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 출처 = 대한항공

항공기는 많은 사람을 한 번에 실어 나른다. 좁은 공간에 수백명이 밀집해있다. 티끌만한 실수 하나가 ‘대형 참사’를 불러올 수도 있다. 승객들의 신원은 물론 그들이 들고 타는 짐도 꼼꼼하게 검사하고 있는 이유다. 항공 업계에서는 모두가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항공사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척도는 안전에서 시작해 안전으로 끝난다. 국내 항공사들도 최근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을 쏟고 있어 주목된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국적사들은 관련 투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등 저비용항공사(LCC)들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하늘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움직임이다.

과거를 되짚다

항공사 안전 이슈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지며 업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16년 1월에는 여객기가 문이 열린 채 운항하는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 당시 필리핀 세부를 출발해 부산으로 향하던 진에어 여객기는 출입문을 완전히 닫지 않은 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벌어진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기압 차이 때문에 승객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1만피트 상공까지 날아올랐던 비행기는 다시 세부 공항으로 돌아가야 했다.

기체가 결함을 일으킨 사례도 있었다. 2015년 12월 김포를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제주항공 여객기에 탄 승객들은 ‘공포의 20분’을 경험해야 했다. 기내 압력을 조절하는 장치가 고장나 항공기가 고도를 급격히 낮춰 운항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해당 항공기는 운항고도를 1만8000피트에서 8000피트로 급격히 낮췄던 것으로 알려졌다. 급격한 압력 변화에 승객들은 통증·호흡곤란 등을 일으켰다.

자칫 안전사고로 이어질 뻔한 사례도 많았다. 2015년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국토교통부에게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한 해 동안 국적항공사들은 9차례에 걸쳐 총 1억325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당시 티웨이항공은 비상구열 좌석에 15세 미만 어린이를 배정했다가 5차례나 적발됐다. 2500만원의 과징금을 내야 했다. 비상구 좌석에는 비상구 개방과 탈출을 돕기 위한 활동에 충분치 않은 사람을 앉히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이 밖에 엔진결함 경고 메시지가 뜬 상태에서 그대로 운항을 강행하거나 승무원·조종사의 비행근무시간이 기준을 초과한 경우가 있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특정 항공사 혹은 업계에서 연속적으로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날 경우 승객들은 크게 불안해할 수밖에 없고, 이는 업체의 신뢰도·실적과도 직결된다”며 “실제 2016년 초에는 LCC들이 연이어 안전 논란에 휩싸이며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고 말했다.

▲ 자료사진 / 출처 = 아시아나항공

안전에 힘을 쏟다

상황이 이렇자 항공사들은 저마다 안전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나섰다. 대한항공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정확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신규 항공기 도입을 통해 기령을 낮추는 작업이다. 고효율 신형기를 도입해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고 동시에 안전성·편의성도 잡겠다는 것. 대한항공은 이를 위해 2019년을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설정, 항공기 100대를 새로 들여오겠다는 구상이다.

대한항공은 앞서 2015년 국토교통부와 ‘경년항공기 안전관리를 위한 자발적 이행’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노후화 장비를 자발적으로 교체해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겠다는 게 골자다. 2015년 12월 말 기준 대한항공의 항공기 평균 기령은 9.43년으로 조사됐다. 이는 국내 항공사 중 가장 낮은 수치다. 국내에 등록된 전체 등록기의 평균 기령은 10.36년이었다. 이와 함께 대한항공은 정보보안에 관련한 구조도 개편하며 안전운항체계 구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항공은 또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안전장려금 제도’를 운영 중이다. 정시운항 여부 등을 종합평가해 일정 기준을 넘으면 전 직원에게 기본급 100%를 ‘안전장려급’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안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들을 제보 받아 미리 예방하는 ‘비밀안전제보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안전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해오고 있다. 특히 전문 역량을 갖춘 임원 영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4월 1일자로 싱가포르항공 출신의 애릭 오(61) 기장을 운항본부 운항훈련평가담당 상무로 임명했다. 그는 앞으로 조종사들의 훈련 및 평가를 관장하며 운항훈련시스템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014년에도 전 일본항공(ANA) 임원을 지낸 야마무라 아키요시를 안전분야 총책임자인 안전보안실장(부사장)으로 영입한 바 있다.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 역시 매번 안전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에는 노사가 손잡고 안전운항 시스템 강화를 위해 뜻을 모으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당시 안전운항 개선을 위한 ‘FOQA 위원회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비행자료 분석을 통해 비행 중 발생 가능한 잠재위험요인을 찾아낸 후 교육을 거쳐 원천적인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국내 항공사 중 노사가 이 같은 협정서를 체결하여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아시아나가 최초다.

