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인 국회의원 1호가 탄생했다. 중견 게임사 웹젠의 의장 김병관이 성남분당갑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뽑혔다. 결과는 여론조사와 완전히 달랐다. ‘진박’으로 불리던 금융감독원장 출신 새누리당 권혁세 후보가 앞설 것이라는 예상이 뒤집혔다. 전통적으로 여당이 강세인 분당 지역에서의 승리여서 김 당선인에겐 더욱 값진 결과다. 분당에선 14대 총선에서 선거구로 정해진 이후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여당이 승리해왔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공장 노동자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지난 1월 더민주당에 공식 입당한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사실 김 당선인은 국내 대표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꼽힌다.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과거 얘기를 꺼낸 셈이다.

김 당선인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에서 산업경영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한 IT 전문가다. IT 스타트업 솔루션홀딩스를 공동창업했고 NHN게임스와 웹젠 대표이사를 지냈다. 정치 입문 직전엔 웹젠 이사회 의장이었다.

그는 현재 웹젠 지분 26.72%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주식부자 순위 8위에 올라 있으며 이번 총선 후보자 중 재산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표창원 소장이 정의를 상징한다면 김 의장은 혁신을 상징합니다.” 김 의장 입당 기자회견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가 남긴 말이다.

“국민의 성공신화를 만들겠습니다.” 김 당선인이 선거 유세를 펼치며 내세운 전략 슬로건이다. 이런 말도 남겼다. “벤처창업과 회사경영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를 통해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열정으로 도전하는 청년에게 안전그물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전체 국민들에게 전한 메시지다.

그에게 특히 기대를 거는 이들은 따로 있다. 게임인들이다. IT 업계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일종의 직능 대표자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게임인들은 규제 포비아(phobia·공포증)를 호소하고 있다. 게임업계는 최근 몇 년간 규제의 유령에 시달려왔다. 셧다운제, 쿨링오프제, 웹보드게임 규제, 확률형 아이템 규제 등이 게임업계 종사자들을 옥죄었다.

‘게임=마약’ 프레임을 만들어낸 일명 ‘게임중독법’과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의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손인춘법)까지 발의되면서 게임업계는 급속도로 움츠러들었다. 이런 시달림의 과정을 거치며 게임인들이 얻은 질병이 규제 포비아다. 또 정치 혐오다.

게임인들은 김 당선인에게 게임인을 대변하는 구심점이 되어 게임 규제를 풀고 육성 로드맵을 바로 세우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김 당선인 역시도 이런 요구에 응답한 바 있다. 한 게임 전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게임인의 한’을 풀어보겠다고 했다. “정치권이 게임을 보는 시선을 바꾸고 싶습니다.”

우려 섞인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를 두고 말했다. “선거기간 동안 게임인들에 대한 사랑을 더욱 과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작 그가 속한 더민주당에는 게임공약이 없으니, 과연 정치인 김병관이 게임인들과 게임산업에 어떤 행보를 펼칠것인지 궁금하다.” 상징적인 의미는 강해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가 정치권에서 상처받을 것을 걱정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게임은 시작됐다. 첫 시작이 가뿐하다. 국내 게임 산업은 어느덧 연 10조 원 규모를 돌파했다. 그런데도 위기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팽배하다. 글로벌 신흥강자들이 모바일 플랫폼을 타고 급성장하고 있는 반면 우리 게임 산업은 성장률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는 까닭이다. 게임업계 종사자 수도 2012년 5만2466명이었으나 2014년에는 3만9221명으로 25% 줄었다. 위기 신호다.

정치권의 부당한 게임 탄압도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다만 이 같은 인식이 정치적 대응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흩어진 의견을 모아 실제적인 조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과제가 김 당선인에게 주어진 셈이다. 그가 지역구를 넘어 게임인의 구심점 역할을 해 게임·경제·정치 혁신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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