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김권기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기획단 재생기획반장, 권기호 서울역 염천교 상우회 회장, 조경민 고가산책단 단장[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노연주 기자]

1970년 이후 서울역 인근 중구 퇴계로와 만리재로를 잇는 서울 중심부의 동맥 역할을 해온 서울역 고가도로. 하지만 2000년 이후 거듭 안전진단 D등급을 받는 등 붕괴 우려가 커지자, 서울시는 고가도로를 ‘차량길’에서 ‘사람길’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고, 도심 공중정원으로 탈바꿈시키는 대수술에 들어갔다. 서울역 고가가 폐쇄된 지 3개월이 지난 현재. 서울역 고가 공원화 관련 서울시·지역상인·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인터뷰①] 김권기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기획단 재생기획반장

‘걷기 좋은 동네, 재개발 대신 재생하는 도시’ 선도

 

서울의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은 난무하는 재개발 대신 재생하는 도시, 걷고 싶은 도시의 모습을 갖출 때 나온다. 내년 4월 완공되는 서울역 고가 사업은 재건축 및 개발만 진행하는 게 아니다. 본질과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부분을 보존하면서 재생한다.

김권기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기획단 재생기획반장은 “뉴욕 하이라인 파크와 서울역 7017프로젝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변지역 도시재생에 있다. 서울시는 고가 완공 후에도 주변지역 도시재생을 계속해서 추진한다”며 “이번 서울역 고가 사업은 걷는 도시 서울의 선두사업이 되고, 도시재생의 선도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5월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기획단’을 신설했다. 이 조직은 서울역고가도로 및 주변 도시재생사업의 전반적인 사항을 맡아 처리하며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김권기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기획단 재생기획반장은 “차량길을 보행로로 만들어 걷고 싶은 고가도로를 만들기 위해 전담 업무를 처리한다. 서울역고가 및 주변지역 재생과 관련된 서울시내 여러 부서들과 연결해 소통 및 중계 역할도 한다”고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 기획단을 소개했다.

“고가가 없어지고 공원이 들어서니 교통 대란과 동선이 복잡해질 것이라는 반대 논리가 가장 많았죠.” 김 반장은 고가공원 사업의 주된 반대 입장을 설명했다. 특히 주요 지역인 중구 시민이나 남대문시장 상인 등은 ‘대체도로’를 대안으로 요구한다. 하지만 미정 상태다. 서울시는 서울역 북쪽 철도부지에 왕복 4차로 고가도로를 신설하는 등의 계획을 추진했다. 하지만 소유주 코레일과 원활한 협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 재생기획반장은 “코레일과 계속 협상 중에 있다. 이야기가 잘되면 당연히 대체도로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대체도로만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대문시장이 그런 경우”라고 말했다. 시는 남대문 시장의 접근성 강화 및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그동안 정차하지 않았던 서울시티투어버스와 남산순환버스를 퇴계로에 정차하도록 했다. 또 인근 도로를 왕복 6차로→4차로로 변경해 관광버스, 조업차량, 오토바이 주차장 등도 신설하고 보도를 확장할 계획이다.

특히 남대문시장 쪽은 반대의 목소리가 강한 곳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제2차 고가개방 행사에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김 재생기획반장은 “당시 5만여명의 서울시민이 고가개방행사에 왔다. 이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남대문 시장에 유입됐는데, 이때 사람들이 모이니까 시장으로 흘러온다는 것을 체감하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에는 소유주, 임차인, 노점상 등 각자 취하는 이익이 다 다른 개인들이 모여 있다. 그분들 생각을 다 끌어안고 가느냐가 과제다. 관에서 전체를 다 아우르려 하기보다 상인회서 여러 개인의 의견을 적당하게 조율해주는 역할을 해주시면 좋다”고 덧붙였다. 시에 의하면 지난 12월 서울역 고가가 완전 폐쇄된 이후 오히려 반대의 목소리가 확연하게 줄었다.

