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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크린] 2016년 1월 12일까지의 팬택‘벤처 신화의 주인공’ 어쩌다 죽음의 문턱까지?
   
▲ 출처=팬택

“단언컨대 메탈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 배우 이병헌의 입으로 전해진 이 카피라이트. ‘단언컨대’로 시작하는 무수한 패러디 문장을 남긴 것으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떤 제품 광고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팬택 스마트폰 ‘베가 아이언’ 광고였다.

강동원과 정우성, 차승원과 유승호까지. 팬택 광고 모델을 거쳐 간 이들이다. 팬택은 스타마케팅에 적극적이었다. 광고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회사가 탄탄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겠다.

‘단언컨대’ 중요한 건 스타마케팅이 아니다. ‘단언컨대’ 카피라이트로 팬택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혁신’이다. 베가 아이언은 끊어진 부분 없이 통으로 된 메탈 테두리를 두른 최초의 스마트폰이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틈바구니에서 팬택은 ‘혁신’으로 대항했다. ‘최초’ 타이틀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빙산의 일각만 읊어볼까. 팬택은 2002년 4월 국내 최초 슬라이딩 휴대폰 IM-5100을 출시했다. 2010년 5월 국내 첫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리우스’를 출시했다. 2012년 9월 세계 최초 쿼드코어 스마트폰 ‘베가 R3’를 선보였다. 2013년 8월 세계 최초 지문인식 LTE 스마트폰 ‘베가 LTE-A’를 내놨다.

   
▲ 출처=뉴시스

IMF 위기도 견뎌낸 ‘살아있는 벤처 신화’

1990년대 초반 IT 벤처 창업이 대세이던 시절이 있었다. 팬택도 그 당시 태어났다. 1991년 일이다. 직원 6명에 자본금 4000만원으로 소소하게 시작했다. 처음엔 삐삐를 비롯해 각종 전자제품을 만들었다. 창업 다음해인 1992년에는 28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후 휴대폰 사업에 진출했다. 1990년대에는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수십 개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벤처부터 대기업까지 여러 사업자가 난입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텔슨전자, 어필텔레콤, VK모바일 등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SK텔레시스나 KT테크처럼 대기업 계열사도 휴대폰 사업을 그만뒀다. 팬택만은 IMF 금융위기까지도 버텨내면서 끝끝내 뉴 밀레니엄을 맞이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팬택은 제조사 인수로 경쟁력을 보강했다. 2000년대 초반 현대큐리텔을 인수하면서 사명을 ‘팬택 앤 큐리텔’로 바꿨다. 당시 현대큐리텔은 팬택보다 규모가 컸다. 2005년에는 SK텔레콤으로부터 SK텔레텍을 인수했다. ‘SKY’ 브랜드로 유명한 업체다. 팬택은 ‘큐리텔’ 브랜드로 중저가 시장을, ‘SKY’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려 했다.

2010년도 팬택에겐 의미 있는 해였다. 스마트폰 사업에 도전장을 냈다. 시리우스, 이자르, 베가, 미라크를 선보였다. 특히 베가는 팬택의 주력 스마트폰 시리즈로 발전했다. 베가S, 베가X, 베가 레이서 등이 연달아 나왔다. 결과는 달콤했다. 2010년과 2011년 LG전자를 누르고 국내 스마트폰 시장 2위에 올랐다. 연구개발 비용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는데도 거둔 성과다. 저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중간에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세계 시장 공략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2007년 워크아웃에 직면했다. 워크아웃 이후 오히려 팬택은 힘을 냈다. 무려 18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2011년 12월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하며 위기를 넘겼다. ‘벤처 신화’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 출처=팬택

‘베레기’ 오명, 2차 워크아웃 신청

워크아웃을 우수하게 졸업하고 얼마 뒤 거짓말처럼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2012년 말부터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 팬택의 부채비율이 무려 2400%에 달했다. 글로벌 휴대폰 판매량은 2011년 1235만대에서 2012년 820만대로 추락했다. 2013년에는 600만대 정도를 팔았다.

