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등급 높고 돈 있을 때 나가야죠. 우리 은행들에게 온 기회라구요.”

지난 주 홍콩에서 만난 외국 은행 임원이 여러 번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기회라는 두 음절에는 더 힘을 주었다. 한국인이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홍콩 영주권자로 유럽계 은행에 다니며 한국과는 크게 연관이 없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었다.

“요즘 골드만삭스나 크레딧스위스가 안 좋죠? 너무 리스키한(위험 요소가 많은) 데는 안 되지만 그런 은행들도 일단 타진해 봐야 한다고요.”

입이 쩍 벌어진다. 겉으로는 외국 자본에 열려있다고 하지만 어느 나라이건 그 나라를 대표하는 시중은행을 인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의 말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고 새겨들을 만 했다. 우리 금융사들은 이미 여러 차례 글로벌 시장 진출에 도전했고 또 실패했다. 현지에 지점을 내고 현지화를 위해 직원교육을 하고 현지에 홍보비용을 뿌렸더니…. 현지인들의 예금을 끌어들이며 대출상품을 판매할 수 있었나? 지금 우리에게는 현지 소형 은행 인수가 가장 빨리 가는 길이다.

스페인의 지역은행 산탄데르가 어떻게 전 세계 은행들을 인수합병(M&A)하면서 세계적인 금융기업으로 성장했는지를 보면 대강의 그림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산탄데르는 스페인어를 쓰는 남미와 미국 내 남미 접경지역의 은행들을 주 타깃으로 해 글로벌 영업망을 갖춰나갔다.

인수한 지역 은행의 CI(Corporate Identity)와 점포 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지화를 꾀했고 본부에서 이들 은행별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운영했다. 이른바 매트릭스(Matrix) 조직을 통해 전 세계 700여 법인 및 15만 명의 임직원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뿐인가. 다른 스페인 은행 BBVA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9년 파산한 미국은행을 인수해 미국 남동부에 약 600개 지점을 확보하기도 했다.

누구는 한반도의 역사를 두고 퍽 침울하게도 ‘외침과 내란의 역사’라고 부르는데 사실 금융업계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기업들이 ‘줄도산’을 맞았고 이 기업들에 돈을 빌려줬던 은행들도 위기를 겪었다. 국내의 상업은행들이 여러 차례 상호 합병을 거치거나 외국 자본에 불리한 조건으로 인수됐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지난 해 우리은행이 인도네시아 소다라은행 인수에 성공한 것이 꽤 고무적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은 인도네시아 현지에 총자산 16억 달러, 점포 111개, 그리고 현지 네트워크를 가진 현지 은행을 보유하게 됐다.

역대 최고라는 경영실적과 일본보다 높은 국가 신용등급이 우리 금융사들을 받치고 있다. 예대마진은 하락하고 국내 고객의 관성에만 기대 사는 것도 더는 쉽지 않다. 전문인력 채용과 각국 규제당국과의 협의 등 갈 길이 멀다. 하지만 한국의 금융사 그대들이 처음 할 일은 ‘자신감’을 갖고 시장에 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