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위메프, 티켓몬스터 등 소셜커머스 3사가 14일 일제히 실적을 발표했다. 예상대로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낸 것으로 밝혀졌다. 쿠팡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긴 1조1337억 원, 위메프는 2165억 원, 티몬은 1958억 원을 기록했으나 영업손실은 각각 5470억 원, 1424억 원, 1418억 원으로 시장 전망치를 크게 하회했다.

▲ 출처=각사

나쁘지 않다?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고 있으나 위메프와 티몬의 경우 주머니 사정이 심각하게 아찔해 보인다. 실제로 위메프는 상품매출 1018억 원, 수수료 매출 1147억 원을 기록했으나 광고비에 348억 원, 판촉비 698억 원, 급여 113억 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해 말 기준 현금은 947억 원, 매입채무 172억 원, 미지급금은 2320억 원을 기록했다.

최근 NHN엔터테인먼트 투자를 끌어내어 눈길을 끌었던 티몬은 상품매출 1127억 원, 수수료 매출 832억 원으로 나타났으며 광고비는 336억 원, 판촉비 362억 원, 급여 400억 원을 투입했고 지난해 말 현금 보유는 1137억 원, 매입채무는 2739억 원, 미지급금은 276억 원이다. 쿠팡과 비교해 볼륨이 작은 관계로 타격도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유동성 측면에서는 상당한 압박을 받을 소지가 크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쿠팡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소셜커머스 3인방 중 맏형의 이미지가 강한데다 변화를 주도하는 핵심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쿠팡은 지난해 실적을 두고 계획된 적자라고 주장한다. 적자 중 상당수가 물류 인프라 구축 및 로켓배송을 위한 선제적 투자가 89%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이어 쿠팡은 당장의 투자를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흑자로 전환할 수 있으며 단지 직매입 사업으로 운반비가 늘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유동성 압박에 대한 일각의 우려에도 반박했다. 쿠팡의 경우 보도자료 소제목 중 하나가 '유동성 위기설 일축'일 정도다. 부채비율 154%는 현대자동차 및 GS리테일, 인터파크와 비슷한 수준이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쿠팡의 해명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현재 소셜커머스를 넘어 이커머스 전반으로 판을 키우고 있는 쿠팡은 오프라인 유통권력의 상징인 신세계 이마트와 정면대결을 불사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있다. 본격적인 O2O의 방향성을 지향하며 소프트뱅크에서 받은 두둑한 탄알(10억 달러)이 많이 남아있음을 강조하는 한편, 오로지 미래만 보고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직매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커머스 플랫폼의 밀착도를 끌어 올리는 한편 페이코에 손을 내민 티몬과 달리 자체 결제수단을 장착시키고 큐레이션과 배송 인프라로 승부를 보겠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업계 일각에서는 쿠팡이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지만 소프트뱅크가 채워준 탄알이 두둑한 상태에서 미래지향적 행보가 뚜렷하기 때문에 끈기를 갖고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에 맞설 수 있는 스타트업의 탄생을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다소 감정적인 의견도 있다.

▲ 출처=쿠팡

"계획대로야"..어디서 많이 듣던 말?
쿠팡은 5470억 원의 적자를 두고 "계획된 적자"라고 말한다. 미래성장동력을 중장기적으로 노린다는 말과 연결되며, 지금 무릎을 꿇은 이유는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라는 뜻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말이다. 공룡벤처 옐로모바일로 가보자. 옐로모바일은 지난해 매출 3181억 원, 영업손실 467억 원을 기록했으며 영업손실 폭만 전년과 대비하면 5배 이상 커졌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간신히 11억 원의 흑자를 기록해 눈길을 끈다.

이 지점에서 옐로모바일 블로그는 지난달 31일 이상훈 CFO와의 사내인터뷰에서 "실은 예상된 시나리오대로 진행 중이라 실적에 대한 긴장과 감동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업적자대신 영업이익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니 기분은 좋다"며 "2016년은 무리 없이 연 단위의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2017년이 되면 다섯 개 사업 그룹 모두가 각자 흑자를 달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당장은 적자지만 중장기적으로 다를 것'이라는 전망은 쿠팡의 장밋빛 미래와 닮았다.

