는 일이 벌어지며 우리에게는 소위 껍데기만 남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정면으로 노리고 정교한 방법론으로 각자의 전략을 세우는 한편, 다양한 부작용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