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달마야 놀자>의 주인공은 소림권법과 관상학의 대가이자 중국 선종의 창시자인 달마대사이다. 달마 초상만 지니고 있어도 귀신을 쫒고 수맥을 차단하며, 액운을 쫒고 복을 불러들인다고 하니, 신통방통의 대가인 셈이다.

반들반들한 대머리에 툭 불거져 나온 왕방울만 한 두 눈, 휘날리는 짙은 눈썹, 주먹코, 더부룩한 턱수염이 마치 산적 캐릭터다.

달마도에 등장하는 우락부락한 모습과 달리 달마대사는 잘생긴 인도의 미남 왕자였다.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승려가 되어 선에 통달했으며, 이름은 보리달마(Bodhi dharma)이다. 어느 날 달마가 육신을 잠시 비워두고 유체이탈을 했다. 그때 길을 가던 못생긴 신선이 잘생긴 달마대사의 육신을 발견하고는 달마대사의 몸속에 들어가서, 도망치듯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다시 돌아온 달마대사는 자신의 몸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도둑놈의 육신을 빌려서 일생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후 평생 험상궂게 일그러진 얼굴로 살게 되었다고 한다.

불법을 전파하기 위해 양자강을 건너 소림사로 왔는데, 그때 갈대 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는 신통력을 보이고 동쪽의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좌선을 하고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불교를 포교하기 위한 방편으로 관상법을 연구하여 제자에게 전한 것이 <달마조사상결비전(達磨祖師相訣秘傳)>이다. 그 후 중국의 남북조 시대에는 달마상법이 불교를 중심으로 하여 발전했다고 한다. 무술에도 일가견이 있어 소림 무학의 원조이며 소림 권법의 창시자가 달마라고 전해진다. 무서운 얼굴 덕분인지 달마도가 귀신을 쫒고 복을 불러들인다고 하니, 달마의 신통력은 오늘날에도 남다른 바가 있어 보인다.

당시 인도인이었던 달마대사의 생김새가 중국인에게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달마의 얼굴을 그리면서 서역인의 특징인 부리부리한 눈과 큰 코를 부각시켜 표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 <김명국, ‘달마도’, 17세기, 종이에 수묵, 83×5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관상학에서 눈은 마음을 나타내며 순수한 정신과 영혼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눈은 마음의 창이다. 눈이 크면 마음이 착하고 순수하다. 특히 눈동자가 튀어 나오면 열린 마음의 소유자이다. 비밀을 감추지 못하고 솔직한 편이다. 열정적인 순수 개방형 스타일로서 남에게 이용당하거나 손해 볼 여지도 있다. 도(道)를 전하거나 포교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깨달은 모든 불법(佛法)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관상이고, 성격도 다혈질에 정열적이다. 반대로 눈이 안으로 깊이 들어간 옴팍한 형태라면 비밀이 많고 자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코가 주먹처럼 크고 살집이 두둑하면 재물 복이 좋으며 자존심이 강하고 제왕과 같은 능력자이다. 코는 얼굴의 대들보와 같은 곳인데 콧날이 굵고 크면 관직(官職)과 명예가 높다. 콧대의 기세가 이마까지 뻗어있으면 나라의 동량(棟梁)으로 출세하는 상이다. 달마의 코를 자세히 관찰하면 콧날이 이마까지 높게 솟아 있으며 폭이 넓고 사이즈가 매우 크다. 이러한 코의 관상이라면 선종의 1대 조사로서 그 권위와 명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달마의 콧등과 미간 사이에 굵은 주름이 유독 눈에 띄는데, 주름 때문에 콧등에 구김이 생겨 보인다. 눈과 눈 사이, 콧등에 선명한 가로주름이 있으면 건강이 좋지 않거나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이러한 관상을 유추해보면 달마의 건강은 죽음 직전까지 갔을 것으로 보여 진다. 9년간 동굴에서 벽만 보고 좌선을 했다고 하니, 건강상의 이유라도 소림무술로 몸을 단련하거나 기공 체조로 몸을 보호하는 운동법을 익혔으리라 짐작되는 바이다.

눈썹 끝이 팔자(八字) 형태로 쳐지는 경우를 팔자미(八字眉)라고 하는데, 이는 도사형 눈썹이다. 세속을 떠나서 산에서 고요히 도를 닦는 수도자나 예술가에게 흔히 볼 수 있으며 종교적, 전원생활형, 예술형, 철학자에게 나타나는 눈썹 스타일이다.

달마는 수행 도중에 자꾸 졸음이 와서 눈꺼풀이 눈을 덮게 되자, 수행에 방해가 된다며 자신의 눈꺼풀을 잘라내 버렸다고 한다. 달마가 눈을 부라리며 치켜뜨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눈꺼풀이 없어서 눈을 감을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용맹정진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사이지만 다혈질적이고 열정적인 그의 관상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관상학에서 달마와 같은 눈을 삼백안(三白眼), 또는 하삼백안(下三白眼)이라고 부른다. 눈동자가 위로 치켜 올라가서 흰자위가 아래쪽에 보이는 눈을 말하는데, 흰자위가 양옆과 아래쪽의 3면(三白)에 보이게 된다. 이러한 눈은 성질이 격하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사람이거나 살기(殺氣)를 가진다. 깨달음을 위해서라면 자기희생도 불사할 위인이다.

관상에서 눈꺼풀은 전택궁(田宅宮)으로 가정 및 집을 살피는 곳인데, 눈꺼풀을 없애버렸으니 집을 버리고 수도에 전념하기 좋은 상이다. 한마디로 달마대사의 관상은 도 닦기 좋은 성불(成佛)의 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관상은 어떻게 생겼느냐가 아니라 어떤 용도에 맞게 쓰임을 얻었느냐가 더 중요하다. 삼백안의 살기(殺氣)를 흉한 일로 사용할 것인지, 살신성인(殺身成仁)으로 상으로 쓸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저마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관상 경영법도 인사관리의 한 분야로 쓰임을 얻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