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인문학적 가치가 깃든 동네와 이를 지키려는 주민들과 문화예술인들. 경복궁 옆 작은 동네 서촌에 흐르는 문화다.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기 전 세종이 태어난 마을이라 ‘세종마을’로도 부르는 서촌 일대는 서열에서 밀려난 왕족들과 중인이 모여사는 동네였다. 그래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살았던 북촌의 한옥처럼 웅장하고 정비된 모습이라기 보단 소박한 외관을 갖춘 생활형 한옥과 90년대 지어진 다세대 주택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 동네라는 의미로 행정구역상 종로구 통의동, 효자동, 누하동, 체부동, 필운동 등을 포괄한다. 지난 8일 오후 7시,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오자 양 옆으로 나란히 뻗은 대로변에는 소규모 상점과 카페, 이색술집, 갤러리, 공방 등이 자리하고 있다. 뜨는 동네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전국구 프랜차이즈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골목 안에는 구경 온 인파들로 북적이고 있다. 주중 뿐만 아니라 주말이면 데이트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발디딜틈이 없어졌다는 게 30년 거주민들의 얘기다.

“장사요? 메르스때 잠깐 주춤했고 그 이후로는 잘되죠. 매스컴을 많이 타서 그런지 주말에는 차량도 많고 북적대요” 4년째 ㄱ호프집을 운영중인 서촌 상인의 말이다. 서촌 일대 치킨집 대표 A씨도 “이 동네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상가 임대료가 30% 올랐다”며 ”처음 장사할때만 해도 인근 공무원이나 주민들을 상대로 운영했는데 지금은 주말에도 차가 밀리고 외부인들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유영 기자

문화 예술이 흐르는 핫한 동네가 되기까지

불과 2~3년전 까지만해도 서촌은 서울시내에서 두메산골 같은 곳이었다. 지금은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공간으로 재조명 받고 일명 '핫'(hot)한 동네가 됐다. 그도 그럴것이 서촌은 화가 이중섭, 시인 윤동주, 소설가 이상, 박노수 등 가난한 예술가들의 생활터전이었고, 먹자골목 사이로 오늘날까지 윤동주 하숙집 터, 박노수 미술관, 이상의 집 등이 잘 보존되어 우리곁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예술의 혼이 이어져 소규모 갤러리, 공방들이 들어섰고 전통시장이 있어 볼거리가 풍부하다. 금천교 시장은 지난 2012년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로 지정됐고, 세종마을 입구에 자리한 통인시장은 엽전 쿠폰으로 음식을 맛보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도시락카페를 통해 ‘시장 음식’을 접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활기찬 동네분위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같은 지역이라도 상인들의 희비는 엇갈렸다. 통인시장 내에서도 일부 상인은 “장사가 만족스럽다”고 말한 반면 장사가 안 돼 울상을 짓는 상인들도 꽤 있었다. 특히 매스컴이나 각종 SNS로 인기를 얻은 몇몇 점포에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일부 상인들은 그에 비해 장사가 예전같지 못하다고 평했다. A카페 운영자는 “최근 날씨가 춥고 경기가 안 좋다보니까 손님이 부쩍 줄었다”며 “날이 풀리면 다시 벌이가 좋아지지 않겠느냐”라고 희망찬 어조로 말하기도 했다.

▲통인시장 상인들이 늦은밤 하루 장사를 마치는 모습.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유영 기자

목이 좋은 대로변에는 빈 점포가 보이지 않았지만, 대로변이 아닌 외진 골목으로 들어서면 일부 건물에는 임대문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골목길 안이어서 유동인구가 적기 때문에 온도차가 분명히 존재하는 듯 했다. 인근 공인업소 관계자는 “대로변 50㎡(15평)의 경우 권리금만 8000만원~1억 정도다. 같은 평수인데 골목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보증금 9000만원에 월 300만원, 권리금이 7000만원 선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유영 기자

그러나 서촌 상가의 임대료 상승세는 입지에 상관없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때문에 평균 임대차계약의 한 텀인 2년도 채우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FR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2013년 12월~2015년 10월 사이에 표본 81개 점포 중 59개 점포의 주인이 2년새 바뀌었다.

서촌에서도 메인거리라 할 수 있는 옥인길의 1층 매장(33㎡) 시세는 2013년 12월에 보증금 1000~2000만원, 권리금 1000~2000만원, 임대료 50~80만원이었다면 지난해 10월에는 보증금 3000~5000만원, 권리금 3000~6000만원, 임대료 100~17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2년만에 2배 증가한 것이다. 인근 공인업소 관계자도 "2~3년 전 권리금이 3000~5000만원 선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는 2배정도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유영 기자

당장의 이익보다 소중한 것

이 동네 주목받은 것은 지역의 문화를 잘 살린 ‘청년장사꾼’의 존재도 한 몫 했다. 임대료 때문에 상권이 없거나 외진 골목만 자리해서 장사를 하는 ‘청년장사꾼’은 지역을 문화적으로 가공해서 이슈를 만들고 손님을 끌어모은다. 실제로 서촌 ‘청년장사꾼 감자집’은 SNS상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문제는 이들이 띄어놓은 상권이 대형 프랜차이즈나 외부 투자자들의 손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돌 빼 듯 거대자본이 하나씩 잠식해 나간다. 이에 대해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상권자체가 예전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 입소문을 타야 했다면 지금은 조금만 이색적이어도 SNS를 접하거나 매체를 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상권의 성장속도가 빨라지고 기존의 임차인들이 임대료 상승을 많이 못견디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서촌도 그런 폐해가 우려되고 현재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서촌의 일반주점 대표 P씨는 "서촌이 장사하기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임대료도 그만큼 올랐고 시끌벅적 해졌다"며 “개인적으로는 조용했던 서촌의 분위기가 그립다”고 말했다.

서촌 골목을 걷다보면 현대 건물 사이로 기와집이 하나 위치해 있다. 이곳이 날개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상의 집’이다. 천재 예술가 이상이 살았던 서촌문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며 이상의 사진, 필체, 흔적이 담겨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가 편히 즐길 수 있는 것과 달리 이상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사랑방 탄생하기까지는 일부 단체와 주민들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곳은 보통의 의미가 아니다. 이 시대의 새로운 이상들이 교류하고 만남이 문화적인 에너지로 모이는 작업을 하는 곳이다. 이상의 집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이 집은 과거의 흔적들과 기억들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만을 최소한으로 보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현재 서울시에서 서촌, 북촌의 한옥을 보존유지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현재 서촌은 향후 2년간 기존 주거용 건축을 리모델링해 상가로 활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어 신규 상가분양이 어렵다. 뜨는 동네의 ‘젠트리피케이션’(상권이 좋아지면서 임대료가 상승, 기존 상인들이 거대자본에 의해 쫒겨나는 현상)도 이렇게 소중한 것을 지켜주면서 발전하면 최소한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