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스탠드업(STAND-UP)’이라는 프로젝트로 노숙인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양말이라는 사실을 알린 기업이 있다. 사회적 기업 ‘콘삭스(cornsox)’다. 콘삭스는 이름 그대로 옥수수(Corn)로 양말(Sox)을 만든다. 콘삭스 이태성 대표는 지속 가능한 패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옥수수 양말로 회사를 시작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결과가 아닌, 과정까지 보는 회사

“비즈니스는 싸게 만들어서 비싸게 팔면 됩니다.” 왜 옥수수 섬유를 양말의 소재로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이 대표의 대답이다. ‘옥수수 섬유가 다른 소재에 비해 싸다는 뜻인가?’ 생각한 순간 답이 이어진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은 그것만 보지 않죠. 제작부터 유통, 판매 등 전 과정을 다 봐야 해요. 패션은 사실 소재랑 디자인이 전부거든요. 보시다시피 제가 스타일이 좋은 건 아니에요(웃음). 패션이나 디자인은 잘 모르겠지만, 소재에 있어서는 ‘지속 가능한’ 생산 방법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대표는 제품 생산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관심을 가졌다. “사실 유기농 면을 제외하고는 면이 친환경 소재가 아니거든요. 인류가 재배할 수 있는 작물 중 수분흡수를 가장 많이 하는 게 면화에요. 전 세계에서 쓰이는 농약이나 살충제의 25%가 면화 재배에 들어가요. 당연히 좋지 않겠죠. 또 목화를 딸 때는 13세 미만 여자 아이들이 많이 해요. 그리고 힘쓰는 일은 13세 이상 남자 아이들이 하죠. 단지 노동력이 싸다는 이유 때문에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과정까지는 잘 모르죠.”

이 대표는 고민 끝에 옥수수를 섬유로 선택했다. 직접 아프리카에 옥수수 농장을 운영하고 콘삭스에서 나온 순수 판매 이익의 10%를 다시 농장으로 돌려보낸다. 또 양말 제작은 장애인 공장을 통해서만 한다. 이렇게 ‘지속 가능한 패션 브랜드’에 대한 그의 철학이 시작됐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지속 가능한 거요? 더 나은 것을 고민하는 거죠”

이 대표는 콘삭스가 다른 회사에 비해 내부적 윤리 기준이 엄격하다고 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직원들과 마찰을 겪기도 하고 스스로도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울 소재를 쓰려고 하면, 그 울을 만들기 위해 살아있는 양의 털을 뽑는단 말이에요. 그 과정에서 많은 양들이 죽기도 하고 괴로워해요. 그걸 알면서 이 소재를 쓰지 못하겠는 거예요. 나는 타협이 안 되는데 팀원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기도 하죠. 그러다 보면 차라리 화학섬유를 쓸까 고민도 하게 돼요. ‘적어도 이건 생명을 해치는 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 보니 회사 경영에도 이런 그만의 윤리적 기준이 적용될 때가 많다.

“윤리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중압감이 있어요. 그래서 윤리적 패션이라고 하면 그 반대급부들을 만들어버리게 되죠. 그런데 지속 가능한 패션이라고 하면 느낌이 좀 다르죠? 저는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고민하는 과정이 무언가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면이 윤리적이지 않은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걸 알았다고 해서 우리가 면을 아예 안 쓸 수는 없어요. 다만 왜 안 좋은지 관심을 가지고, 그렇다면 그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소재를 만드는 방법은 뭘까 계속 고민하는 거죠.”

이 대표는 콘삭스를 운영하는 모든 과정에서 이렇게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실행한다. 최근에는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피해자들이 만든 사회적 기업과 공정무역을 통해 제품도 생산했다. “사람들이 윤리적 패션에 대해 말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게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붕괴사건이거든요. 그곳 노동자들은 티셔츠 한 벌을 꿰매는데 20전을 받아요. 1원보다 더 낮은 단위죠. 그런 옷들이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몇 만원이 되죠.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옷 가격은 계속 내려가요. 원가가 낮아진 것 아니냐고요? 소재는 오히려 더 비싸지고 있어요. 결국 노동력에서 비용을 줄이고 있다는 뜻이죠. 이 방법이 과연 올바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그는 사람들이 라나플라자를 언급하면서도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고 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공정무역을 시작한 계기다.

“일반 공장에서 만들면 생산이 더 빨라요. 하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는 공장은 찾기 힘들어요.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고 불법 체류자도 많고 무엇보다 아주 적은 임금에 고강도 노동을 하고 있죠. 장애인 공장을 고집하는 이유예요.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생산하고 싶은 거죠.”

이 대표의 ‘지속 가능한’ 이라는 가치는 회사 내부에도 적용된다. “저희 회사 직원들은 근속년수가 긴 편이에요. ‘우리가 누군가를 도우려고 하는데, 그 일을 하면서 우리는 행복하고 즐거운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직원들이 지속 가능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사람은 안 변한다, 기업이 변해야 한다”

이 대표는 지속 가능한 패션 생태계가 조성되려면 기업들의 밸류체인(가치사슬)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람 잘 안 변한다고 하지 않나.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의 인식은 바뀌지 않더라도 그 기업의 방향성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콘삭스는 다른 여러 기업들과도 여러 차례 협업을 시도해왔다. 기업들이 먼저 ‘윤리적 패션’이 어떤 것이냐며 함께 일해보자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번번이 뒤집어졌다. ‘수익성’ 때문이다. 기업들은 싸게 만들어 비싸게 팔려 하기 때문에, 방향성이 세워져 있지 않다면 사실 윤리적 제품을 만드는 데 ‘수익성’이라는 걸림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친환경 제품은 일반 제품에 비해 원가가 높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패션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끔 대학원 강의를 가는데요. 패션을 전공하는 분들인데도 옷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전혀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그냥 어떤 원단이 좋은 거고 어떻게 싸게 사서 어떻게 브랜딩을 해서 비싸게 팔까에 집중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 대표는 이렇게 기업 방향성 변화를 이끌어내고 소비자들이 윤리적 패션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단체를 만들었다. 해외의 경우 패션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에 윤리적 패션을 지향하는 단체나 기관이 많다. 그 기관들이 윤리적 패션에 대한 이슈를 끊임없이 생산하면서 문제 제기를 하거나 소비자에게 이슈를 전달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한다. 이런 과정으로 소비자에게 환경적 이슈가 전해지면 기업은 좋지 않은 제품을 팔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도 그런 고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 대표는 ‘한국윤리적패션네트워크(KEFN)’를 만들었다. 공공공간, 대지를 위한 바느질, 리블랭크, 오르그닷, 콘삭스,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 등을 중심으로 사회적 기업들이 모여 만든 협회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H&M 매장을 간 적이 있는데요. H&M은 지점마다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 매니저’가 꼭 한 명씩 있어요. 이 옷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해주는 사람이에요. 기업들은 존폐 위기에 놓이지 않는 이상 기업의 방향성을 바꾸긴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바뀌어야 하죠. 특히 패션 산업을 오래도록 지속하고 싶다면 정말 밸류체인을 바꿔야 돼요.” 이 대표는 윤리적 패션에 대한 관심 없이는 패션 산업계가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