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 또 도발적인 발언으로 에너지시장을 뒤흔들어놓았다. 그는 2월 23일(현지시각)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IHC-CERA 연례회의’에서 작심한 듯 “감산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말로 감산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원유시장이 어느 한 나라가 감산한다고 해결될 정도로 규모가 작지 않기 때문에, 몇몇 나라가 합의를 한다고 해도 다른 산유국들의 이행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힘들 것이라며 사우디의 ‘불가’ 명분을 대신했다.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는 그런 명분으로 속셈을 포장하면서 미국 셰일 생산 업체들과의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복심을 전달한 듯하다. 이날 사우디아라비아는 셰일 생산 업체들에게 일종의 경고성 발언을 한 셈이다. 사우디는 시장 점유율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산유국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그는 이날 미국의 셰일 생산 업체들에게 “우리는 절대 당신들의 점유율을 간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셰일로 상처 받은 석유제왕의 자존심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들이 손들고 나올 때까지 셰일과의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다.

국제유가는 급락세를 보였다. 앞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장관이 모여 지난 1월 11일 기준으로 생산량을 동결하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장관의 발언으로 감산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점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이란도 거들었다. 이란의 입장은 시종일관 같다. 왜 우리가 감산의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것이다.

‘4개국 동결합의’에 따른 감산 기대감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당분간 원유시장은 수급에 따라 그냥 갈 공산이 크다.

에너지 시장은 이미 큰 흐름은 정해진 듯하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는다면 산유국들은 기존에 취해온 입장대로 ‘발등의 불’인 재정악화를 해결하기 위해, 감산보다는 증산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당장의 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부 산유국의 파산 도미노가 현실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파산 도미노가 본격 가시화될 경우 자연스레 감산구도로 돌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다시 에너지 시장은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치킨 게임으로 달려가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이 그리 길게 가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들도 모든 산업구조가 갈수록 비석유 에너지로 향하고 있는 현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이런 인식이 그들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감산이 힘들다는 엄살을 부린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청정전략 프로젝트가 펀딩의 수준을 넘어서 이미 본격 가동되고 있다. 미국은 그 플랜대로 셰일 등 석유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줄여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에너지 시장의 큰손인 중국마저도 글로벌 시장에서 에너지 사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투자를 확대한 것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의 풍력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까지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중국의 움직임은 산유국들에게 조급함을 더하고 있다. 중국 동향에 비춰 비산유국인 이머징 마켓의 다른 국가들의 신재생에너지 선호는 날이 갈수록 확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냐, 내년이냐를 떠나 향후 5년 이후의 큰 흐름으로 볼 때 에너지 시장의 대세는 신재생에너지인 듯하다. 글로벌 경제가 침체일로에 있는 가운데 에너지의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경제의 변동성을 줄일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글로벌 에너지시장은 나무를 볼 게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