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4월, 영화 <서편제>가 서울 종로에 있는 단성사에서 개봉됐다.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주말이면 이 영화를 보기 위한 관객들의 행렬이 몇 백 미터씩 이어졌다. 암표상이 몰려든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 바로 상영하는 표 있어요.” 당시 영화 1편 관람료는 5000원 수준이었는데, 암표상이 파는 표를 사려면 적게는 1000~2000원에서 많게는 2배의 가격을 치러야만 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서편제>는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서울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만큼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3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영화 관람 모습은 사뭇 달라졌다. 전국의 수백 개 극장에서 영화가 동시 상영하고, 관객들은 영화를 더욱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 관객들은 아무리 인기 있는 영화라 할지라도 암표를 구입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라도 티켓 예매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영화관에 직접 나올 필요 없이 인터넷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언제 어디서나 예매가 가능하다. <서편제> 당시 관객 100만명을 동원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면, 요즈음은 이 정도 관객은 하루에도 동원할 수 있게 있다. 2014년 여름 개봉한 <명량>의 경우 국내 영화로는 처음으로 하루 1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이다.

과거 단관 시절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영화관 환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게 변했다. 멀티플렉스가 국내 도입된 지 채 20년도 되지 않아 우리 영화 시장을 엄청나게 변화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우선 질적 변화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보면 과거 단관 극장의 모습을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극장에 모여들어 시끌벅적 떠드는 장면, 학생 지도 선생님들이 보초를 서며 학생 출입을 막는 장면, 화장실에서 패싸움하는 장면 등… 대체로 극장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 듯하다. 어두침침한 실내, 조그마한 구멍의 티켓 창구, 다소 비위생적인 매점 음식 등 4~50대 이상 세대라면 누구나 과거 단관 극장을 이런 모습으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이 바뀌었다. 실내는 밝고 화사해졌고, 다양한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다. 티켓 창구는 활짝 열려 친절한 극장 직원들과 직접 대면해 표를 살 수 있다. 매점 메뉴는 철저한 위생 관리 속에서 더 맛있고 풍성해졌다.

그런가 하면 영화를 보기 위한 접근성과 편의성도 매우 좋아졌다. 과거 영화를 보기 위해 멀리 종로로 나갔던 기억은 지금은 먼 과거가 되었다. 슬리퍼를 신고 동네 근처에 있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를 찾으면 된다. 영화를 보러 가면 같은 건물 내에서 외식과 쇼핑도 함께 즐길 수 있다. 그만큼 영화관이란 곳은 대중에게는 친숙하고도 격의 없는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런 질적 변화와 편의성 증대는 한국 영화의 양적 성장을 견인했다. 1998년 ‘CGV강변 11’ 설립 당시 연 관람객은 5000만명 수준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2억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국민 1인당 평균 영화 관람 편수는 4.2편에 이르러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100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하는 한국 영화도 매년 서너 편씩 쏟아져 나온다. 자국 영화 점유율은 매년 50%를 넘어선다. 전 세계에서도 자국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어서는 나라는 미국을 포함해 대여섯 나라에 지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영화를 산업적으로 안정시킨 영화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영화 관람은 전 국민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즐기는 문화생활이자 오락거리가 되었다. 만원짜리 한 장이면 부담 없이 두세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서,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서, 직장인들의 문화회식 장소로서, 친구들의 모임 장소로서 멀티플렉스는 우리 일상 속에 늘 함께 하고 있다. 매년 위기론이 나오지만 끝없이 진화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 영화의 이면에는 이처럼 멀티플렉스의 성장이 함께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