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심부인 중구 퇴계로와 만리재로를 잇는 데 반(半)평생을 바친 서울역 고가도로 씨(46세). 사람으로 치면 불혹(不惑) 하고도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나이 탓일까? 2000년 이후 거듭 안전진단 D등급을 받는 등 본인의 몫을 다하지 못한 채 붕괴 우려가 커지자, 그는 역사 속으로 까마득히 사라질 뻔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최근 그는 인생 제2막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서울시가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그를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고려해 철거하지 않고 시민이 쉬며 거닐 수 있는 도심 공중정원으로 탈바꿈하는 대수술에 들어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 서울역 고가 (사진=이코노믹리뷰 김하수 기자)

서울역은 지하철 1·4호선부터 공항철도가 모두 오가는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하루 40만명이 오가는 ‘초역세권’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남대문 등 서울역을 중심으로 도심지역과 연결된 동쪽은 발달된 반면, 서쪽에 위치한 중림·만리·청파동 등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꼽혀왔다.

서울역 인근 중구 퇴계로와 만리재로를 잇는 서울 중심부의 동맥 역할을 해온 서울역 고가도로는 당초 안전문제로 철거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통해 고가도로를 ‘차량길’에서 ‘사람길’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역발상적’ 계획을 발표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산업화시대의 유산인 서울역 고가를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되, 여기에 ‘보행길’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 단절된 서울역 일대에 사람이 모이게 해 도심의 활력을 되찾겠다는 복안이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13일을 기점으로 서울역 고가도로를 폐쇄하고,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를 위한 공사에 본격 착수했다. 서울역 고가가 폐쇄된 지 3개월이 지난 시점인 지난 9일 인근 상인들과 주민들의 반응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역을 찾았다.

▲ 서울역 고가도로 공사 현장(사진=이코노믹리뷰 김하수 기자)

반대 목소리-“교통난 심화·수제화 거리 손님 급감”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이동 중, 15년째 개인택시를 몰고 있는 박 모 씨(62세)에게 서울역 고가 공원화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평상시 불과 2~3분이면 넘어가는 도로인데 서울역 고가 폐쇄 이후 우회해서 가기 때문에 15~20분 정도 더 걸린다고 봐야 한다”며, “서울역 고가가 있을 때도 고가에서 내려오는 차량과 뒤엉켜서 막혔지만 지금은 그 갑절 이상 막힌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도로 교통 사정에 따라 하루벌이의 시간이 좌우되는 택시기사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을 법한 주장이었다.

▲ 서울역 고가 폐쇄 이후 우회하는 차량들로 붐비는 도로(사진=이코노믹리뷰 김하수 기자)

서울역에 도착하니 서울역 고가 공원화를 위한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안전한 보행로 조성을 위해 기초 보강공사가 진행 중이었으며, 골조 운반을 위한 크레인도 눈에 띄었다.

인근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반응을 파악하기 위해 서울역을 지나 시장으로 이동했다. 지난해 12월 서울역 고가 폐쇄 당시 남대문시장 상인들이 집결해 서울역 고가 공원화에 격렬하게 반대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다소 차분해진 분위기였지만 서울시의 서울역 고가 폐쇄 조치에 대한 반발감은 여전했다.

남대문시장에서 20년 넘게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해온 임 모 씨(62세)는 “서울역 고가가 여전히 도로의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구체적인 방안 없이 서울시가 고가를 폐쇄함으로써 차량 통행이 제한돼 시간적인 손해 및 금전적인 손해가 막심하다”고 그간의 사정을 전했다. 이어 “가뜩이나 경기 불황으로 상인들이 생존을 위해 나와 있는 판에 서울역 고가 폐쇄로 굶어죽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서울역 고가 폐쇄로 피해를 보는 이들은 남대문 상인 외에도 또 있었다. 바로 염천교 ‘수제화 거리’에서 구두를 판매하는 상인들.

오후 5시께 찾은 서울 중구 염천교 수제화 거리는 지나가는 행인 3~4명만 눈에 띌 뿐 한산한 풍경이었다. 대부분의 점포 안에는 손님 없이 가지런히 정리된 구두에 묻은 먼지를 털거나 TV를 보는 점포 사장님들만 있었고, 아예 셔터문을 내린 가게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20여 년째 염천교 수제화 거리에서 구두를 판매하고 있는 서울역 염천교 상우회 회장이자 미래제화 사장인 권기호(64세) 씨는 “최근 경기 불황 탓도 있겠지만 서울역 고가 폐쇄 이후 염천교 수제화 거리에 위치한 54개 점포가 평균 60% 이상 매출이 급감했다. 근래 들어서는 영업이 안 돼 아예 문을 닫는 곳까지 생겼다”고 직접적인 불만을 제기했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에 손님이 끊긴 가장 큰 까닭을 물어보니 “점포 앞에 갓길 주차를 할 수 없게 된 점”이라며 설명해 준다.

도·소매를 병행하는 이곳은 소매상의 트럭이나 개인 고객 승용차가 갓길에 주차한 뒤 물건을 사가는 방식으로 수십 년간 영업이 이뤄져왔는데, 지난해 12월 서울역 고가 폐쇄 이후 우회로인 염천교로 교통량이 크게 몰리면서 수제화 거리 앞에 주·정차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수제화 거리 맞은편 서소문공원 유료주차장마저 폐쇄돼 버려 염천교 수제화 거리 접근성이 더 나빠졌다는 것이 권 회장의 분석이다.

▲ 손님 없이 휑한 염천교 수제화 거리.(사진=이코노믹리뷰 김하수 기자)

찬성 목소리-“공원화로 도심 활기·관광객 증가”

서울역 고가도로 폐쇄에 따른 불만과 반대의 목소리가 있는 반면, 인근 상권의 활성화를 기대하며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찬성하는 이들도 많았다.

서울역 맞은편 연세세브란스빌딩 골목에서 5년째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 모 씨(47세)는 “낙후된 서울역 일대 도심상권이 살아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내심 환영의 뜻을 밝혔다.

특히 서울시 고가 공원화 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정 씨는 “서울역 주변에 숭례문 등 관광자원과 고가도로 공원이 하나의 관광권으로 묶여 외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것도 더 쉬워질 것”이라고 관광객 유입에 따른 매출 증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남대문 상권의 활성화를 기대하는 상인들도 있다. 서울역일대종합발전기획단 관계자는 “직접 면담해본 결과, 남대문시장 상인의 30%가량이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남대문 시장 진입로에 분식점을 운영하는 김 모 씨(39세)는 “고가도로 철거 후 공원이 만들어지면 남대문시장이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특히 서울역부터 도보로 신세계 백화점까지 이어진다 하니 중간에 위치한 남대문시장에 먹거리를 즐기러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들 것 같다”고 말했다.

▲ 남대문 시장(사진=이코노믹리뷰 김하수 기자)

서울역일대종합발전기획단 김은주 주무관은 “남대문시장 일대의 교통혼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가도로를 대체할 동서방향 3개 축을 마련하고 주변지역 16개 교차로를 개선해 차량정체를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남대문시장 상권 쇠퇴를 우려하고 있는 남대문시장 상인들과 약 70회의 면담 및 협의를 거쳐 시장 활성화 방안을 추진해온 사실을 전한 김 주무관은 “그 결과, 지난해 중소기업청 주관의 ‘글로벌 명품시장’으로 선정돼 오는 2018년까지 65억원 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며, 향후 노후화된 남대문시장의 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