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옥 세종시 운주산성요양병원 원장.

‘사고방식’은 어떠한 문제나 사건을 해결하거나 분석하고자 했을 때, 혹은 자신의 사고가 필요했을 때, 그 사고의 방법이나 태도를 정하는 양상을 뜻한다. 성격이 대상이 자기 자신인데 반해 사고방식은 본인이 아닌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삼는다는 것이 다르다.

동창회에 다녀온 부인이 ‘누구는 밍크 코트를 입고 왔더라’, ‘누구는 강남의 넓은 평수에 산다더라’ 남편에게 푸념을 한다. 부인은 단지 그렇더라고 말을 했을 뿐인데 남편은 이 말을 듣고 대책을 세운다. ‘어떻게 점수를 따야 저 불만을 없앨 수 있을까?’라고 고민에 빠진다. 부인은 단지 그런 사실에 대한 푸념만 늘어놓았을 뿐이었는데.

부부가 여행을 가기로 결정을 했다면, 부인은 한 달 전부터 짐을 싸기 시작하는데, 아이들 것까지 100여 가지의 가지고 갈 물건을 적어가며 체크한다. 잠을 자다가도 빠진 것이 생각이 나면 벌떡 일어나 다시 짐을 풀어 본다. 크기, 색깔, 타입, 디자인별로 분류해서 차곡차곡 쌓아 놓고 아이들의 일까지 자세히 생각해둔다. 그러나 남편은 공항에 가기 전에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부인이 출발 5분 전이라고 독촉하면 그제서야 짐을 싸기 시작한다.

이처럼 여자와 남자의 생각이 같은 상황에서도 다르다. 남자, 여자와 관계없이 체질에 따라서 사고방식도 다르다.

소음(少陰)인은 간단한 문제에도 골똘히 생각한다. 그리고 평상시 자기만의 시간이 나면 많은 공상에 빠지며 더욱 더 몰입하여 쓸 데 없는 생각에 빠진다. 예로, 나는 왜 사나?, 꼭 살아야 하나?, 산다고 무엇이 달라 질 것인지? 등등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답이 없는 문제에 빠져 몇날 며칠을 골똘히 생각만 하기도 한다.

그렇게 오래 생각을 해봐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을 풀려고 하다보면 서로 충돌하고 얽혀서 해답이 없어 답답하다고 한숨을 몰아쉬다가 부정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인생이 허무하다. 살기가 싫다. 세상살이가 염증이 난다는 등 안 좋은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의심도 많다. 자기 자신에 확신이 없으므로 자신이 생각하기에 바람직하지 못하고 용납될 수 없는 생각이나 충동을 ‘남 때문이라고’ 내던지는 심리기제가 있다. 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심리를 ‘투사’하는 사고를 밑바닥에 깔고 있어 의심을 잘 한다.

아울러 소심하여 남을 너무 의식하다 보니 누가 뭐라고 한마디를 던져도 그것을 가지고 자신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반복적으로 되풀이한다. 왜 저런 말을 했을까? 저런 행동을 할까? 이것이 심해지면 의심병, 의부증, 의처증, 관계망상 등의 정신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태음(太陰)인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취미이다. 너무나 단순한 해답이나 뻔한 결론을 싫어한다. 특히 인간관계를 중요시하여 간단한 문제도 복잡하게 해결한다. 이런 저런 사정을 따져보고 법적인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대비를 해야 한다. 더욱이 태음인은 겁이 많아서 ‘반드시 돌다리도 두드려보아야 한다’고 늘 신중론에 빠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모든 상황을 전후좌우에서 충분히 살펴보고 결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생각하다 보면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數) 둔다’고, 빠른 결정을 필요로 하는 투자의 경우는 너무 오래 끌다가 오히려 손해를 입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반대로 소양(少陽)인은 생각이 너무 단편적이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보듯, 모든 일의 앞면만 보고 너무 낙관적이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지도 모를 복잡한 일에 그저 자신의 긍정적인 생각만 대입시켜 충분히 이해도 못 한 상태에서 실행에 옮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격이 급해, 따져보거나 남의 의견을 경청해 보지도 않고 단지 몇 마디의 말을 해보고도 마치 자신이 상대를 정말 원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리고 덥석 결정해 놓고 발생하는 문제는 소소한 것으로 밀어붙이다가 결국은 함정에 빠져 커다란 손실을 볼 수 있어 경솔하다는 평을 듣는다.

<주역(周易)>에서는 익괘(益卦)와 손괘(損卦)는 똑같은 것으로 본다. 물질적 이익은 정신적 손해가 따르게 마련이고, 정신적 여유와 이로움에는 물질적 손해가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을 멀리 보고 상대를 배려하는 덕(德)을 많이 쌓아야,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편안히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