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금융시스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빚’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분명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빚’ 중심의 시스템에서 모두가 벗어난다면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가 무너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무너진다면 ‘빚’은 없어지겠지만 이를 통해 팽창한 현 경제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 고통은 ‘빚’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보다 더 클지 모른다.

2008년 금융위기는 현 금융시스템이 가장 두려워하는 ‘디플레이션’이 극대화된 시기다. 엄밀히 말해 미국 부동산 시장의 하락이 관련 금융상품들의 문제점을 수면 위로 떠올리며 경기침체가 동반됐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보면 과거 단순 은행 대출 중심의 통화량 팽창 메커니즘은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만들어낸 파생상품 및 파생결합상품 등 각종 신종 금융상품이 ‘유동성 확대’라는 이름으로 그 역할을 이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에 통화량은 늘어날 것인가 줄어들 것인가. 이견이 없는 이상 통화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사실 이는 현 시대 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현대 경제학은 이를 기본으로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메커니즘은 장기적 측면에서 바라본 관점이다.

분명 장기적 관점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확률은 높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처럼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디플레이션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이는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만약 대출수요자가 무한정 늘어났다면 과연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까. 은행은 대출 시 대출자의 신용도를 확인한다. 대출자의 신용도가 높을수록 대출할 확률도 높아진다. 하지만 고신용자들이 모두 대출을 받았다면 은행은 그 다음으로 신용도가 높은 사람들에게 대출을 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 가장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대출이 이뤄진다.

2008년 금융위기가 부동산 관련 파생상품의 문제에서 불거졌다지만 근본적 문제를 짚어보면 당시 ‘서브프라임’ 등급에 대출이 이뤄진 것이 문제였다. 이들에게까지 대출이 이뤄졌다는 것은 향후 대출을 받을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뜻이다. 현 금융시스템상 빚을 빚으로 지속해서 지탱해야 하지만 대출수요자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건 아니다. 모두가 대출을 받고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주체가 없다면 ‘빚’으로 움직이는 현 경제는 당연히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양적완화(QE)를 통해 달러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QE가 마치 새로운 정책처럼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이는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는 기존에 존재했던 정책이다. 다만 그 규모가 4조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수치였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앞서 언급한 얘기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왜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QE를 단행했는지 알 수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현대 경제를 지탱해온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시중에 풀고 이를 이용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QE는 디플레이션을 가장 두려워하는 자본주의의 저항이라 할 수 있다.

 

유동성은 왜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내지 못했나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출이며 대출은 신용창조 과정을 통해 통화량을 늘리는 주체라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천문학적인 QE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2014년에 미국의 셰일에너지 부흥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서 현재 30달러로 주저앉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 출처:한국은행 자료 재인용

그렇다면 다시 ‘대출’이라는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시중통화량에 있고 통화량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대출에 있다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원인은 대출 수요자가 감소한다는 데 있지 않을까.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구구조학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은퇴세대’들이 노후를 위해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각종 자산을 판다면 한마디로 경제 후폭풍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인구구조학적 문제로 경제 전망을 명확히 진단한다는 것도 어렵고 현재까지도 이에 대한 논쟁은 진행형이다. 하지만 경제활동은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IT 산업의 발달은 인간이 경제활동을 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일 뿐 그 중심에는 분명 인간이 존재했다.

인구구조의 문제는 분명 가보지 않은 영역이며 이를 통해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은행의 대출 중심 금융시스템이 현 세계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면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는 과거 대비 대출 수요가 줄어든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위협적이다. 즉, 신용창조가 빠르게 일어나지 않아 통화량 증가도 그만큼 둔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통화량 증가율이 둔화된다는 것은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이 둔화되는 현상)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며 심각할 경우 디플레이션(물가하락에 이은 경기침체)에 직면할 수도 있음을 말한다. 결국 인구구조 변화와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디플레이션의 관계를 떼어 놓을 수 없음을 말한다.

 

인구구조 변화 문제, 무엇으로 대체될까

인구구조 변화는 크게 두 가지의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대출수요 감소로 통화량이 감소하는 것과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시장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는 당연히 인플레이션 발생 여부와 연관이 있다.

그러나 반드시 상기해야 할 점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발생할 문제는 ‘가보지 않은 영역’이라는 것이다. 또한 각종 IT 기술의 발달과 복지정책 등을 통해 인구구조 변화를 뒤따라올 수 있는 문제점들이 일부 제거되고 있다는 점은, 고령화시대가 필연적으로 디플레이션을 이끌고 올 것이라 단정하는 것이 미래를 예측하는 데 큰 착오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 출처:통계청

또한 시중통화량 증대가 대출 중심의 금융시스템에서 IB들의 각종 신종 금융상품을 통해 유동성 확대 등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감안하면, 자본주의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빚’은 그 규모가 축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어떻게 하면 빚에 짓눌리지 않고 자산 증식을 이룰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지만 인구구조 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 혹은 산업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고령화를 테마로 한 각종 금융상품은 물론 이와 연관된 바이오·제약 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점을 무심코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이는 단순 ‘고령화=바이오제약’이라는 함수와 같은 문제가 아니다. 쉽게 말해, 은퇴 세대들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세대들의 소비를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복지정책, IT 발달에 이은 인공지능(AI)의 발전이 생산인구 감소를 보완한다면 고령화 시대에도 노동생산성은 높아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현실화된다면 자본주의는 무너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빚’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를 넘어설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