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으로 왕좌에 오른 중종이 사림들을 대거 등용하여 개혁을 하게 했지만, 그가 사림들의 개혁을 수용할 그릇이 못 되었는지 이른바 미물인 벌레들조차 조(趙)씨가 왕이 된다고 나뭇잎을 파먹었다는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으로 돌출된 기묘사화에 의해 조광조를 사사한다. 주초위왕은 주(走)자와 초(肖)자를 합하면 조광조(趙光祖)의 성씨인 조(趙)자가 되어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종의 신임을 받고 있는 조광조가 백성들을 위해서, 훈구세력들이 부당하게 가지고 있는 부당한 기득권을 빼앗자 훈구세력이 조광조를 찍어내기 위한 모함이었다.

훈구세력들이 주초위왕 사건까지 일으키며 조광조와 사림들을 제거하려 한 것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훈구세력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한 것이다.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 개혁파들은 공신이 너무 많다고 하면서, 반정공신들이 취하고 있는 이득에 관한 제도를 개정하지 않으면 나라의 재정이 어려워져 결국은 백성들에게 엄청난 손실을 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창한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 이른바 4등공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은 위훈삭제(僞勳削除)하고, 2·3등 공신도 선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을 주장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2·3등 공신의 일부와 4등 공신 전원을 포함한 76인의 훈작을 삭탈함으로써 전체 반정공신의 약 3/4에 해당하는 공신을 쳐냈다. 당연히 훈구파가 가만히 있을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목숨 걸고 세운 공에 대한 보답을 받은 것이라고 당연히 여기고 있던 그들이다. 백성들에게 엄청난 손실이 오든, 나라의 재정이 어려워지든, 그것은 그들에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목숨 걸고 반정을 일으키는 자체가 굳이 말하자면 백성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아서 어제의 영화를 다시 누려보겠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이 내 뱃속 채우기인 훈구 정치인들이 가만히 있을 일이 아니었다.

훈구세력은 자신들과 발이 잘 닿는 후궁들과 작당을 해서 상궁과 궁궐나인들을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그들을 통해서 나뭇잎에 과일즙 같이 달콤한 것으로 주초위왕이라고 써 놓으면 벌레들이 단 맛을 쫓아 나뭇잎을 파먹는다는 것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계략이었던 것이다. 그 계략은 맞아 떨어졌고, 결국 조광조는 벌레에서 발단된 기묘사화로 사사되면서 사림들의 개혁은 실패하고 만다.

주초위왕 사건이 모함이라는 것을 중종이 알았는지, 아니면 정말이라고 생각해서 조광조를 의심하기 시작해 기묘사화까지 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반정에 의해 왕위에 오른 중종으로서는 자신을 왕위에 앉힌 훈구세력을 대항하여 벌이는,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들의 개혁이 버거웠던 것 같다. 목숨 걸고 반정을 일으켜 자신을 왕위에 앉힌 훈구세력들이 다방면으로 제기해 오는 항의가 중종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중종은 그것을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굴복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든지 정치를 시작할 때는 백성들을 위해서라는 기치를 들고 시작한다. 하지만 그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성보다는 내가 먼저로 바뀐다는 것이 문제다.

그 당시 훈구세력이야 당연히 왕을 새로 만들었으니, 연산군의 폭정에서 백성을 구한 것이 자신들이라는 그릇된 자부심에 취해 자신들은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종 역시 처음에는 백성들을 위해서 연산군 시대의 악습을 떨치는 개혁을 해보고 싶었지만,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들의 개혁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에 비해 너무나도 급진적으로 행해지고, 자신을 왕좌에 올려준 훈구세력까지 겨냥함으로써 그 화살이 자신에게 되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나 힘들었던 같다. 반정을 통해서 왕위에 올랐으니 반정에 희생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알았던 까닭일 게다. 백성들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권좌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일 보 후퇴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중종 때 사림파가 주장하던 개혁이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사림이 사라졌던 것은 아니다. 중종 말기부터 다시 중앙정치무대에 진출하기 시작한 사림들은 명종 때는 명목을 유지하는 정도였으나 선조가 즉위하면서 대거 등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선조는 훗날 임진왜란 등을 겪고, 후계구도 문제 등등으로 인해서 나약하고 무능력한 왕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행동들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원래 총명하고 영악하며 학문도 깊은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