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박용만 두산그룹 전 회장.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경영인들이다. 둘 다 1955년 동갑내기이며, 미국 대학원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취득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한 경영 스타일에서 기본적으로 ‘원칙’을 중시하는 닮은꼴 모습이다.

반면 달갑지 않은 공통분모도 있다. 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분쟁을 직간접적으로 겪었거나 겪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난해 면세사업자(면세점) 선정 경쟁에서 두산의 박 회장은 웃었고, 롯데의 신 회장은 눈물을 떨궈야 하는 사업의 희비를 맛보기도 했다.

그런 두 경영인에게 최근 ‘의미 있는 이슈’가 있었다. 먼저, 박용만 두산 회장은 지난 2일 그룹 총수직에서 사퇴했다. 사촌동생인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이양한 것이다. 자신은 겸임하고 있던 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의 회장직만 맡기로 했다. 박 회장의 결단은 두산그룹의 전통적인 ‘형제 승계’ 원칙을 이행한 것이지만, 두산 내에서는 예상보다 빨리 총수직을 내려놓았다는 반응이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의 경우, 지난 6일 일본에서 열린 롯데그룹 지주사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형 신동주 전 일본홀딩스 부회장이 요구한 ‘현 경영진 해임안’, ‘신동주 회장이사 선임안’ 2건이 모두 부결돼 형제간 경영권 분쟁에서 사실상 완승을 거뒀다.

그리고 신동주 전 부회장이 부여잡고 있는 실낱같은 동앗줄인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의 경영권 행사도, 롯데제과가 오는 25일 정기주총에서 재선임하지 않는 안건을 상정해 ‘신격호의 롯데’ 이미지 지우기에 본격 나섰다.

이 같은 두 이슈를 보면서 원칙 경영의 공통점을 가진 박용만-신동빈 두 회장의 리더십에서 ‘결이 다른’ 스타일을 읽을 수 있었다. 즉 박용만 두산 회장이 ‘흐르는 물’이라면, 신동빈 롯데 회장은 ‘굳건한 바위’ 같다는 이미지로 대별된다는 점이다.

자고로 ‘흐르는 물’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도전), 끊임없이 흐르고(혁신), 큰 바다(목표)를 향해 내달린다. 박용만 회장의 ‘흐르는 물’ 스타일은 그동안의 행보에서 엿볼 수 있다. 여느 기업 총수보다 ‘열린 사고(오픈 마인드)’의 소유자로 알려진 박 회장은 임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와 저녁자리를 즐기며, 이를 자신의 소셜미디어로 알리면서 적극 소통해 왔다. 면세점 진출로 중공업 중심의 ‘딱딱한 두산’ 이미지를 ‘부드러운 두산’으로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기업들이 꺼리는 경제민주화, 기업 사내유보금 과세 등 민감한 이슈에 오히려 기업을 설득하는 소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룹 총수직 사퇴의 용단을 내린 것도 이 같은 박 회장의 ‘흐르는 물’ 스타일과 매우 부합한다.

많은 사촌형제 모두에게 ‘형제 승계’의 기회가 돌아가지 않겠지만, 박 회장은 스스로 내려놓음으로써 가업 승계 흐름을 더 원활하게 만들어 주는 물꼬 역할을 했다. 또한 자신이 총수직 이전부터 경영해 왔던 두산인프라코어에 전념하겠다는 나름의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사실 기자는 올해 초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미사 행사에서 박 회장을 먼발치로 본 적이 있었다. 사실 웬만한 그룹 총수들은 공적인 주요 행사가 아니면 사석에서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지만, 박 회장은 그날 평범한 코트 차림에 선글라스를 쓴 채 대중 속에 섞여 있었다. 물론 당시 그가 재벌 총수라는 사실을 인지한 일반인은 거의 없었겠지만.

이처럼 ‘흐르는 물’의 속성은 소통이다. 큰 강이나 바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만나는 바위나 웅덩이 같은 장애물을 굴복시키기보다 우회하거나 포용하면서 간다. 박용만 회장이 비록 총수직에선 물러났지만, 여전히 대한상의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우리 경제와 기업들이 안고 있는 여러 난제를 ‘물 흐르듯’ 잘 풀어나가는 정제된 맑은 물 ‘상수(上水)’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자고로 ‘굳건한 바위’는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형제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시종일관 굳건한 바위 같은 모습을 견지해 왔다. 사실 국내 재벌가의 재산 및 경영권을 둘러싼 싸움에서 때론 상대방의 치부를 드러내는 내용들이 쏟아지곤 하는데, 이번 롯데가(家) 경영권 다툼에선 비록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지만 ‘3류소설’ 같은 저급한 드라마는 없었다.

이는 그룹 차원에서 위기관리도 있었지만 신동빈 회장이 중심을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신 회장은 지난해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고 그 원인으로 계열사 순환출자 지배 구조가 지목되며 국민적 지탄을 받자, 직접 나서 대국민사과를 발표하고 순환출자 80% 해소, 호텔롯데 상장, 기업문화개선위원회 설치 등을 약속했다.

또한 국내 기업들이 벌금을 물더라도 극구 기피하는 ‘절대 금기사항’인 그룹 총수의 국회 국정감사 증인 출석에도 직접 나가 당당하게 답변해 오히려 신 회장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기대 밖 효과를 얻기도 했다.

그리고 경영권 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신 회장은 오히려 경영 행보를 더 적극적, 더 공개적으로 펼쳤다. 비록 시내면세점 사업 재연장에 실패하는 쓴맛도 봤지만, 대신 한·일 롯데 공동으로 올해 태국 방콕에 면세점 출점을 내고, 인도와 동남아, 중동 등지에 롯데제과 판매망을 확대를 서둘렀다.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말 결정한 삼성화학 계열사 인수합병(M&A)도 이 같은 ‘원칙 경영’에 흔들림이 없다는 시그널을 주주들과 국민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물론 아직 신동주 부회장 측과 소송 건이 남아 있지만, ‘신동빈의 승세’를 뒤집을 만한 반전 모멘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게 재계의 평가인 만큼, 신동빈 회장의 ‘굳건한 바위’ 같은 원칙경영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총수나 CEO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선택받기 마련이다. 그 이미지의 색깔은 순전히 기업과 기업인의 몫이다. 신동빈 회장과 박용만 회장도 예외일 수 없다. 따라서 신 회장의 ‘굳건한 바위’, 박 회장의 ‘흐르는 물’ 이미지도 절대적이지 않다. 롯데와 두산의 기업 실적과 기업 이슈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신동빈-박용만 회장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