▲ 자료사진 / 출처 = 티웨이항공

절박한 LCC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등 LCC들의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2016년 초 연이은 사고로 소비자들의 신뢰도에 금이 간 것.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인식을 탈피하기 위해 저마다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6년 1월 LCC들을 소집해 안전점검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급강하 사고를 겪은 제주항공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총 350억원을 안전 강화를 위해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상반기 중 200억원을 집행해 항공기 예비엔진 등을 구매할 계획이다. 이어 하반기 150억원을 투입해 조종사 모의훈련장치 등을 갖출 예정이다.

비행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전산화한 전자비행정보(EFB)도 도입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우선 ‘전자교범 IT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항공기 조종에 필요한 각종 교범과 운항자료 등 비행안전 문서를 IT로 체계화시키는 작업이다.

▲ 자료사진 / 출처 = 제주항공

또 제주항공은 운항품질관리를 위한 운항안전감사제도인 LOSA(Line Operations Safety Audit) 운영위원회 설립 및 구축작업에 들어갔다. LOSA는 조종사의 개별 행동특성을 분석해 잠재적 위험요인을 사전에 발견하고 이를 최적화된 표준에 맞추도록 하는 작업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타 항공사가 따라오기 힘들 만큼의 항공안전 투자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진에어 역시 사고를 통해 구설수에 올랐던 만큼 안전 강화 작업에 적극적이다. 당장 2015년 60억원 규모였던 관련 투자 비용을 올해 100억원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안전 시스템 정비, 교육 및 훈련 강화, 안전 조직 강화 등에 이를 배정할 방침이다.

대한항공의 자회사라는 점도 활용한다. 기존에 갖추고 있던 예비 엔진, 대한항공과의 정비 위탁 계약 또한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하면서 정비 및 안전 대응에 대한 품질도 향상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24시간 정비 모니터링 및 통제 기능도 강화할 계획이다. 진에어 관계자는 “투자 뿐 아니라 안전 관련 부서의 조직 개편도 하위 조직을 더욱 세분화·전문화하는 방향으로 완료했다”며 “안전과 관련해 더욱 성숙한 환경과 절차와 기준을 갖춰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에어부산은 포상 제도를 마련했다. 안전성 제고에 기여한 공로가 큰 직원에게 순금뱃지 등을 포상하는 게 골자다. 이스타항공 역시 월 1회 우수 승무원을 포상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티웨이항공은 선진 제도를 도입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안전 신고 포상제’ 캠페인을 실시한 것. 이는 안전한 운항 확보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안전저해요소를 발견하는 직원들에게 상시적으로 포상이 이루어지는 제도다. 단순히 보고와 포상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안전과 관련된 조그만 장애요소라도 사전에 발굴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 티웨이항공 모의훈련 장면 / 출처 = 티웨이항공

지난 3월 18일에는 대규모 체객 발생 상황에 대한 전사적 대응 체계를 점검했다. 당시 티웨이항공은 제주공항에 불어 닥친 강풍과 난기류 경보 발령으로 인한 비정상상황을 가정해 모의훈련을 실시했다. 제주공항의 모든 항공편 결항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바탕으로 전 부서가 모인 것. 티웨이항공은 이날 모의훈련 종료 후 강평 자리를 갖고 더 나은 체객 수송 방안을 구축하기 위해 부서별로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백 번 잘했어도 한 번 잘못하면 대형사고를 일으키는 것이 항공기 사고”라며 “항공사들은 안전 관련 투자뿐 아니라 승무원·조종사 등 직원들의 의식 제고를 위해서도 꾸준히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