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마트 매장. 사진=위키백과

소유경영이냐, 전문경영이냐.

기업의 성과와 경쟁력 창출 효과를 놓고 어떤 경영체제가 더 나을까.

콕 집어서 소유경영체제, 전문경영체제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나라마다 다른 경제제도와 법규, 사람들의 사회경제 인식과 행태 등이 기업의 경영 환경을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외국의 한 연구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은 전문경영인을 일찍 등용해 창업자의 은퇴 시점에 창업주 가족이 소수 지분만을 갖는 전문경영체제로 전환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서유럽에선 창업자가 은퇴시점에도 대주주로 남거나 전문경영자를 고용하더라도 후손이 경영에 직접 참여해 소유경영체제를 유지하는 게 대부분이다. 신흥국가들은 창업주 가족이 소유권과 경영권을 유지하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다.

한국의 경우, 많이 완화되고 있지만 국민들의 반재벌 인식이 여전히 강한 탓에 창업주와 2~4세 후속들로 이뤄진 재벌 패밀리의 대물림식 소유경영체제에 비판적이다.

물론 한편에선 신성장 대기업을 키우기 위해 중소, 중견 규모의 가업승계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주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국내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소유경영 vs. 전문경영’ 우위 판정을 내리기 위한 양쪽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국내기업 대상 조사에서보다 외국기업 대상 심층평가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3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소유·전문 경영체제와 기업의 장기 성과-미국 소매업 내 두 기업의 성쇠’ 연구 보고서는 이같은 연구 경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대 경영연구소 안세연 교수의 연구 내용인 이번 보고서는 미국을 대표하는 소매유통기업 월마트(Wal-mart)와 K마트(Kmart) 두 곳을 비교분석, 소유경영과 전문경영의 선택이 기업의 장기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준다.

월마트는 한때 한국시장에 진출했다가 현지화에 실패하고 철수했지만, 2015년 미국 포춘(Fortune)지 선정 500대 기업 중 1위에 오르며 주가를 한껏 올렸다. 월마트는 전형적인 소유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K마트는 전문경영체제를 기반으로 성장, 창업 초기부터 1991년 이전까지 업계 1위를 고수하며 월마트에 압도해 오다, 월마트의 폭발적 성장에 밀려 1위자리를 내주는 것도 모자라 2002년 파산 신청 지경까지 이르렀다.

연구를 맡은 서울대 안세연 교수는 서로 다른 경영체제를 이끌던 두 ‘공룡’ 소매기업의 상반된 성과 차이를 통해 소유경영과 전문경영이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 조명했다.

결론적으로 “소유경영체제가 전문경영체제보다 기업의 장기 성과 달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결론 짓고 있다.

 

‘월마트 vs. K마트’-지배구조의 차이

월마트의 창업자는 샘 월튼(Sam Walton)으로 1962년 창업 이후 1992년까지 지배 대주주이자 이사회장 역할을 수해했다. 1970년 기업공개 때 샘 월튼의 소유지분은 약 61%였으며, 이후에도 40%대를 유지했다. 2세 경영을 맡은 장남 롭슨(Robson) 월튼도 지배 대주주 겸 이사회장으로 회사 주요 의사결정을 맡아 월마트를 대표적인 가족기업으로 성장시켜 왔다.

K마트는 1962년 창업부터 1967년까지 창업자인 세바스찬 크레스지(Sebastian S. Kresge)와 장남 스탠리 크레스지가 이사회장을 맡았으나, 스탠리 회장이 사임한 1967년 이후 경영에 참여하는 지배 대주주 없이 전문경영체제로 줄곧 운영돼 왔다.

할인판매업의 모회사 크레스지에서 출발한 K마트는 창업 5년만에 미국내 230개 점포를 개설, 같은 시기에 19개 점포와 900만 달러에 그쳤던 월마트에 크게 앞서며, 미국 할인소매점업 최정상에 올라 30년간 자리를 유지했다.

 

▲ 출처=한국경제연구원

‘월마트 vs. K마트’-사업 전략의 차이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K마트는 대도시 소비자를 타깃으로 도심에 대형매장을 설립하는 입지전략에, 고품질 상품을 할인 가격으로 제공하는 동시에 개별상품의 마진(이윤)율을 높이기 보다는 다양한 제품 라인으로 승부해 전국적 브랜드 인지도를 확장하는 영업전략에 주력했다. 따라서 K마트 매장의 76%가 10만명 이상 도시에 집중됐고, 고객의 52%를 대도시 고소득자가 차지했다.

