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욱 ㈜스토리엔 대표.

“그 스토리 사장님께서 직접 만드신 거예요.”

강의 차 내려간 전남 나주의 한국전력공사(한전, KEPCO) 본사. 강의를 마치고 전력홍보관에서 조기형 언론홍보팀장과 김종래 뉴미디어팀장은 한전과 나비에 얽힌 스토리를 꽤 재밌게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스토리텔러가 바로 조환익 사장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전의 나비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한전은 지난 2014년까지 서울 삼성동, 이른바 삼성동과 잠실운동장을 지칭하는 잠실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을 기해 전라남도 나주, 빛가람에너지밸리로 이전했습니다. 한전은 서울 잠실에서 전남 나주로 이전하며 ‘잠실에서의 누에고치 시대를 지나 나주에서 비단을 펼친다’는 스토리를 담았습니다.

잠실의 한자 蠶室은 ‘누에를 치는 방’입니다. 누에는 나비로 완전변태(完全變態)하기 위해 준비하는 유충의 단계죠. 또 나주를 한자로 보면 羅州, 즉 ‘비단 고을’입니다. 결국 누에에서 비단을 짜고 나비로 완전변태를 이룬다는 변신 스토리인 셈입니다. 스토리의 키워드가 되는 ‘누에, 비단, 그물망, 나비’는 한전의 변화를 스토리텔링하여 구체화한 이미지들입니다.

▲ 한전의 나비 스토리 이미지. 사진=한국전력공사

그래서 빛가람에너지밸리의 전력홍보관 입구 로비에는 형형색색의 나비 모빌들이 날고 있으며, 미래를 여는 체험관도 나비의 변신을 모티프로 연출해 놓았습니다. 전력홍보관의 ‘나비로의 변신’이란 콘셉트는 미래에 펼쳐질 빛가람에너지밸리 시대를 제시하며, KEPCO의 역사, 에너지신산업 기술, 스마트그리드를 비롯한 국내외 미래사업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KEPCO의 나비 스토리와 유사한 스토리텔링이 있습니다. 필자는 몇 년 전에 세종특별자치시의 스토리텔링 컨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종시 인근에서 해마다 진행하고 있는 ‘도원문화제’와 ‘왕의 물 축제’를 통합하고, 새로운 행정도시 세종시를 의미하는 ‘제1회 세종축제’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필자는 그 프로그램의 하나로 ‘왕의 길, 왕의 물’을 기획했습니다. 즉 행정도시가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전한다는 의미로, 서울 세종로에서 세종시 전의면 ‘왕의 물’ 축제에 이르는 ‘왕의 길’ 스토리를 구체적인 이벤트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제1회 세종축제에만 가능한 스토리텔링 행사였습니다. 조금 아쉽게도 이 행사는 실행 단계에서 수정되었습니다.

이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것은 명확한 스토리 원천이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있었습니다. 세종실록에는 당시 세종대왕이 심한 안질에 시달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최근 방영하고 있는 방송사 사극 드라마 <장영실>에서도 그 장면이 있습니다.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 앞에서 눈의 침침함을 호소하는 장면이 종종 나옵니다. 결국 세종은 온천 원행(遠行)을 택하는데, 이 온천이 지금의 세종시 전의면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전의면 ‘왕의 물 축제’의 유래가 되었죠.

한국전력과 세종시, 이 두 스토리의 원천은 ‘이전(移轉)’입니다. 잠실벌에서 나주로 이전했고,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전했습니다. ‘이전’이라는 중요한 사건을 하나의 모티프로 활용하여 스토리텔링했죠. 이전은 새로운 변화를 상징하므로 스토리텔링 모티프 중 ‘변신(變身)’에 해당합니다. 한전의 ‘누에에서 나비로의 변신’은 지역명의 뜻을 제대로 활용한 좋은 스토리텔링이죠. 누에가 나비가 되듯 변신하는 것입니다.

▲ 한전의 전력홍보관 개관식 모습. 가운데가 조환익 한전 사장. 사진=한국전력공사

세종시의 ‘왕의 길, 왕의 물’ 스토리는 역사의 한 편인 세종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하며 행정도시 이전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상징적인 스토리죠. 의미도 있지만 다소 발칙한 재미도 있으니 홍보 효과도 노릴 수 있으니 스토리로서 제격인 셈입니다.

앞선 칼럼에서는 스토리텔링을 위해서 스토리를 써 나갈 ‘인물’에 대해 썼습니다. 그 인물 못지않게 ‘사건’은 그 자체가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습니다. 사건에는 인물도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한전이 이전한 나주에는 나비가 있었고, 세종시의 세종축제에는 세종대왕이 그 인물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