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부재는 ‘애정 결핍’을 쌓는다. 쌍방향 대화가 단절됐거나 어긋난 탓이다. 이 감정은 결핍에서 비롯돼 끊임없이 상대의 애정을 요구한다. 금융권에서 정부로부터 유일하게 소외돼온 보험업계는 나름의 '애정결핍증'을 앓고 있다.

보험권은 ‘찬밥’ 신세, 은행권엔 ‘더운밥’이다. 감독당국과 정책당국의 관심은 덩치가 크고 접촉 빈도가 많은 은행에 쏠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7개 은행 총자산은 2450조원으로 950조원인 보험(56개)보다 2배 이상인 규모다.

규모도 규모지만 은행은 국민생활과 직결돼 언제 어떤 위급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게다가 보험업은 속사정까지 파악하기 까지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영역. 롱텀 비즈니스를 통찰할 여유가 없다.

이른바 ‘시간의 세례’를 거치지 않으면 ‘보험감독 전문가’가 되기 어렵고 보험권 장악도 안 된다. 외려 업계와의 기 싸움에서 밀린다. ‘보험 잘 모르면서 폼만 잡는다’는 낙인만 찍힐 뿐.

주기적으로 인사영향을 받는 ‘일년살이’ 당국자 입장에선 보험은 한마디로 ‘밉상’이다. 보험 민원은 또 왜 이렇게 많은가. 금융권에서 민원이 가장 높은 보험은 태생적으로 ‘비자발적 가입’ 속성을 지닌다.

지난해부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규제개혁을 대폭 추진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보험권은 ‘더운밥’ 구경이 어렵다. 보험사가 상대해야할 ‘시어머니’도 늘어났다. 건전성팀과 준법성 검사국이 분리되면서 생보국, 손보국에 이어 보험사 검사 주체가 3~4곳으로 확대됐다. ‘규제완화’와 점점 멀어지는 형국이다.

규제를 푸는 관련 법령이 입법예고만 됐을 뿐 진척이 없자 다시 보험사들은 기존 규제를 ‘눈치껏’ 따른다. 보험 산업에선 불필요한 사회적 낭비가 만만찮다.

보험사 경영자가 기자를 이해시킨다. “금융당국은 바뀌지 않습니다. 개혁이 잘 되도 보상이 없는데다, 결과가 나쁘면 처벌까지 받으니까요”.

자신이 담당자로 있을 때 아무 문제없기만을 바라는 규제당국의 책임자에게 보험 산업의 개혁은 사실 ‘남의 일’이다.

'다른 전략'과 ‘개혁’이 가지고 오는 이익은 보험사(남)의 이익에 불과하고 '나쁜 전략'이 피해를 가져올 때 그 화살만 자기(금융위·금감원)에게 날라 온다. 책임 소재를 묻기 위해 정책실명제, 감독실명제까지 거론되는 상황. 내가 당국자여도 개혁에 시큰둥해질 것 같다.

미온적인 규제당국의 입장은 선진국이라고 다르진 않다. 미국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도 혁신에 무덤덤한 정부를 마주했다. 머스크는 FAA(미국연방항공청) 측과 회의를 하다 자신이 보기에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FAA 직원의 발언을 모아 해당 직원의 상사에게 보냈다.

직원 편을 드는 그 상사 말이 적반하장이다. 직원이 스무번 이상 우주선 프로그램에 관여했단 이유로 머스크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했단다.

훗날 머스크는 저서를 통해 말했다. 그는 "규제당국과 상대하는 것은 원래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당국의 담당자가 규칙(규제)을 바꾸는 데 동의했다가 불상사가 생기면 그의 경력에 오점이 남는다. 반면 규칙을 바꾼 덕택에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그에게 보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규제당국은 규칙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가 좋아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다가 결과가 나쁘면 처벌을 받으니까.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저서 미래의 설계자 363쪽)라고 반문한다.

실제 혁신적인 경영으로 잘나갔던 국내 한 보험사는 금감원의 집중 공격을 받아 검찰에 고발당했다.

몇 개월 걸친 수사 과정에서 담당검사는 보험사 임직원에게 “금감원 선에서 충분히 해명할 수 있는 부분인데 왜 여기까지 오게 됐냐”며 “금감원이 검찰에 제출한 자료는 매우 악의적인 내용인데 왜 그렇게까지 밉보였느냐"고 반문했다.

그 회사의 도전적인 경영방식을 금감원에서 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다가 금융위기로 어려움에 처하니 이때다 하고 나선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금융당국 산하에선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다는 누군가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기업의 ‘다른 전략(different strategy)'을 당국은 곧 '나쁜 전략 (wrong strategy)'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테니. 아직도 박정희-전두환 시대 얘기냐고? 아니다. 박근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