이와 달리, 월마트는 매장 입지를 교외지역에 그것도 소형 매장 형태로 두는 전략이었다. 가격 또한 소도시 블루칼러(노동자계급)를 대상으로 ‘every day, low price’를 표방하며, 특정기간에 관계없이 항상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K마트 매장 입지의 인구 수가 10만명 이상 대도시였다면, 월마트는 미국 남부와 중서부의 인구 5만명 이하의 농촌지역 소도시를 집중 공략했다. 따라서, 월마트 단골의 72%가 농촌과 소도시 인구였다.

 

‘월마트 vs. K마트’-경영자 임기의 차이

소유경영체제보다 전문경영체제에서 경영자의 임기가 짧은 게 일반적이다.

보고서는 “1962년부터 2002년까지 K마트 최고경영진의 평균 재임기간은 6.7년인 반면, 월마트 최고경영진은 13.6년으로 2배 더 길었다”고 밝혔다.

해당 기간 동안 월마트의 최고경영자는 3명으로, 재임기간은 창립자 샘 월튼 26년, 데이비드 글래스 13년, 리 스콧 2년이었다. K마트는 이 기간에 6명이 거쳐가면서 최고 10년, 최소 2년을 재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K마트의 신임 CEO들은 취임과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와 메시지를 조직에 제시하며 실행을 요구하면서 기존의 진행 중이던 다른 프로젝트의 연속성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반면에 월마트는 ‘every day, low price’ 원칙을 유지하기 위해 원가절감의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둔 창업신념이 후대 경영자에게 지속적으로 계승돼 왔음을 강조했다.

결국 월마트가 핵심역량 개발을 위한 장기 투자를 지속해 왔으나, K마트는 잦은 전문경영인 교체에 따른 단절성 투자로 장기적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분석이고, 이같은 결과의 차이는 소유경영과 전문경영이라는 상이한 지배구조 특성에서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마트 vs. K마트’-경영자 보상체계 차이

K마트가 저성장에 직면하자 전문경영인들은 지속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다. 다각화의 형태는 외국 사업체와 빈번한 인수합병(M&A)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기존 핵심사업인 할인마트의 지점 리노베이션(혁신), 기술 투자, 인프라 개선에 투입돼야 할 여유자금이 M&A에 동원돼 결국 K마트의 핵심 경쟁력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연출, 1990년대 중반에는 핵심사업이 아닌 인수사업의 매출이 매출이 높아지는 역전현상이 나타났다”고 언급했다.

월마트도 1980~1990년대 기존사업 강화 목적으로 M&A카드를 이용했다. 그러나 핵심사업을 약화시키는 K마트의 M&A와 달리 월마트의 M&A는 본업인 할인유통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시너지효과를 창출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보고서는 K마트 전문경영진들이 단기성과에 집중한 배경에는 이를 제지하고 보완할 적절한 보상 시스템이 부재한 것에서 찾았다.

즉, K마트는 경영성과 달성 여부에 따라 차등적 성과급과 옵션을 부여하고 있는데, 전문경영인들은 단기적 재무 성과에 자신의 보상금액이 결정될 수밖에 없기에 개인 보상의 극대화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장기적 경쟁력을 도모하는 기술개발이 뒷전에 밀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월마트는 성과 달성뿐 아니라 경영자가 사업의 핵심과 주주가치와 일치하는 경영을 실행했는지를 이사회가 주관적으로 평가해 연봉과 성과급, 옵션에 반영함으로써 회사의 장기적 경쟁력에 기여했다는 설명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같은 비교분석에서 볼 수 있듯이 월마트의 소유경영체제는 기업의 장기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를 독려하고, 지속적 경쟁우위를 위한 핵심역량을 개발하는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결국, 월마트는 1978년 배송시스템에 투자를 시작으로 장기적 기술 투자에 매진한 결과, 재고관리 및 공급사슬관리(SCM)망 부문의 최고 경쟁력을 갖추고, 월등한 원가우위 전략을 적극 활용해 2000년대에 업계 1위로 올라섰고, K마트는 파산신청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보고서는 월마트 소유경영체제와 와 K마트 전문경영 간 비교에서 얻은 시사점을 근간으로 한국 기업에 ▲이사회 기능의 전문화 ▲내부 경영자 승계 프로세스 체계화 ▲경영자 보상체계 설계에서 비재무적 지표(기업 고유가치 실천 등) 반영 등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