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장충동 족발촌만큼 ‘원조’라는 단어에 열을 올린 곳이 또 있을까? 원조집 간판이 즐비한 장충동 골목. 사실 40~50년 이상의 전통을 고수하며 각각의 철학을 갖고 고유의 맛을 내는 여러 원조집들 중 한 곳을 콕 짚어 ‘여기가 원조’라 말하는 것이 얄궂지만 그래도 굳이 원조집을 찾는다면 맛으로 더욱 소문난 52년 전통의 ‘평안도 족발집’을 들 수 있다.

기자가 평안도 족발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뜨인 것은 ‘원조의 원조, 평안도 족발집’이란 간판이었다. 주인장인 이경순(77) 할머니가 주변에서 너도나도 원조라는 간판을 달자 “우린 원조의 원조야!”라고 이름 붙였다 하니 이곳의 원조 경쟁이 짐작할 만하다.

‘평안도 족발집’은 골목 안쪽에 위치해 사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길을 헤매기 일쑤다. 때문에 명성을 듣고 방문하지 않는 한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들릴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평안도 족발집’이 아는 사람들에게만 회자되다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 등장하고 나서부터다.

“처음부터 허영만씨가 여길 안 것은 아니야. 지인이 이곳을 추천해 줬겠지. 여러 사람들이 와서 족발을 먹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구. 그 이후로 식객에 우리 집이 모델로 나온거고…. 그 전에는 장충체육관이 옆에 있어 주로 농구나 배구 선수들이 많이 왔어. 허재나 유재학 감독. 허재는 중학교 시절부터 봤네, 그뿐이게? 문교부 장관 지냈던 민관식 장관 등 정재계 사람들도 많이 찾아왔었지. 여기가 유명인사들이 많이 오던 집이야.”

연신 단골손님 자랑을 하는 할머니는 은근슬쩍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에 눈길을 보낸다. 1년 전 고관절 수술을 받았다는 할머니는 거동이 힘들어 보였지만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특히 단골손님들 이야기할 때는 얼굴에 화색이 돈다. 수술 받기 전에는 손님들과 테니스도 함께 쳤다며 다리가 회복되는 대로 다시 테니스를 치겠다고 벼른다.

“형님이 4.19 나기 전에 족발집을 시작했지. 그 당시가 1960년이니까 50년이 넘었네. 30년 전쯤 내가 형님과 함께 일하게 된 거고 3년 전 형님이 돌아가셔서 지금은 내가 조카며느리와 함께 이 가게를 지키고 있지.”

원조라는 타이틀보다는 맛으로 더욱 평판이 좋은 족발에 대해 그 비결을 물었다. “비결은 50년 된 국물이야. 족발을 삶는 장 국물. 생강을 많이 넣어 고기 군내를 없애고 왜간장으로 향과 색을 내는 거지. 국물은 적게 놓고 불을 세게 해 오래 끓이는 거야. 그러면 기름이 뜨게 되고 펄펄 끓는 기름에 족발이 다시 한 번 튀겨지는 거랄까….

센 불에 끓이면 고기가 풀어지지 않고 쫀득거려. 내가 아무리 말해줘도 다른 사람들은 이 맛 못 내.” 미리 고기를 삶아놓지 않는 것도 맛의 비결이다. 손님들 수요를 맞추기 위해 미리 삶아놓을 만도 한데 그렇게 되면 위생상 좋지도 않을 뿐더러 보들보들한 맛도 없어져 수시로 삶아 고기를 썰어놓는다.

가장 맛있는 부위가 어디냐는 질문에 부위보단 “가장 커다란 고기가 오래 삶은 만큼 맛이 제대로 들어 제일 맛있다”고 한다. 결국 대(大)자 이상을 먹어야 한다는 것. 이곳의 가격은 소(小)자가 3만원, 중(中)자 3만5000원, 대(大)자 4만원, 특대(特大)가 4만5000원이다. 동네 족발집에 비해 가격은 높은 편이지만 이곳은 점심시간부터 손님들이 붐비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모임부터 가족손님, 젊은 회사원들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이곳 족발은 점심부터 먹어도 전혀 무겁지 않고 담백해서 질리지 않아요.” 장충동에 올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는 젊은 사업가 김병길(31)씨의 말이다.

“제가 장충동의 다른 족발집 고기들도 맛을 봤는데 사실 많이 먹으면 느끼하잖아요. 그런데 여긴 달라요. 먼저 순살코기가 있는 부위도 전혀 퍽퍽하지 않고 껍질 부분의 쫀득함은 다른 곳과 비교할 수가 없어요. 특히 된장에 찍어 먹으면 그 짭짤한 장맛이 입맛을 돋워 돌아서면 그 맛 때문에 다시 찾게 돼요.” 그는 “퓨전요리에 익숙한 젊은 사람 입맛에도 이렇게 오래도록 인상에 남는 것을 보면 확실히 원조집이란 전통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직접 족발 맛을 봤을 때 가장 감탄스러운 것은 김씨의 말대로 콜라겐 덩어리인 껍데기의 쫄깃한 식감이었다. 살짝 식힌 갓 삶은 족발의 따뜻한 온기와 퍽퍽한 부분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부드러움. 특히 짠 맛이 맴도는 집에서 직접 담근다는 된장은 새우젓보다 족발과 훌륭한 궁합을 이뤘는데 자극적이면서도 고소한 짠 맛이 입맛을 돋웠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살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 국물이다. 입 안의 기름기를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말끔히 씻어줘 텁텁함을 없앤다.

“나는 절대 족발에 한약재나 다른 재료들을 넣지 않아. 한약이 몸에 좋으면 한약을 달여 먹지 왜 족발에 넣어? 생강, 간장, 양파 등 기본이 되는 양념 외 일체 다른 것은 넣지 않는 게 내 신조야. 고기를 삶는 것도 아무나 안 시켜. 내가 직접 하던가 못할 경우 17년 일한 아줌마에게만 이 솥을 맡겨.”

‘장사가 잘 되더라도 주인이 가게에 얼굴을 내밀지 않으면 손님이 오지 않는 법’이라고 덧붙이는 그녀는 음식의 맛도 중요하지만 온 손님들을 기억하고 알아봐 주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3000미터 스케이트 선수 출신이라는 할머니는 지금도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녀를 아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하루가 달리 젊어진다는 칭찬 일색으로 할머니와의 친분을 과시한다.

정직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조리 과정, 손님들과의 지속적인 소통,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주인장.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뤄 50년이라는 원조집 전통을 만들고 있었다.
위치 : 지하철3호선 동대입구역 3번 출구 직진, 뚱뚱이 할머니네 골목
문의 : (02)2279-9759

최원영 기자 uni354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