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GV 내 버스킹 공연. 출처=CGV

극장이 진화하고 있다. 극장사업자들이 단순한 영화 상영만으로는 한계점 이상의 관객들을 끌어 모을 수 없음을 캐치해 극장 플랫폼에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 요즘 극장에선 버스킹 공연을 보는가 하면 낮잠을 잘 수도 있다. 영화만 상영하던 스크린에선 오페라 공연이나 월드컵 중계도 볼 수 있다. 극장이 영화의 다양성을 넘어선 ‘문화의 다양성’을 상영하기 시작한 것.

지난해 극장을 찾은 관람객 수는 3년 연속 2억명을 돌파했지만, 총 관객수 증가율은 2년 연속 1%대에 불과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컨텐츠 의존도가 높고 온라인 영화와 경쟁해야 하는 극장산업의 한계점도 극장의 진화를 재촉했다.

이에 극장은 다양한 문화 이벤트들을 보여줌으로써 객석 점유율, 관객 회전율 증가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또 문화이벤트가 갖고 있는 예술적 특성으로 체인 브랜드 이미지도 강화하고 변화와 유행에 민감한 젊은 고객층들을 빠르게 흡수한다.

최현용 영화산업전락센터 소장은 “영화는 일반적으로 불경기에 올라가고, 호 경기에 불황인 역진성 산업이다. 극장관객이 늘어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문화의 다양성을 극장 플랫폼에 담는 것은 관객 수요를 계속 해서 늘리기 위한 하나의 행태로 볼 수 있다”며 “문화 공간이 부족한 국내에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들을 여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다” 라고 설명했다.

 

영화, 2억명 관람객 돌파해도 관객증가율 1%대 제자리

지난해 극장을 찾은 관람객수는 2억1728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 1.03% 증가한 수치로 관람객 수는 5년 연속 사상 최다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전체 영화산업 매출 역시 상승세다. 지난해 영화산업 매출은 2조1131억원으로 전년 대비 4.2% 성장했다.

하지만 높아지는 관람객수와 매출과는 달리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의 총 관객 수 증가율은 1% 안팎에 머물러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매출 증가율이 관객증가율보다 높은 것은 관람료가 비싼 주말 시간대의 관람객의 증가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산업진흥원에 의하면 지난해 토·일요일 관객은 2014년(9758만명)보다 3.4% 증가한 1억89만명을 기록했다.

▲ 연도별 영화 관람객 수 변화 추이. 출처=영화산업진흥위원회.

지속해서 관람객과 매출이 최고치를 갱신하는 주요 원인은 무엇일까.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컨텐츠 품질의 향상과 더불어 영화관람이 가족 단위의 문화소비 패턴으로 자리 잡은 영향도 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간한 '2014 국민여가 활동조사'에 의하면 국민들이 가장 즐기는 문화예술 행사는 '영화(65.8%)'가 1위로 압도적이다.

비교적 대중적이고 보편적으로 인식된 영화산업이지만, 영화산업은 대표적인 '불황산업'으로 꼽힌다. 불황엔 문화비 지출을 줄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영화 관람료는 다른 여가활동에 비해 크게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극장 산업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멀티플렉스는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물론이고 복합몰을 중심으로 한 쇼핑 및 외식 등 다양한 부가 활동도 한 공간에서 가능하게 해 원 소스 멀티 플랫폼(One Source Multi-Platform) 역할을 해 극장으로 가는 발걸음을 늘렸다.

 

극장, 영화 콘텐츠 의존도 높고 온라인 영화와 경쟁

하지만 극장사업은 영화 콘텐츠의 흥행력에 따라 수익이 좌지우지되기 쉽다. 지난해 2억명 관람객돌파에는 ‘베테랑’(1341만명)과 ‘암살’(1270만명)의 쌍끌이 흥행을 필두로 '사도', '내부자들'의 대작 쏠림 파워도 한 몫 한다.

나름의 강구책은 있다. 최근 늘어나기 시작한 '재개봉 영화'가 관객들의 니즈와 맞아떨어지며 비수기 수익원으로 자리 잡은 것. 2013년 이후 매년 꾸준히 10편 이상 상영된 재개봉 영화는 텐트폴 영화(투자배급사 라인업에서 가장 흥행 가능성이 높은 영화)가 없거나 주로 비수기에 상영 되며 다양성 영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보다 강력한 극장 산업의 위기요인은 '온라인 영화'다. 지난해 디지털 온라인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12.7% 증가한 3349억 원에 달한다. 디지털 기술은 DMB, 와이브로 등의 개인 이동 미디어와 IPTV, HDTV 등의 고화질, 인터넷 기반의 새로운 상영 공간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며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것' 이라는 공식을 허물었다. 관객은 이제 영화관에서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 이상의 서비스를 원하게 됐다.

