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함흥냉면은 쫄깃한 식감의 홍어회 꾸미가 올려진 비빔냉면을, 평양냉면은 육향과 메밀면의고소함을 즐길 수 있는 물냉면을 먹어야 제대로 그 맛을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지난 주 함흥냉면에 이어 가장 평양 본토의 맛을 살렸다 평을 듣는 의정부 평양면옥을 찾았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순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랫목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평안북도 출신 백석 시인이 노래한 ‘국수’의 한 소절이다. 평양냉면을 묘사한 이 시처럼 요즘에야 어디 꿩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겠느냐만은 슴슴하고 담백한 평양식 물냉면은 여전히 냉면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자극적인 맛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평양식 물냉면의 첫 인상은 “뭐 이리 심심해?” 라는 외마디 불평이다. 하지만 그 심심함에서 느꼈던 담백함의 여운이 돌아서면 문득 생각나는 아련한 맛으로 기억돼 다시 한 번 발길을 돌리는 것, 그것이 평양냉면의 매력이다.

평양냉면은 나름 그 계보가 있다. 필동면옥, 을지면옥, 본가평양면옥으로 이어지는 의정부 평양면옥과 논현동 평양면옥, 분당 평양면옥으로 이어지는 장충동 평양면옥, 그리고 이보다 덜 알려졌지만 고덕동 평안도 오부자, 삼성동, 분당의 평가옥, 목동 평미가도 한 축을 담당한다. 가장 오래된 우래옥 역시 빠질 수 없으며 진한 고기육수의 을밀대 역시 평양냉면의 대표집이다.

이 중 오늘 찾아간 의정부 평양면옥은 냉면 애호가들에게 가장 평양식 시골맛을 잘 살린 맛의 원조집으로 평가를 받는 곳이다. 이북 출신의 창업자 김경필 할머니가 연천 전곡에서 1969년 자제분들과 함께 평양냉면집을 개업한 이래 어느새 40년의 시간이 흘렀다. 1남 4녀 중 의정부 평양면옥은 장남인 홍진권씨가 나머지 세명의 딸들이 을지면옥, 필동면옥, 평양면옥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의정부 평양면옥을 매일같이 30년 이상을 찾았다는 김욱영(85), 이금옥(65) 부부. 그들이 함께 이곳을 찾은 세월만도 30년이 넘었고 그 훨씬 전인 10년 전부터 김욱영 할아버지 혼자 이곳을 찾았다니 그 기나긴 세월이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아무리 냉면을 좋아하기로서니 어떻게 30년을 매일같이 냉면집을 찾을 수 있었을까?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부인 이금옥씨가 대신 대답을 한다.

신장투석을 받아 입맛을 잃었던 남편이 유일하게 찾은 음식이라 매일같이 먹게 되었다고. 원래 냉면을 좋아하지 않았던 자신으로서는 고행이었다며 웃는 그녀는 남편 따라 30년 이상을 매일같이 먹다보니 이젠 냉면도사가 됐다고 한다.

입으로 끊어먹어야 제맛 가위는 절대 사절
김욱영 할아버지에게 냉면이 입에 맞는 이유를 물어보니 “강하지도 맵지도 짜지도 않은 국물이 매일 먹어도 질리질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메밀이 적당히 섞인 면발이 처음엔 쫄깃하다가 육수에 적당히 불면 입으로 끊어먹는 재미도 있다며 연신 칭찬이다. 함흥냉면은 고구마 전분으로 질기면서도 쫄깃한 면발을 매콤하게 먹는 게 맛이고, 평양냉면은 메밀이 80% 이상 섞인 고소한 면발을 담백한 육수에 입으로 끊어 먹는 게 제대로라며 평양냉면 면발을 절대 가위로 자르지 말라고 일러준다.

매일같이 찾는 할아버지의 정성에 답이라도 하듯 주인장 홍진권 사장 역시 면발 하나하나 정성을 쏟고 있다. 자체적으로 방앗간이 있어 하루 사용할 메밀방아를 그날그날 찧고 손님이 들어오는 대로 그때그때 반죽을 해 면발을 삶아 메밀 생면의 향을 그대로 전달한다.

테이블에 놓은 물냉면을 보니 인심도 후하다. 푸짐한 물냉면의 맛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어 육수를 한 입 시원스레 마셔본다. 원래 물냉면에 식초와 겨자를 듬뿍 넣어 먹는 기자의 입맛에도 이곳의 물냉면엔 감히 식초와 겨자를 넣을 엄두를 못 낸다. 담백하면서도 짭짤한 육수 맛을 지키고 싶어서랄까. 고기육수가 나오는 함흥냉면과 달리 메밀 삶은 면수가 나오는 것도 평양냉면의 특징이었다.

이곳의 별미인 돼지고기 수육도 빠질 수 없는 메뉴다. 부들부들하고 촉촉하니 지방이 적당히 녹아내린 돼지고기 수육을 칼칼한 양념장에 찍어먹는 것도 평양 물냉면만큼이나 맛깔스럽다. 속이 꽉찬 이북식 왕만두 역시 이곳의 자랑거리. 한 입 베어 물 때 속이 알차 만족스럽고 짜거나 맵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간이 배어있어 또 한 번 만족스럽다.

“음식이라는 것이 ‘맛’이 가장 중요하지요. 음식장사라는 것이 어찌 보면 참 어려운 게 수많은 사람들의 제각각인 입맛에 어떻게 100% 맞출 수 있겠어요. 그런데도 오래도록 손님들이 찾아주는 이유는 ‘정직’하게 음식을 만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곡물파동이 났을 때 많은 곳에서 음식재료에 다른 것을 섞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머닌 그걸 용납하지 않으셨어요. 내가 돈을 벌려고 하면 손님들은 귀신같이 알아낸다는 것이 늘상 하시던 말씀입니다.”

평균 65세였던 의정부 평양면옥의 고객 평균 연령이 최근 점차 어려진다고 한다. 바로 할아버지를 따라 이곳을 찾았던 초등학교 아이들이 20대 젊은이로 성장한 것, 가끔 ‘어릴 때 그 꼬마가 저렇게 컸구나’ 싶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는 그는 여전히 대를 잇는 가업으로서 정직한 맛을 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냉면 명가들 맛의 비결은?

연식으로 가장 오래된 곳은 60년 전통 을지로 4가에 위치한 우래옥으로 소고기로만 우린 진한 고기육수와 이제는 귀해진 100% 메밀 순면이 특징이다. 논현동 평양면옥과 분당 평양면옥으로 이어지는 장충동 평양면옥은 투명한 육수의 소금간이 특징적이며 필동면옥, 을지면옥, 본가평양면옥으로 이어지는 의정부 평양면옥은 고기육수에 고춧가루가 뿌려져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을밀대 역시 소뼈와 소고기를 장시간 고아낸 육수에 살짝 얼린 얼음 셔벗이 둥둥 띄어진 물냉면이 제공된다. 평양냉면 사리치고는 면발이 굵고 전분 비율이 높아 탄력이 있어 손님마다 호불호가 나뉜다.
위치 :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 3동 385
문의 : 031) 877-2282

최원영 기자 uni354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