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CES 2016이 종료된 직후, 행사에 참여했던 모 기업 임원으로부터 들었던 재미있는 말이 있다. “ICT 및 전자업계로 보면 글로벌 시장에는 이승엽과 양준혁만 있다”는 말. 여기서 곰곰이 생각할 지점은, 이러한 발언의 기저에는 ‘큰 시장에서 경쟁하는 우리의 플레이어가 매우 한정적이다’다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다는 대목이다.

100% 동의하지 않는다. 글로벌 무대에서 뛰는 우리의 플레이어 중 대기업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임원은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거대한 생태계를 가진 중국은 기업간 협력을 바탕으로 촘촘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속된 말로 4번 타자만 있고 1번, 2번, 3번 타자는 없는 상황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출처=위키미디어

MWC 2016의 시사점, ‘중국’
올해 스페인에서 열린 MWC 2016은 물론, 최근 몇 년간 열렸던 전시 및 박람회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 있다. 중국의 황색돌풍이다. 전자 및 ICT 분야에서 강렬하게 불고있는 중국의 저력은 세상을 놀라게 만들고 있다.

스페인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됐다. 대륙의 늑대 화웨이를 필두도 다수의 중국 기업들이 MWC 2016 현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참가 기업만 227곳을 기록해 역대 최고기록을 경신했으며 신제품 발표 규모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전시의 꽃인 3홀만 봐도 화웨이와 레노버, ZTE를 비롯해 다수의 중국 기업들이 진을 치고 참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난해와 비교해 다소 부스 크기가 줄어든 삼성전자 및 LG전자와 비교하면 미묘한 대목이다.

특히 화웨이에 시선이 쏠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MWC 메인 스폰서를 맡은 화웨이는 조직위원회가 나눠주는 입장 명찰에 특유의 붉은색 로고를 기록하며 그 존재감을 사방에 알렸다. 모르는 사람이 MWC 2016 현장을 봤다면 온통 화웨이 천지로 보였을 것이다. 새로운 스마트폰 및 스마트워치를 보여주지는 않았으나 노트북과 테블릿의 결합형인 메이트북을 발표하며 스스로의 영역을 넓혔다. 리처드 유 화웨이 소비자사업부문 CEO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화두인 5G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보여줬다. 마케팅적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 미국 등 일부 통신사들이 5G를 소모하던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열렬한 구애를 펼치는 네트워크 사업자와 미묘한 온도차이를 보이는 부품업체의 중심에서 4.5G 시대를 선언하는 등 나름 현실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4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LTE도 상용화 절차를 밟지 않은 상태에서 4.5G의 기준을 제시해 순식간에 아젠다를 장악하는 노련함이다.

물론 5G에 대한 고민도 나왔다. 구오 핑 화웨이 부회장 겸 순환 CEO는 5G 3대 선행과제를 제시하며 연결성 확대(increased connectivity), 다양한 산업의 경쟁력 제고(enable verticals), 네트워크 기능 재정의(redefine network capabilities)를 화두로 세워 시선을 사로잡았다. 세이프티시티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보여줬으며, 그 과정에서 협대역 트렁킹과 브로드밴드 접속 방식과 다른 eLTE 광대역 트렁킹 솔루션의 미래도 제시했다. 세이프티시티는 헥사곤(Hexagon)과 함께 시각화 컨버지드 커맨드 솔루션(Visualized Converged Command Solution)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 출처=화웨이

NB-IoT 서밋(Global NB-IoT Summit)에서는 저전력 광범위(Low Power Wide Area에 최적화된 모바일 사물인터넷 기술인 NB-IoT(Narrowband Internet of Things)의 미래도 보여줬다.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신제품을 공개한 샤오미도 관심사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반값에 전략 스마트폰 미5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갤럭시S7과 LG G5에 들어간 스냅드래곤 820에 5.15인치 풀HD 디스플레이, 3000mAh 고정 배터리 스펙이다. 휴고 바라 샤오미 해외담당 총괄은 “삼성과 애플을 이기겠다”며 노골적으로 선전포고 하기도 했다.

물론 중국에 화웨이와 샤오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차이나모바일은 5G 영역에서 상당한 중량감을 보여줬으며 중저가 스마트폰 블레이드V7 및 프로젝터와 태블릿이 모두 지원되는 S프로플러스를 발표한 ZTE도 대륙의 ‘기상’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후문이다. 최재유 미래창조과학부 차관과 김재홍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MWC 2016 현장에서 중국을 경계한 이유다.

227개와 97개
물론 한국기업도 밀리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물론 SK텔레콤과 KT를 위시한 97개 기업이 출동해 글로벌 무대를 누볐다. KTB솔루션, 포켓모바일, 한국NFC 등 핀테크 3인방은 각자의 능력을 가감없이 보여줬으며 화두로 부상한 가상현실, 5G에는 꼭 한국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경쟁력으로 한국 기업들은 가상현실의 무서운 동력과 전통을 강조하는 여유(삼성전자)를 보여주기도 했으며 모듈형 스마트폰과 8개의 프렌즈로 패러다임의 변화(LG전자)를 자랑하기도 했다. 디자인적 심미성과 프리미엄 전략도 힘을 더했다. 이는 단기속성과정을 밟아온 중국이 단기간에 회복할 수 없는 간극이며, 힘의 차이다.

그러나 ‘중국 기업 숫자 227개’와 ‘한국 기업 숫자 97개’가 주는 잔잔한 충격은 외면할 수 없어 보인다. 국내 시장의 크기와 움직이는 돈의 단위가 다르기 때문에 물리적인 부피만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기는 어렵지만, 결국 이는 생태계의 확장성과 시너지에 있어 한국의 절대적인 열세를 의미한다.

중국의 화웨이와 샤오미의 뒤에는 든든한 중소 ICT 및 전자업체가 포진해있다. 이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거대한 생태계의 보고며, 우리가 '시장 크기가 작아서 어쩔 수 없잖아'라고 포기해 버리는 아쉬운 강점이다.

자연스럽게 일부 대기업 위주로 라인업이 짜여지게 되며, 이는 ‘선수층’의 약화로 이어진다. 무작정 숫자를 늘리자는 것이 아니라, 이제 대한민국도 전자 및 ICT 업계에서도 백업 멤버를 육성하기 위한 최후의 단계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역사는 시간이 흐르면 채워지는 법.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