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또 오성홍기(五星紅旗)가 펄럭일 조짐이 보이고 있다. 중국의 칭화유니그룹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300억 달러(약 35조 원)에 달하는 거액을 조달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마이크론과 샌디스크 인수에 실패하며 잠시 주춤했던 칭화유니그룹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만들고 있다.

당장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블룸버그는 24일 칭화유니그룹이 지방정부와 사모펀드 등으로 약 300억 달러를 조달받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공략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힘입어 칭화유니그룹은 지난해 매출 21억 달러의 10배에 달하는 200억 달러의 매출을 자신하고 나섰다. 다만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고려사항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D램과 낸드플래시 등으로 장악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초기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만 사업이 궤도에 올라서는 순간 충분한 수익성을 보장받는다.

칭화유니그룹, 그 거대한 그림자
칭화유니그룹은 칭화홀딩스와 베이징-쟝군 인베스트먼트가 합작투자해 설립한 특수목적회사다. 칭화홀딩스 산하에 SYH LC를 비롯해 칭 캐피탈, 그리고 소비자 가전 및 에너지 사업을 담당하는 칭화 동핑, 샌디스크 간접인수에 동원되기도 했으며 호텔사업 및 소프트웨어 등을 주특기로 삼은 유니스플렌더, 그리고 칭화유니그룹이 포진해있다. 배이징 인베스트먼트의 자금은 칭화홀딩스의 자회사인 칭화유니그룹에만 집중되어 있다.

인텔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던 칭화유니그룹은 지난 2013년 시스템 반도체 설계업체인 스프레드트럼 커뮤니케이션과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동시에 인수하며 업계의 눈길을 끌었다.

이후 순식간에 중국 내 최대 반도체 설계 회사로 발전한 칭화유니그룹은 지난해 7월 글로벌 3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을 23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해 세상을 또 놀라게 만들었다. 비록 마이크론 인수는 미국정부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았으나 칭화유니그룹의 자금력과 야심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지난해 칭화유니그룹이 미국 샌디스크를 우회인수하려 시도했기 때문이다. 칭화유니그룹의 유니스플렌더가 대주주로 있는 웨스턴디지털이 실제적인 인수합병에 나섰으며, 실제로 거래는 성사직전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미국정부의 반대로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웨스턴디지털은 세계 최대 하드디스크드라이브 업체며, 샌디스크는 메모리 반도체의 핵심 중 하나인 낸드플래시 기술력을 보유한 상황에서 또 다른 업계 강자인 일본의 도시바와 합작공장을 운영하던 상태였다. 만약 이 거래가 성사됐다면 칭화유니그룹은 낸드플래시가 주로  사용되는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 시장의 패권을 쥔 삼성전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칭화유니그룹은 마이크론과 샌디스크 인수에는 실패했으나 대만의 미디어텍 인수에 성공하기도 했다. 모바일 AP, 즉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퀄컴에 이어 2인자인 대만의 미디어텍 인수는 칭화유니그룹의 강력한 식성을 짐작하게 만든다. 이 외에도 칭화유니그룹은 인수합병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 상황이다. 참고로 칭화유니그룹은 지난해 말 삼성전자에 이어 글로벌 D램 시장 2위인 SK하이닉스 인수를 시도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칭화유니그룹은 중국 반도체 굴기의 선봉장이다. 다만 24일 300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한다고 천명한 지점은 약간 큰 그림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 반도체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국가 차원의 선택과 집중이 진하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칭화유니그룹은 이번 자금 조달을 발표하며 자신들이 국영기업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그렇게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큰 그림의 배경인 중국 정부의 존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중국, 산업의 쌀 잡아라
현재 중국 정부는 반도체 시장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 브랜드 강화를 집요하게 노리고 있다. 2014년 기준 중국 반도체 시장의 매출규모가 3015억 위안(약 54조 원)에 달하지만 실질적인 자체 생산율은 약 10%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사용될 곳은 많지만 자체 생산율이 낮기 때문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2013년에는 반도체 수입금액이 사상 처음으로 원유 수입금액을 앞지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반도체 자체생산율 40%, 2025년까지 7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10년간 1조위안(약 182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디테일한 방법론도 등장했다. 2010년 7대 전략적 신흥산업에 반도체 산업을 포함시킨 중국 정부는 2014년 6월 24일 공신부가 정식으로 '국가 반도체산업 발전 추진 요강'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2020년까지 반도체 산업 연평균 20% 성장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설계분야에 있어 제조 분야는 16나노 및 14나노 대량생산, 후공정 분야는 세계 최고수준을 달성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소재 및 장비 차원에서도 글로벌 반도체 업체에 공급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

2014년 10월 설립된 국가IC산업 투자기금을 설립한 대목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중국 정부 차원의 국부펀드며, 초기 자금규모만 1200억 위안(약 21조 원), 지방정부 기금 및 사모기금이 600억 위안(약 10조 원)에 달한다. 해당 펀드 자금 중 이미 칭화유니그룹에만 100억 위안이 지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실질적인 지원과 더불어 중국 정부 특유의 폐쇄적이고 다소 강압적인 방법론도 보인다. 퀄컴이 중국에서 반독점 위반혐의를 받으며 고전을 면치 못하자 스냅드래곤 시리즈 일부를 중국 제조업체인 SMIC와 맺은 대목이 극적이다. 처벌수위를 낮추기 위한 퀄컴의 자구책이며, 이는 기술이전 및 생태계 확장을 노린 중국 정부의 시나리오라는 설이 중론이다.

