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 IT > 블루스크린
[블루스크린] ‘아마존’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 ‘팹닷컴’‘잘못된 판단’으로 무너진 ‘전자상거래 2.0’의 꿈

지금 와서 인터넷으로 못 사는 물건이 있다고 하면 오히려 의아할 정도다. 거의 모든 것을 오프라인 매장을 찾지 않아도 구할 수 있는 시대니까. 온라인 쇼핑몰엔 스크롤을 내리고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물건이 있다. 상품 더미에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데이터 스모그’라는 말이 있는데 이쯤 되면 ‘상품 스모그’다.

마음에 딱 드는 물건을 단번에 만날 확률은 극히 적다. 분명 물건이 엄청 많기는 한데 전부 거기서 거기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누가 대신 골라주면 좋겠네.’ 이런 생각도 든다. 같은 생각이 한둘이 아닌 까닭에 수요에 대응하려는 업체도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전문가가 엄선한 디자이너 제품을 일시적으로 폭탄 세일한다’는 콘셉트로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성공을 거둔 곳이 있다. 지금은 잊힌 이름 ‘팹닷컴’이다.

   
▲ 출처=팹닷컴

독특한 디자이너 상품 ‘폭탄 세일’

첫 시작은 2010년이다. 미국 뉴욕에서 두 사람이 힘을 모았다. 제이슨 골드버그와 브래드포드 셸해머가 창업 멤버다. 골드버드는 벤처 사업가였다. 셸해머의 이력은 이보다 이채롭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제품 유통 매니저이자 저널리스트였다.

창업 아이디어는 간단명료했다. ‘플래시 세일’이 핵심이었다. 특정 제품을 짧은 기간 동안 폭탄 세일하는 방식이다. 상품을 72시간 동안 최대 70%까지 화끈하게 할인 판매했다. 또 하나 핵심은 그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디자이너의 독특한 제품을 팔았다는 것이다. 판매 상품은 셸해머가 감각을 발휘해 엄선했다. 그의 선택은 언제든 옳았다.

오픈 첫 주부터 팹닷컴은 큰 관심을 받았다. 건축디자이너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화병, 이탈리아 폰타나아르테의 조명, 미국 도형디자이너 밀턴 글래저가 디자인한 포스터 등이 ‘깜짝 할인’ 제품으로 올라와 호응을 얻었다. 팹닷컴은 유명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신진 디자이너의 제품을 직접 발굴해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 출처=팹닷컴

디자이너들은 팹닷컴의 등장을 기회로 여겼다. 상품을 많은 소비자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고 매출도 짭짤했다. 팹닷컴은 수익을 디자이너와 2대 8로 나눴다. 팹닷컴이 2다. 특히 신진 디자이너들은 팹닷컴을 통해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렸다. 유명 디자이너와 동등하게 소개되니 주목을 한몸에 받을 수 있었다. 팹닷컴이 신진 디자이너의 등용문 역할도 했다고 할까.

“아마존은 전자상거래 1.0 모델입니다. 우린 이제 전자상거래 2.0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구매방식을 바꾸는 혁명적인 모델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는 검색하고 상품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가 당신에게 상품을 골라주는 것이죠.” 골드버그의 말이다. 훗날 팹닷컴은 ‘큐레이션 커머스’의 효시로 불리게 된다.

페이스북보다 회원 빨리 모았다

팹닷컴의 성장세는 어마어마했다. 당장에 ‘가장 빠르게 성장한 전자상거래 업체’라고 불렸다. 단순한 호들갑이 아니었다. 100만회원을 모으는 데 5개월이면 충분했다. 페이스북은 10개월 걸려 이 정도 회원을 모았다. 500만회원을 모으는 데 걸린 시간도 팹닷컴이 페이스북보다 빨랐다.

투자금이 몰렸다. 창업 2년 만에 3억1000만달러를 유치했다. 기업 가치는 10억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2013년에는 중국 텐센트를 포함한 투자자로부터 1억5000만달러를 지원받았다. 텐센트는 알리바바가 장악하고 있는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을 팹닷컴을 앞세워 뒤집어보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팹닷컴 천하는 오래 가지 않았다. 미래 사업 추진 방향을 경영진이 잘못 판단한 까닭이다. 발단은 2012년 무렵이다. 골드버그에겐 고민이 있었다. 팹닷컴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소비자가 받아보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평균 16.5일이라니 말 다한 셈이다. 또 판매 품목은 팹닷컴만큼이나 잘 나가는 다른 업체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었다. 골드버그와 셸해머는 ‘다르다는 것’에서 위기의식을 느꼈다.

   
▲ 출처=팹닷컴

2012년 중반 그들은 중대 결단을 내렸다. 일단 대규모 물류창고를 마련했다. 기존 플래시 세일 방식은 버리고 대량구매 대량판매 체계를 갖췄다. 그 결과 배송기간은 평균 5.5일까지 줄어들었다. 이전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판매 품목은 기존 대비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초반엔 아마존에서 멀어지겠다고 했지만 점점 사업 모델이 비슷해졌다. 심지어 아마존의 개인화 분석 툴을 도입하기도 했다. 고객의 구매 이력과 검색 기록을 분석해 개인별 맞춤 제품을 추천해주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전문가의 엄선’은 ‘데이터 기반 개인 맞춤 추천’으로 바뀌었다. 당시 이는 ‘진보’ 또는 ‘혁신’이라고 팹닷컴 경영진은 자평했다.

‘잘못된 판단’ 팬덤 무너트리다

색깔을 잃었다. 정체성을 상실했다. 팹닷컴은 일종의 팬덤을 형성해왔다. ‘팹닷컴에 가면 독특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핵심 가치를 전해왔다. 그런데 ‘결정적 판단’과 함께 전혀 다른 업체가 돼버렸다. 취급 물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개인 추천 서비스를 실시하면서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렸다.

더 많은 고객을 만나기 위한 조치였지만 기존의 고객들까지 떠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 이상 ‘꼭 팹닷컴에서 쇼핑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해주지 못했다. 짧은 시간에 유명세를 얻은 만큼 팬덤이 무너지기도 쉬웠다. 팹닷컴은 가파른 하락세에 직면했다.

   
▲ 출처=팹닷컴

골드버그도 실수를 인정했다. 지난해 그는 팹닷컴 경영진에게 5장에 달하는 편지를 보냈다. 편지라기보다는 반성문에 가까웠다. “저는 팹닷컴이 핵심 가치를 잃도록 만들었습니다.” 정확한 인식이었지만 때가 너무 늦어버렸다.

부진에 빠지자 팹닷컴은 유럽에서 활로를 모색했다. 독일에 지사를 세웠고 노르웨이 가구 회사를 인수했다. 이마저도 활로가 되진 못했다. 오히려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게 됐다. 기업 가치는 폭삭 주저앉았다. 한때 10억달러에 육박하던 것이 1500만달러가 돼버렸다. 불과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결국 지난 3월 아일랜드 기업에 회사가 헐값에 팔리는 최후를 맞이하게 됐다. 스타트업은 이른바 ‘맷집’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경영진의 몇몇 잘못된 판단에 엄청난 타격을 받기도 한다. 팹닷컴이 이를 직접 보여준 셈이다.

- IT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아이티 깡패 페이스북 페이지]

조재성 기자  |  jojae@econovill.com  |  승인 2016.03.20  20:03:07
조재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태그]

#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SPONSORED
여백
여백
전문가 칼럼
동영상
PREV NEXT
여백
포토뉴스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