▲ 출처=옐로모바일

물론 쿠팡과 옐로모바일을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업계에서의 위치와 발전방향, 진행되는 조직의 로드맵 등에서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역량의 문제일 수 있고 어필의 타이밍, 혹은 '운'의 차이일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양사는 사업적 비전을 완전히 보여주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는 자신하는데 남들은 반신반의한다는 결정적인 교집합이 있다.

비단 쿠팡과 옐로모바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열병처럼 번지는 모바일 혁명과 O2O의 방향성에 힘입어 탄생한 대다수 스타트업들은 현재 실제적인 성장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특히 O2O라는 욕망의 열매는 매우 달콤하고 치명적이어서,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온 대형 스타트업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기간이 긴데다 존재하던 ICT 대기업의 견제까지 겹치며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배달의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실적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우아한형제들의 영업손실 규모는 248억8600만 원에 달하며 이는 전년도 대비 66% 이상 늘어난 수치다. 손순실 규모만 248억9500만 원에 달할 정도다. 매출은 커지지만 수익은 낮아지는 상황. 몸집은 커지지만 내실은 없는 상황이다. 최근 우아한형제들은 내부직원들의 교통비 및 식대지원과 외근직의 유류비 지원도 크게 낮춘 상태다.

▲ 출처=배달의민족

물론 O2O의 마력이 깃들어 있는 영역(옐로모바일은 일단 제외)에 기존 산업적 패러다임을 기계적으로 대입하면 곤란하다는 말도 꾸준히 나온다. 당장의 수익성이 떨어져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는 산업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쿠팡에 대한 소프트뱅크 투자 및 티몬에 대한 NHN엔터 투자가 근거로 제시된다. '비전이 보이기 때문에 투자를 받는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소프트뱅크의 투자는 자사 인프라 및 플랫폼을 확장하는 방향성이 아니라 말 그대로 기업의 몸집을 키워 '엑시트'하는 쪽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실제로 기존 구글 및 애플과 같은 ICT 기술기반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부족한 역량을 메우고 확보하기 위해 인수합병을 시도한다면, 소프트뱅크는 철저히 투자사적 관점에서 움직인다.(투자의 신)

한국의 쿠팡과 중국의 알리바바, 인도의 스냅딜 투자를 통해 일종의 이커머스 블록을 구축하는 지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프크뱅크는 배송 및 물류 인프라의 쿠팡과 말이 필요없는 거대한 내수시장의 강자 알리바바, 그 만큼의 잠재력을 가진 매력적 인도시장의 스냅딜을 연결해 각자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일종의 동아시아 이커머스 경쟁력을 추구한다. 하나로 합쳐 시너지를 내기보다 각자의 시장을 각자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해 그 경쟁력을 키우는 쪽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엑시트를 위한 전형적인 투자사의 행보다.

택시앱 전쟁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우버의 미국 경쟁자인 리프트는 싱가포르의 그랩택시, 인도의 올라와 제휴를 맺었다. 전 세계 9개 나라에서 시스템을 통합하며 각각의 앱을 연동해 고객들이 자유롭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든다고 밝혔다.  우버가 중국과 인도로 대표되는 아시아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며 촉발된 현지 업체의 불안감을 미국의 리프트가 빠르게 수렴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해 초 미국 리프트에 1억 달러를 투자한 중국의 디디콰이디가 올라에 추가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중요한 사실은 디디콰이디라는 합병법인이 등장하기 전, 알리바바가 투자한 콰이디다처에 5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 사람이 바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라는 점이다. 싱가폴의 그랩택시도 소프트뱅크로부터 2억5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으며 인도의 올라에도 2억1000만 달러를 배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완벽한 반(反)우버 전선을 구축해 각자의 경쟁력을 섞어 자생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쿠팡에 대한 소프트뱅크의 믿음은 '시장의 강자가 되어 나를 지속적으로 기쁘게 하라'는 시그널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자연스럽게 쿠팡의 최종적인 아름다운 미래만 바라보고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말도 나온다. 적자가 쌓이고 있지만 미래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소프트뱅크가 그 미래를 담보하지 않았는가'라는 주장만 맹목적으로 따라가기 불편한 이유다.