시는 이제 ‘소통’에 초점을 맞춰 재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 재생기획반장은 “우리는 재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본연의 것을 살리고 낙후되거나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재생하는 것”이라며 “특히 고가와 연결된 주변 지역들의 도시재생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풍부하게 들으며 진행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기획단은 이번에 홈페이지 ‘서울역7017 (ss7017.org)’를 개편했다. 시민참여 게시판을 강화해 양방향 소통을 원활하게 한 것. 시민들은 고가 및 주변지역 도시재생에 관해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질문을 할 수 있다. 답변은 담당 공무원이 직접 해준다. 또 올해 도시재생지원센터라는 조직도 새로 생겼다. 이곳은 고가 주변 지역 일대 도시재생을 전체적으로 조정하는 지역으로 각 지역별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니터링하는 코디네이터를 선정하고 있다. 김 재생기획본부장은 “주로 지역주민들과 소통할 때 반대논리 완화나 굵직한 민원 사항 등을 처리하는 것을 넘어 더 디테일하고 세심한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인터뷰②] 권기호 서울역 염천교 상우회 회장

“최초의 구두거리, 지원 이전에 지켜주기라도”

 

서울역에서 중림동으로 건너가는 고가다리인 염천교. 이곳에는 해방 후 미군들의 중고 전투화를 개조한 신사화를 팔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우리나라 최초 구두거리인 ‘염천교 수제화거리’가 위치해 있다.

하지만 최근 서울역 고가도로 폐쇄로 인해 염천교 수제화거리가 흔들리고 있다. 서울역 고가 폐쇄로 인한 교통체증 탓에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 이곳 상인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는 것. 20여 년째 염천교 수제화거리에서 구두를 판매하고 있는 권기호 서울역 염천교 상우회 회장(66세, 미래제화 사장)을 만나 ‘염천교 수제화거리’의 현 상황과 개선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염천교 수제화거리는 값비싼 가죽 대신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군화 가죽을 이용해 구두를 만들어 팔면서 시작된 국내 첫 제화거리다. 1970~1980년대 전국에서 생산되는 구두 대부분을 이곳에서 책임지는 등 한때 ‘국내 구두산업의 성지’로 불리기도 했다. 최초의 구두거리답게 현재 수제화 생산 라인에서 활동 중인 장인들의 평균 연령대는 60대 후반~70대 초반으로, 기본 경력만 30년 이상 된 베테랑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대형 구두 제조사들의 등장과 함께, 값싼 중국산 구두의 공세로 500군데 이상이던 상점은 하나 둘 셔터문을 내리며 현재 60여곳 정도로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공사 인해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경기 침체에도 값싸고 질 좋은 수제화를 원하는 손님들은 꾸준히 이곳을 찾았으나 최근 들어 서울역 고가 폐쇄로 인한 교통체증 탓에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 것.

20여 년째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권기호 회장은 “최근 경기 불황 탓도 있겠지만 서울역 고가 폐쇄 이후 염천교 수제화 거리에 위치한 54개 점포가 평균 60% 이상 매출이 급감했다. 근래 들어서는 영업이 안 돼 아예 문을 닫는 곳까지 생겼다”고 토로했다.

이유는 서울역 고가 폐쇄로 인한 교통체증과 더불어 서울시가 점포 앞에 갓길 주차를 막아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도·소매를 병행하는 이곳은 소매상의 트럭이나 개인 고객 승용차가 갓길에 주차한 뒤 물건을 사가는 방식으로 수십 년간 영업이 이뤄져왔지만 지난해 12월 서울역 고가 폐쇄 이후 우회로인 염천교로 교통량이 크게 몰리면서 수제화거리 앞에 주·정차가 불가능해졌다.

권 회장은 “공장에서 물건을 받아야 하는데 차가 들어오지 못하니 택배기사들도 제대로 다니지를 못한다. 심지어 손님이 차를 잠깐만 세워놓고 가게로 들어오려고 해도 뒤에서 다른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고 딱지도 바로 끊어버려 상권이 죽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가 서울시의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업 실행 과정이 이곳 지역 상인들의 생존와도 직결되는 만큼 주차공간 마련, 도로 확장 등 일정부분 서울시의 지원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권 회장은 “서울역 고가가 공원화되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사람들이 많으면 아무래도 장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차 다니는 것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게 좋으니까 초기 사업 계획 당시 호응을 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완공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문을 닫고 나갈 판”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구두가 팔려야 또 구두를 만들고, 구두를 만들어야 자재가 팔린다”며, “최근 서울역 고가폐쇄로 인한 교통문제로 피해를 보는 것은 구두 상점 사장들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 그리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수백명에서 천명 가까이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향후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 방향성에 대해 그는 “과거 도시재생은 오로지 경제활성화에만 매몰됐기 때문에 우리 같은 원주민들이나 경제적 소외계층은 결국 지역을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다”며 “이곳은 국내 최초의 수제화 거리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보존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외면하고 있다. 차라리 뭔가를 더 해주기 전에 차라리 지켜주기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인터뷰③] 조경민 고가산책단 단장