 

‘오페라’도 보고, ‘버스킹 공연’도 본다... 소프트웨어 다양화

롯데시네마에선 월드컵과 오페라도 상영한다. 2010년 8월 남아공 월드컵, 2012년 8월 런던 올림픽, 2014년 6월 브라질 월드컵 의 축구 국가대표 주요 경기를 생중계했다. 2015년부터 진행 됐던 공연 실황 상영은 2016년에도 “2016 오페라 인 시네마(Opera in Cinema)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내걸고 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 라 스칼라와 파리국립오페라의 최신 라인업을 고객들에게 독점 선보인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다양한 콘텐츠를 스크린에 활용함으로써 단순히 영화 상영만을 위한 공간을 넘어 고객들이 여러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나갈 계획" 이라고 설명했다.

▲출처=메가박스

메가박스는 '클래식 소사이어티’라는 큐레이션 브랜드를 운영한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을 볼 수 있는 ‘클래식 라이브’와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공연하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메트오페라’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클래식 공연 영상 제작사 ‘유니텔 클래시카’와 협업을 통해 오페라와 콘서트를 정기적으로 선보이고 있으며, 오페라 하이라이트를 해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오페라 아카데미’ 등도 선보인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극장이 여러 문화 컨텐츠를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 관객들에게 다양성이 보장되는 문화생활의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속적으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발굴해 보여드릴 예정" 이라고 설명했다.

▲ 출처=CGV

CGV는 상영관안에서 색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CGV여의도는 '시에스타' 프로그램을 통해 인근 직장인들이 낮잠을 잘 수 있다. 또 신촌아트레온에선 한시적으로 상영관을 열람실로 바꿔 근처 대학생들이 도서관처럼 이용하며 공부할 수 있다. 영화관 내에서 '버스킹LIVE'를 진행하는 것도 이색적 풍경이다. 공연을 원하는 뮤지션들은 '버스킹 플레이어'를 통해 예약하면 다음달에만 CGV대학로, 강변 등 약 20여곳이 넘는 극장에서 버스킹 공연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강점은 강연 프로그램에 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해설을 들을 수 있는 '라이브톡'은 매니아층으로 형성된 팬층이 두터운 대표적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신인평론가들이 극장마다 정기적으로 펼치는영화 해설프로그램 '아트하우스 큐레이터'는 영화계 토슨트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관 내 ‘복합문화공간’ 설치로 하드웨어 다변화

▲ 롯데월드타워점 7층 씨네파크. 출처=롯데시네마

롯데시네마는 2014년 개관한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를 중점으로 볼 수 있다. 월드타워 7층에 위치한 씨네파크는 예술, 문화의 도시를 콘셉트로 잡은 복합문화공간이다. 이 곳은 배트맨, 헐크, 아이언맨 등 영화 속 인물 피규어와 유명 배우들의 핸드프린팅 등을 전시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지난 12월에는 ‘스타워즈 제다이 퍼레이드’와 ‘스타워즈 피규어&레플리카 전시회’가 진행되었고, 지난 1월에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를 3명의 미디어 아티스트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Art of Chocolate CHARLOTTE’ 9점을 전시하기도 했다. 또 지난 해 10월에는 롯데월드타워 개관 1 주년을 맞아 클럽파티를 열어 높은 호응을 얻었다.

CGV는 멀티플렉스를 넘어선 ‘컬처플렉스 2.0 시대‘를 선언했다. 컬처플렉스는 극장에서 영화만 상영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즐거움과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담아내는 개념으로, 극장의 로비 공간을 문화가 있는 공간으로 활성화 하고, 강연이나 공연 등 영화 외의 다양한 문화를 접목한 프로그램을 이용객에게 제공하는 형식이다. CGV는 이미 각 극장의 책임자 명칭을 점장에서 CM, 즉 문화의 매개자(Culture Mediator) 또는 영화 매니저(Cinema Manager)로 바꿨다. 2020년까지는 한국을 넘어 글로벌 모든 CGV 극장에도 컬처플렉스 2.0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 명동CGV 씨네라이브러리. 출처=CJ블로그

컬처플렉스의 대표 사례로는 'CGV 대학로 문화극장'이 있다. 연극의 메카라는 지역적 특색을 극장에 담아 유명 배우와 대학로 배우들 간의 토크 프로그램을 열거나, 옥탑에 설치된 전용스테이지를 통해 신인 뮤지션들의 공연도 펼쳐지는 등 다양한 문화 관련 프로그램들이 진행된다. 이밖에 CGV천안 펜타포트 로비는 다양한 예술작품을 전시한 갤러리 형태로 운영되며 CGV하계는 어린이 미니도서관과 가족을 위한 공간인 커뮤니티 카페가 들어서 있다. 또 CGV명동에는 '씨네라이브러리'를 만들어 국내 최대 영화도서관을 세웠다. 부산 서면에는 배우 안성기, 감독 임권택 헌정관을 세워 영화사적 업적을 남기는 박물관형 상영관을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