어려운 O2O 기업이 혁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 소프트뱅크는 그 가치를 키워 '종말'에 달하기 전 엑시트하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을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O2O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다.

▲ 출처=쿠팡

아마존? 쉬울까?
쿠팡이 최종적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기 어렵다는 주장은 더 있다. 현재 쿠팡은 직매입 및 빅데이터 분석, 로켓배송의 강점에서 비롯된 물류 및 배송 인프라에 집중하고 있다. 최종목표가 아마존이라는 점도 숨기지 않고 있다.

실제로 경쟁사 티몬이 타사와의 협력을 통해 제반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쿠팡은 묵묵히 A부터 Z까지 자신의 손으로 다 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적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미래를 위한 수업료로 아끼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A부터 Z까지 다 하려는 점은 A부터 Z까지 다 팔려는 아마존과 닮은 것 같기는 하다. 게다가 아마존은 무려 9년간 적자에 시달리다 이제야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 쿠팡이 스스로 생각하는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쿠팡이 처한 상황이 아마존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당장 소셜커머스부터 오픈마켓 등 가까이에 있는 경쟁자가 너무 많다. 최근에는 소셜커머스와 이커머스의 경계가 흐릿해지며 치열한 무한경쟁에 이마트같은 오프라인 경쟁자까지 출사표를 던지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당장 치킨게임이 불가피한 가운데, 최종 승리를 거머쥐기에는 유력한 후보라고 해도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버텨야 하는 상황인데, 소프트뱅크가 채워준 총알이 많고 추가적인 투자를 받는다고 해도 적자폭이 너무 크다. 소셜커머스 3사 전체 적자 규모가 2013년 1100억 원에서 3년만에 7배나 불어나는 등 전반적인 분위기가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쿠팡의 실탄도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안전펜스가 있지만 펜스의 길이보다 절벽의 균열이 더 빠르다. 게다가 언제까지 투자만 받을 것인가.

여기에 안전망과 위기 그래프의 접점을 발견하는 순간 흑자로 전환한다고 해도 그 타이밍이 진짜 혁신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말 그대로 타의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 되는 경우, 쿠팡의 실험은 실패할 소지가 크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마존이 장기간 보여줬던 이커머스 플랫폼 실험을 쿠팡이 기간에 상관없이 재연하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냉정히 말해 배송 로직에 대한 상대적인 강점과 로켓배송의 친절함도 명확한 우위에 섰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분위기는 실익여부는 명확하지 않아도 최근 이런 저런 수를 내어보는 경쟁 소셜커머스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제일 큰 리스크는, 역시 쿠팡이 좁은 한국시장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 박재성 기자

비전은 있다
물론 쿠팡은 길을 찾을 것이다. 이커머스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추구하는 쿠팡은 마케팅적 요소가 강한 로켓배송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O2O적 데이터를 확보하고, 물류 인프라를 바탕으로 생태계 전체를 쓸어갈 잠재력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 1인 미디어 시장으로 촉발된 MCN을 생각해보자. 생태계 외연확장을 위한 당장의 숨 고르기는 당연히 필요하며, 현재 MCN 시장은 이러한 성공 방정식을 충분히 따라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수익성을 말하는 것은 아마추어다.

투자개발실까지 신설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것도 쿠팡이 지향하는 사용자 경험의 고도화와 확장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그리고 투자개발실은 쿠팡의 미래가 급변할 경우, 언제든 주력사업이 될 소지도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사업부문별로 독립해 유기적인 시너지를 키우는 쪽으로 파격적인 실험을 거듭할 소지도 있다. 그런 점에서 쿠팡의 현재와 미래동력은 여전히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결국 관건은 '속도'다. 무너지는 것이 빠를 것인가. 아니면 혁신을 위한 실제적인 퍼포먼스가 먼저인가. 강조하지만, 쿠팡은 낙관적인 미래를 꿈꾸며 안전펜스가 펼쳐진 절벽에서 '하늘을 날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펜스의 길이와 절벽의 균열은 속도가 다르다. 여기서 쿠팡을 믿는 것은 당신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