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18일 주요 협력업체와 공동으로 고객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강력한 보안 강화 노력을 다짐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겠다는 천명이며 이 자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수사기관에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일에 꺼리낌없는 통신사들의 현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의미심장한 행보다. 합법의 태두리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총체적인 난국이 엿보인다.

▲ 출처=KT

KT의 노력
KT는 고객정보를 취급하는 주요 협력사 대표 등 관련자 120여 명을 초청해 KT광화문 빌딩 West 드림홀에서 고객정보 취급 협력사 대표 간담회를 열었다. 협력사의 보안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우수사례를 발굴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KT IT기획실장 신수정 전무는“개인정보의 안전한 취급 없이는 동반 성장 및 협력관계 유지가 불가능"하다며 “적법한 범위 내에서만 개인정보를 처리해야 하고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KT는 회사의 모든 역량을 고객정보 보호에 집중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KT의 이러한 노력은 대승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ICT 기술의 발전으로 개인정보 탈취 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국가기간사업을 담당하는 KT의 보안강화 노력은 그 자체로 찬사를 받아야 한다.

KT 관계자는 "이번 간담회는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적 측면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KT는 개인정보 보안에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일말의 씁쓸함도 남긴다. KT를 비롯한 통신사들은 시스템적 측면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동시에 수사당국이 특정인물의 개인정보를 원할 경우 원없이 퍼주는 일에도 매진하기 때문이다.

▲ 출처=픽사베이

취미로 수사당국에 개인정보 제공?
KT를 비롯한 통신사들은 수사당국이 원할 경우 자사가 확보한 고객의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통신사들은 수사당국과 소위 전용선을 연결해 통신자료제공요청이 있는 경우, 형식적인 요건만 확인되면 즉시 통신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해당 개인정보는 가입일과 이름, 주민번호 및 전화번호가 포함되어 있으며 제공된 정보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3042만1703건에 달한다. 최원식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매일 2만7782건의 개인정보가 영장도 없이 수사당국에 제공됐다는 후문이다.

물론 이러한 행위에 법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을 보자.

본 조항은 [사업자는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군 수사기관의 장, 국세청장 및 지방국세청장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 수사(「조세범 처벌법」 제10조제1항·제3항·제4항의 범죄 중 전화,인터넷 등을 이용한 범칙사건의 조사를 포함한다),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이하 "통신자료제공"이라 한다)을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가 되어 있다.

조항의 마지막 문구인 '따를 수 있다'가 관건이다. 이는 '사업자가 요청에 응할 수 있으며, 또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업자의 경우 협조를 해도 합법이며 협조하지 않아도 합법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통신사는 법 조항의 모호함을 유연하게 해석해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포털 사업자들의 접근법과 완벽히 배치된다. 포털 사업자의 경우 최근 '회피연아' 대법원 판결 등을 거치며 적법한 절차가 없는 경우 수사당국에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근원적인 문제는 법 조항의 모호함이지만 이를 해석하는 방식은 포털과 통신사가 180도 다르다는 뜻이다. 포털은 개인정보 보호에 무게를 실었고, 통신사는 반대를 택했다.

▲ 회피연아. 출처=유튜브

고객정보 퍼주는 통신사, 무슨 자신감일까?
국가안보의 차원에서 개인정보가 열람되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법 조항은 모호하며 포털 사업자와 통신사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다만 포털 사업자는 '수사당국에 대한 개인정보 제공 범위'까지 고민하며 철저한 영장주의에 입각하려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지만 통신사가 무작정 수사당국에 협조하는 분위기는 매우 미묘하다.

양쪽의 차이는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가치판단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이 탄력을 받고 있다.

현재 통신사는 개인정보를 수사당국에 제공하면서 정보가 제공된 사람이 이유를 물어도 명확하게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는 공동으로 법적인 투쟁까지 나선다는 방침이다. 즉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현재 방식은 상당한 리스크를 수반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통신사는 이러한 리스크보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적인 생존전략에 더 천착한 분위기다. 반발을 무릅쓰고 개인정보를 수사당국에 제공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신사에게 이득이라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포털 사업자와 같은 부가통신사업은 누구나 진입이 가능한 무한경쟁시장이며, 문제가 생기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다만 통신사업은 국가기간사업이며 폐쇄적인 독과점 시장이기 때문에 가입자들이 불만을 가져도 쉽게 기존 생태계를 버리기 어렵다"고 전했다.

정리하자면 고객정보를 수사당국에 제공하는 행위는 포털 사업자에게는 재앙이며, 당연히 포털 사업자는 이 문제를 두고 신중하게 접근한다. 하지만 통신 사업자는 개인정보를 수사당국에 제공한다고 해도 통신사업의 폐쇄적인 특성상 이용자로부터의 타격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수사당국에 협조하는 것이 주파수 경매 등을 앞둔 그들에게 유리하다는 해석이다.

최초 카카오 감청 논란이 터졌을 때 탈 카카오 러시가 벌어졌지만, 통신사들이 수사당국에 개인정보를 아낌없이 제공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져도 시장에 별 반응이 없다는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아이폰 백도어 논란 당시 구글과 페이스북 등이 격렬하게 반발한 지점도 비슷한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즉 통신사는 개인정보를 수사당국에 제공해도 이용자들의 반발이 미비하며, 바로 이 대목이 그들의 자신감으로 보인다.

물론 통신사들의 이러한 접근법이 불법은 아니다. 미묘한 법 조항을 빠르게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통신사가 개인정보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수사당국에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개인정보 탈취는 다른 사항이지만, 접근시각을 보면 통신사의 문제가 뚜렷하다.

한편 KT 관계자는 "수사당국에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합법이며, 이번 간담회의 성격과는 다소 느낌이 다르다"며 "KT가 개인정보 이슈와 관련해 고초를 많이 겪었기 때문에 준비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간담회는 시스템적 측면에서 개인정보를 보호하자는 취지일 뿐이며, 수사당국에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현안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