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시향판 ‘막장 드라마’다.  성추행, 인사 전횡 의혹을 받았던 박현정 전 시향대표는 무혐의로 결론났고, 이는 시향 직원들에 의한 것임이 드러났다. 시향 관계자들은 국가기관은 물론 온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일삼았고 자기 조직 대표에 누명까지 씌웠다.

일견 맘에 안 드는 리더를 내쫓기 위한 관계자들의 ‘중상모략’ , ‘예술가와 경영자의 대립각’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사건의 본질은 ‘시스템 관리 부재’에 있다. 방치된 ‘시향 시스템’이 병을 키워 여러 가지 합병증을 불러들인 경우다. 이 사건도 한 단면일 뿐 비슷한 일이 우리 사회와 세계에 적잖게 벌어지고 있다.

한국을 나란히 찾아온 해외영화 <스포트라이트><빅 쇼트>에도 서울시향 사태와 같은 맥락이 존재한다. <빅 쇼트>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한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폭로한다면, <스포트라이트>는 실제로 발생했던 가톨릭 사제의 집단 성추행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았다. 취재팀은 30년간 보스턴 내 6개 교구에서 80여명의 아이들이 사제에게 성추행을 당했으며, 15년 전 추기경이 이 사실을 알고도 침묵한 정황과 시스템이 있음을 포착한다. 영화에서 ‘방치된 시스템’은 피해자의 숨통을 조이는 '괴물'이 됐다.

<빅 쇼트>가 '안일한 정부-자기 욕망에 충실한 시장 관계자-선의의 피해자 구조'를 드러냈다면 <스포트라이트>는 '교구청-법조계-사건을 방조한 언론 시스템-약자'간의 관계를 파헤쳐 사건의 뿌리를 건드린다.

영화보다 반전 묘미가 살아있는 <서울시향 사태>는 또 어떤가. 많은 이들이 사건을 ‘갈등 프레임’으로 바라보지만, 문제의 뿌리는 음악계 ‘예속적’ 구조에 있음을 꼬집는 비판자의 주장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들에 따르면 예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자. 그리고 그를 떠받드는 조직원들 간의 종속관계는 ‘절대권력 선생님과 절대약자인 제자’ ‘라인 잘 타기’ ‘왕따 문화 조장하는 파벌주의’로 요약된다. 예술계 특유의 예속적 관계가 왜곡된 충성심, 공명심으로 변질돼 자기 조직 대표(박현정)를 범죄자 취급하며 끌어내린 경우로 해석된다.

미국대학에서 예술기업가리더십을 가르치고 있는 한 교수는 "시향 사태의 불씨는 예술계 주변부에 있는 이들이 어떻게 해서든 집중된 권력 대열, 예술가 사단에 끼고자 '자발적인 주종관계'에 뛰어들면서 비롯됐다"며 "'성공한 사람을 지나치게 떠받드는 한국 문화'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절대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집중해 기존 시스템을 '괴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방치된 ‘시스템’이 병을 키워 여러 가지 합병증을 불러일으킨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사건의 본류가 시향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없었던 시스템에 있다고 일갈한다. 그는 “서울시가 서울시향 재원 대부분을 대고 있는데, 문화계 특유의 높은 진입장벽에 의해 실질적인 행정 업무 파악이 상당히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일반적으로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의 얼굴이자 수퍼스타여서 많은 관람객이 지휘자를 보고 표를 사게 되는 데 결과적으로 예술·정부 행정 인력들이 지휘자의 ‘팬’을 자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지휘자가 ‘절대권력’을 갖게 된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천재를 숭배한 나머지 성공한 천재 예술가에 ‘경영적 논리’를 들이대는 것을 금기시 하는 우리 사회 문화도 시스템 방치에 일조했다는 말이다.

보험업계도 ‘괴물 시스템’에서 예외일수 없다. 금융당국과 정책당국으로부터 소외된 보험 산업은 그야말로 '방치의 업종'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이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 절대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집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금융 공무원의 저서 '그림자 금융규제'는 자기 권한을 지키고자 하는 금융당국자의 탐욕이 보험업을 망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보험업을 고령화 시대 미래전략산업으로 밀고 있는 선진국과는 대조를 이룬다.

보험이 성장 산업으로 관심을 받았다면 이렇게까지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고인 물은 썩어 병을 키웠고 보험 규제는 '괴물'이 돼 산업 성장을 가로막았다.

전문가들은 당장 치료해야할 보험 정책으로 △공시제도 △교육 △채널문제 △진입과 퇴출규정 △자산과 재무 규제를 꼽는다. 보이지 않게 건건이 보험사를 간섭하는 당국의 비공식 행정지도도  '절대권력' 금융당국의 전형적 '갑질'로 거론된다. 한 보험사에 한 달 새 내려온 당국의 지도공문은 약 40편에 육박하는 가운데 2000명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금융사 80여개를 쥐락펴락하는 양상은 산업이 펴 보기도 전에 움츠리게 한다.

당국은 규제완화를 외치지만, 새로운 형태로 변형된 규제가 나올 것을 업계는 적잖게 걱정하는 형국이다. 보험 산업을 '과거 조금 잘 나가다 사라진' 산업으로 방치할 것인지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시스템 정리정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빅 쇼트> <스포트라이트> <서울시향 사태> <보험업을 대하는 금융당국>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마주하게 한다. 감시해야할 상위 정부기관이 침묵한 정황과 보수적인 권력에 기생한 세력도 눈에 띤다.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고 삼킨 ‘시스템’이 사회 후행을 조장하는 '절대괴물'로 세상에 내뱉어진 것이다. 어쩌면 기존 시스템의 전복과 반전이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