현재 중국 정부는 반도체 시장 전반을 장악하기 위한 맹공을 거듭하고 있다. 칭화유니그룹을 중심으로 설계에 RDA, 제조에 동방국신 및 SMIC, 후공정에 동복미전 등 다양한 기업들을 내세우며 중국판 종합 반도체 어벤저스를 꾸리는 실정이다.

게다가 설계 및 제조, 후공정 등 반도체 산업의 유기적인 '체인'들을 적절하게 육성하며 나름의 로드맵도 꾸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약한 소재 및 제조분야를 키우는 한편 매출액 기준 상위 50개 기업 중 총 10%를 보유한 설계의 경우 강력한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이미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후공정이 이를 받치는 상황이다.

한국, 공포의 계절이 온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칭화유니그룹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정조준하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같은 국내기업이 공포에 떨고 있다. 가뜩이나 치킨게임 양상으로 흘러가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불안한 상태에서 강력한 대항마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만 이 대목은 최근의 가격변동 및 시장의 흐름, 그리고 중국의 움직임 등을 복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현재 D램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 70%를 가져가며 거의 시장 독과점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D램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덕분에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반도체 부문이 거둔 영업이익은 총 12조7900억 원으로 2014년 8조7800억 원에 비해 크게 늘어났으나, 지난해 4분기 분기 매출은 확대되어도 영업이익 규모가 줄어드는 불안한 분위기를 연출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은 13조2100억 원으로 2014년 동기 12조8200억 원보다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3조6600억 원에서 2조8000억 원으로 떨어졌다. 이도 애플 효과로 인한 시스템LSI 부문 실적이 늘었기 때문에 그나마 선방한 수치다.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동력이 서서히 떨어지는 상황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IM부문이 맥을 추지 못하며 갤럭시 신화를 추억속으로 떠나보내는 지경이다. 이 대목에서 반도체가 사실상 반도체가 주력으로 부상했으나, 이제 이 마저도 장담하지 못하게 됐다.

그나마 3D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 다변화를 보유한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의 사정은 더 나쁘다. SK하이닉스의 D램 비중이 75%에 달하는 등 매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 SK하이닉스는 4조4160억 원, 영업이익은 9888억 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각각 10.3%, 28.5% 줄어든 우울한 성적표다.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집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쟁자들을 누를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낸드플래시 영역에서 더욱 뚜렷한 성과가, SK하이닉스의 경우 20나노 비중이 늘어나면 2분기에는 중간정도의 성적표가 유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D램 가격 변동성이 심하다는 점과 시장의 공급과잉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대목과 더불어, 이 복잡하고 우울한 영역에 중국까지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다는 점이다. LCD 시장에서 박리다매 정책을 바탕으로 중국이 순식간에 디스플레이 패권을 가져간 점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참고로 칭화유니그룹은 지난해 12월 18일 2000억 위안(약 36조 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24일 대규모 자금조달 계획을 밝히기 전인 지난해 12월, 칭화유니그룹이 600억 위안을 투입해 자국에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직접 건설하겠다고 밝힌 대목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완성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17라인과 비슷한 규모며 300㎜ 웨이퍼 기준으로 월 12만장 규모의 반도체를 찍어낼 수 있는 첨단 라인 1개가 유력하다. 24일 발표된 자금조달이 반드시 인수합병에만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일각에서는 중국의 기술력이 국내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주장을 펴며, '아직 멀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사실이다. 칭화유니그룹이 당장 D램 공장을 건설한다고 해도 40나노 수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칭화유니그룹도 이 사실을 모를리 없으며,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메모리 반도체의 '메이드 인 차이나' 브랜드 전략을 살펴야 한다. 물론 인수합병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중국 메모리 제조업체 XMC가 미국의 IC(집적회로) 설계업체 스팬션(Spansion)과 협력해 3D 낸드플래시 공장을 건설한다고 주장한 대목도 극적이다. 2018년부터 3D 낸드플래시를 양산한다는 계획이며, 해당 시장에서 40%의 점유율을 가진 삼성전자는 D램에 이어 또 하나의 적을 만나는 셈이다. 최근에는 인텔도 중국에서 3D 낸드플래시 생산에 뛰어든 바 있다. 첩첩산중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가운데 자국 전자사업에 활용하는 제품을 중국이 직접 생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이러한 파급력이 글로벌 시장으로 전이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막대한 자금력에 중국 정부의 지원, 여기에 D램은 물론 삼성전자의 반도체 자존심 중 하나인 3D 낸드플래시까지 위협받고 있다.

여기에 논의를 삼성전자에만 집중하면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은 미비한 가운데 소위 애플만 바라보고 있고, 메모리 반도체 전역에서 전선이 지나치게 넓어지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인텔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진입을 본격적으로 노린다는 설이 파다하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반도체 인력도 중국으로 떠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500개, SK하이닉스는 1500개의 국내외 협력사가 있는 상태에서 이미 상당수 인력이 중국으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높은 연봉에 좋은 대우를 당근으로 제시하며 전사적인 인재 빼가기에 나서는 셈이다.

과거 국내 기업들이 일본 반도체 기술력을 따라가기위해 고급 기술자들을 금요일 밤에 초청, 기술을 전수받고 일요일 밤 돌려보내는 달빛 관광(Moonlight Sightseeing)을 이제는 중국이 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산업통상자원부가 인력 유출에 대한 긴급회의를 열기도 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시스템 반도체 인프라가 거의 없는 국내 반도체 산업 최후의 보루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는 말까지 가지 않더라도, 수익성은 떨어지고 있으나 모든 전자산업의 연료로 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중요한 핵심이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공습이 무섭게 펼쳐지고 있다. 국내기업들은, 아니 우리는 이에 대한 준비가 되었는가. 진지한 자문이 필요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