“이해관계가 얽힌 매듭, 잘 풀어줘야”

 

차량이 다니던 서울역 고가를 사람이 걷는 수목길로 만드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중림동, 만리동 일대는 30~40년 이상 장기간 거주민들이 많고, 때문에 이들의 목소리를 모두 담아내는 것이 어렵다.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고가사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시민 네트워크’ 활동을 시작했다. 그것이 시초가 돼 작년 7월 말에는 민간 협력단체 ‘고가산책단’이 설립됐다. 도시의 얼굴을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할까. ‘고가산책단’ 조경민 대표를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조 대표는 고가사업뿐만 아니라 서울의 균형발전을 위해 주민들과 소통하고 공익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고가공원화 사업과 관련해 동네 주민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그에게 주민들의 반응을 물었다. “지금은 많이 친해졌는데 처음에는 주민들이 욕을 엄청 했죠(웃음). 항의할 데가 없으니 저희에게 불만을 쏟고 그러는 분도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초창기 사업 발표 후 주민들은 서울시나 용산구에 항의 전화를 했다. 서울역 일대를 연결하는 차량 통행으로 인한 불편함과 동시에 30년 동안 선거철만 되면 동네가 들썩였던 터라 상당수 주민들이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 1년간 서울시 공무원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민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건물 호가도 오름세다. 반신반의하던 주민들도 지금은 찬성 입장으로 갈아탔다.

주민들의 반응이 좋아진 건 서울시가 고가공원 사업을 종합적으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조 대표는 말한다. 고구마 줄기처럼 사방에 퍼져있는 지역 개발 문제들이 간단하게 다룰 만한 것이 아님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서울역 고가공원화 사업은 남대문 시장이라는 거대 상권도 고려해야 하고, 지역 주민, 세입자, 소상공인들을 포함해 대입해야 할 변수들이 어마어마하다. 조 대표는 “서울역 고가공원 사업이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계획으로 변경됐고, 작년에는 2개 부서 정도를 봤다면 지금은 10개가 넘는 부서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종합적으로 대책을 논의한다. 지역주민과 소통의 끈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며 시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개선해야할 점으로 칸막이 행정에서 오는 경직성을 들었다. 시장 중심 원톱체제로 가는 사업이 아니라 간부들도 책임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절박함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0년째 여러 시민단체의 수장 노릇을 해온 조 대표는 사실 본업이 건축가다. 도시문제관심이 많고 직업적 능력으로 탁월한 설계 감각을 지녔다. 그가 바라보는 고가공원 설계도는 어떨까. 서울역 고가공원은 콘셉트가 명쾌하고 개념적 설계로 이뤄졌다고 했다. 만리동, 중림동 등 고가공원 주변 동네에 대해서는 50~60년 전 골목의 원형들을 가지고 있어 ‘아까운 땅’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단순히 허름한 동네를 재개발, 재건축으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낙후된 구도심에 활기를 불어넣는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해외 사례의 경우 주민과 10년을 함께 고심해서 마을을 바꾼다지만 우리나라는 지리적, 비용적 측면에서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같은 시민단체가 도시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일반 시민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발이 답은 아니죠. 땅주인은 값이 오르면 팔고 나가면 된다지만 어차피 다른 동네가 비싸서 아파트 사는 수준일 거예요. 30~40년 동안 살던 원주민이 이 동네를 안 떠나고 편안히 죽을 때까지 살 수 있으면 좋죠. 구릉지를 제대로 살린 관광지를 만들건, 복합적인 문화 예술촌이 되건 관과 민이 상생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는 여전히 봉제공장과 퀵서비스 업계 종사자들에 대한 대안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원주민들의 생계였던 봉제공장 30~40개가 현재 이 마을을 떠났다. 이들의 종적을 추적해보면 다른 지역구의 봉제공장 밀집지역으로 이전했다고. 사정을 들어보면 새롭게 거래처를 뚫어야 하니 이전보다 사정이 팍팍해졌다. 조 대표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게 힘든 일이지만, 시와 거주민, 상인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만큼 시에서 조금 더 신중한 대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소통의 끈을 놓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그가 생각하는 서울의 청사진을 살짝 들여다봤다. “아이들한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묻잖아요. 확실한 건 ‘무엇’에 초점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도시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이제까지는 개발을 움켜지고 왔는데, 개발로 성공신화를 꿈꾸는 시대는 지나갔잖아요. 지금은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