실적은 더욱 극적으로 떨어졌다. 팬택은 2011년에 매출 3조108억원과 201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2조2344억원의 매출과 776억원의 적자를 보면서 주춤했다. 2013년에는 매출이 1조3356억원으로 주저앉았고 적자 규모는 2971억원으로 늘어나버렸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팬택은 결국 2014년 3월 다시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말았다.

왜 위기가 다시 팬택을 찾아오고 만 걸까. 1차 책임은 팬택에 있었다. ‘베레기’라는 말을 기억하는가. 베가와 쓰레기를 합친 말이다. 베가와 팬택이 얻은 오명이었다. 팬택 일부 제품은 자잘한 버그가 많았고 A/S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 실패하면서 소비자들은 하나둘씩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프리미엄 시장에 지나친 야심을 보인 것도 훗날 비판을 받았다. 삼성전자나 LG전자에 비해 자금력이 현저히 밀리는 만큼 프리미엄으로 맞붙으려는 건 무리한 전략이었다는 얘기다. 프리미엄 제품을 무리하게 선보이면서도 경쟁사보다 제품을 싸게 넘겨줘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져버렸다. 몇몇 제품을 해외에 수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매출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것도 부담 요인이었다.

누가 팬택을 위기로 내몰았나

국내 통신시장은 팬택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우린 소비자를 대상으로 스마트폰을 파는 제조업체가 아닙니다. 우린 이동통신사에 스마트폰을 납품하지요. 그러니 이동통신사가 이렇게 만들어라, 저렇게 만들어라 하면 그걸 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팬택 직원이라고 밝힌 A 씨가 블로그에 남긴 내용이다.

국내 이동통신시장에서 단말기 유통은 사실상 통신사가 독점하고 있는 구조다. 그러니 단말기 제조사는 을(乙)의 위치에 놓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대등한 입장에서 통신사와 협상할 수 있을 만큼 덩치가 컸다. ‘벤처 신화’의 주인공 팬택은 벤처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팬택은 을 중의 을이었다.

   
▲ 출처=뉴시스

통신사들은 베가에 높은 지원금을 책정할 것을 팬택에 요구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제품과 달리 베가는 많은 지원금을 얹어줘야 잘 팔린다는 판단에서였다. 판매 장려금은 통신사와 제조사가 분담하는 구조인데, 팬택은 협상력이 약한 탓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마케팅 비용을 늘려야 했다. 높은 마케팅 비용 부담은 팬택의 혁신 에너지를 좀먹었다.

위기의 팬택에 확인사살을 가한 건 다름 아닌 정부였다. 2014년 상반기에 정부는 이동통신3사에 45일의 영업정지를 부과했다. 과열된 통신 시장을 잠재우겠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혹자는 ‘통신사 길들이기’라고도 불렀다. 영업정지 시즌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평소보다 60%가량 축소됐다.

이 시절 팬택은 회심작 베가 아이언2를 출시하려 했다. 이 제품을 흥행시켜 워크아웃을 졸업하려 했던 팬택은 직격탄을 맞았다. 당장에 제품을 팔아 이익을 얻어야 했던 팬택은 판로가 막혀 그러질 못했다. 결국 법정관리까지 받게 된다. 팬택의 꿈이 무너졌다.

이후 팬택은 혹독한 계절을 맞이했다. 3차에 걸친 매각 시도가 불발로 끝나면서 패색이 짙었다. 기업 청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것만 같았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때 기적과도 같이 새 주인이 나타나 법원이 회생절차 종결을 결정했지만. 이게 2015년 11월 26일의 일이다. 그리고 2016년 1월 12일 뉴(NEW) 팬택 출범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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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성 기자  |  jojae@econovill.com  |  승인 2016.04.04  07: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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