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본격적인 아파트 분양시즌을 맞았지만 건설사들의 표정은 어둡다. 시중은행들의 신규 아파트 집단대출 거부 움직임이 확산되며 중도금 대출을 받지 못해 중도금 납부 유예 사업장이 속출하는가 하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아예 분양 일정을 미루는 건설사들도 늘고 있기 때문.

집단대출 거부당한 건설사, ‘5%대’ 제2금융권으로 내몰려

집단대출은 신규 아파트 분양 시 건설사(시공사) 보증으로 계약자에 대한 개별 소득심사 없이 중도금 또는 잔금을 분양가의 60∼70% 수준까지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8일 대형건설사단체인 한국주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금융당국이 집단대출 심사를 강화한 이후 올해 1월말 현재 회원사의 집단대출 거부 또는 금리인상 조건부 승인 등 총 피해규모는 약 5조2200억원(3만3970가구 규모)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10월 규제 직후 2조1000억원(1만3000가구) 수준에 비해 2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대출거부 규모는 2조4000억원(1만5400가구)으로 추정된다.

이달 4일 기준으로 금리 인상 조건부로 승인받은 사업장을 제외하더라도 집단대출 거부(감액 포함) 사업장은 1조8300억원(1만2029가구) 규모다.

▲ 출처=한국주택협회

주택협회 관계자는 “2월 1일부터 3월 4일까지 대출이 거부됐던 사업장 가운데 금리 인상 조건부로 추가 승인받은 사업장은 5700억원(3300가구)에 불과하다”며, “전국 사업장으로 범위 확대 시 실제 거부금액은 훨씬 클 것”이라고 전했다.

대형건설업체인 A사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1956가구 규모의 단지를 분양하며 은행에 대출제안서(입찰) 조건대로 4100억원 규모의 중도금 대출을 요청했으나 은행으로부터 돌연 거절당했다”며, “현재 중도금 대출을 위해 현재 모든 은행과 협의 중”이라고 토로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신규분양 집단 중도금대출 규제와 관련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주택건설업계가 여전히 시중 대형은행들의 중도금대출 창구가 막혔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이유는 시중은행들이 리스크 관리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 은행업계 관계자는 “중도금 집단대출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분양물량이 급증하고 미분양 우려 또한 높아지면서 은행들이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 대출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집단대출 시 가장 중요한 기준이 해당 사업장의 분양 가능성과 시공사의 신용도”라며, “사업장이 기반시설이 없는 외진 곳에 떨어져 있거나, 과도한 분양가 책정으로 ‘미분양 리스크’가 존재할 경우 대출 승인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자 대출이 가능한 지방은행이나 제2금융권을 알아보고 있는 주택건설사들도 늘고 있다.

광주시를 연고로 아파트 공급을 이어온 A중소건설사 관계자는 “대형은행에서 연 2.8% 수준에서 중도금 대출을 받아 분양사업을 해왔는데, 중도금 대출이 막혀 어쩔 수 없이 제2금융권 은행을 통해 5%를 상회하는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며, “임시방편으로 대출을 받긴 했지만 은행권의 집단대출 거부사태가 지속될 경우 남은 사업장은 분양 시기를 전면 재검토한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높은 이자비용, 실수요자까지 피해 전가되나

금융권의 아파트 집단대출 규제로 건설사 뿐만 아니라 주택 실수요자들까지 피해가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해 초 2% 중후반대였던 집단대출 금리가 최근 3% 후반~5%까지 상승하면서 증가한 이자비용을 분양계약자가 고스란히 떠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8월 경기도 광교신도시에서 분양한 ‘광교 중흥 S-클래스’ 입주자와 시공사인 중흥종합건설간의 갈등은 집단대출 규제로 인한 주택수요자의 피해가 현실화된 사례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광교 중흥S클래스’ 입주 예정자들은 최근 시공사로부터 중도금 집단대출 금리가 연 3.45%로 결정될 것이라는 안내문을 받고, 시공사에 강력히 항의하는 한편 수원시 등에 중재를 요청했다. 분양 계약 당시 안내받았던 금리(연 2.5%선)보다 대출 금리가 1%포인트 정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협의회에 따르면, 이 아파트 단지 전체 2231가구의 중도금 대출 총액은 9173억원으로, 중도금 대출 금리가 3.45%로 확정될 경우 총 이자 비용은 580억원에 달한다. 이는 최초 안내받았던 대출 금리가 2.5%였을 때보다 총 이자는 160억원 가량 많고, 세대 당 630만~1710만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는 게 협의회 측 주장이다.

주택협회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집단대출 금리 상승분을 미리 금융비용으로 책정해 사업비 자체가 늘어날 경우 이는 곧 아파트 분양가격으로 이어져 수요자들에게도 피해가 전가될 것”이라며, “금융권의 집단대출 규제가 지속될 경우 봄 이사철을 맞아 전·월세 가격 상승으로 주택구입을 원하는 실수요자 및 교체수요자 등의 주거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