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왼쪽 정문국 ING생명 대표이사 사장, 오른쪽 김용범 메리츠화재 대표이사 사장.

보험업계는 이단아를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이단아를 '본업을 알지도 못한 채 단결을 해치고 엇나가며, 헛짓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이단아는 회사에서는 물론 동종업계까지 불편하게 해서 배척당하기 일쑤고, 급기야 금융당국의 눈엣가시가 돼 '찍어내기' 혹은 '뒷담화' 대상으로 술자리에 오른다.

특히 금융권은 어느 산업보다 이단아가 혁신을 가져다준다는 말을 너무나 믿기 어려워한다. 이같은 업계 분위기 때문에 기존 ‘이단아’들은 금세 조류에 휩쓸려 온순하게 길들여지거나 사라진다.

하지만 자신만의 경영 스타일과 소신으로 보란 듯이 보험사를 키우고 있는 두 명의 대표가 있다. 이들은 직접 ‘메기’가 되어 무기력에 빠진 조직과 업계에 자극을 줬다.

이 이단아형 리더는 취임 전 내정 기간 때부터 ‘잉여 인력’을 ‘숙청’할 준비를 했다. 직장인 타성에 빠진 임원과 ‘책상머리’형 리더들이 절반가량 잘려나갔고, 희망퇴직으로 직원들이 20~30% 가량 정리됐다. 이단아 리더는 ‘혁신은 조직의 여백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악역'을 맡은 이단아를 보는 금융당국의 눈살은 곱지 않았다. 이단아 대표는 무리없이 ‘욕받이’ 사장으로 등극했고 올해 취임 1~2년을 넘겼다. 사람욕심이 경영자의 본능이라 했던가. 인재·영업인 스카우트, 핵심라인에 자기 사람을 노골적으로 심는 바람에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바로 정문국 ING생명 대표와 김용범 메리츠화재 대표의 이야기다. 이들이 선택한 ‘과감한’ 보험사 경영 방식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그리고 이들은 앞으로 '보험산업에 새바람을 몰고 온 흥행 CEO’와 ‘업계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단아’란 타이틀 중 어느 것을 거머쥘 수 있을까.

취임 1년~2년을 넘긴 지금 이들은 '욕받이' 사장과 벤치마킹해야할 ‘혁신경영자’. 양극단의 평가를 오가고 있다.

 

◇ 정문국 대표, 차별화 통한 혁신에 올인…인재 캐스팅과 파격 상품 개발

정문국 ING생명 대표이사와 김용범 메리츠화재 대표이사는 이른바 '무임승차자'로 불리는 저성과자를 걸러내고, 리더로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임원들을 해고하는 것으로 부임하자마자 승기를 잡는다.

20~30%의 저성과 조직을 정리한 결과 ING생명 임직원 수는 정 대표가 부임할 무렵(2013년말) 1024명에서 1년 뒤 804명으로 줄어들었다. 메리츠화재 임직원은 김 대표가 내정될 당시(2014년말) 2615명에서 지난해 11월 기준 2187명으로 축소됐다.

경영자는 본능적으로 사람 욕심이 많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겨야 일이 제대로 풀리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 있어 적자를 내는 것이 제일 바보 같은 짓이고, 그 다음이 사람 빼앗기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사람 빼앗기는 것이 더 바보 같은 일”이라고 삼성 이건희 회장이 언급한 바 있다.

이들 대표의 인재 캐스팅 방식을 두고 보험업계는 수군거렸다. 대형 경쟁사 핵심 전문가를 데려오거나 일개 부장을 고위 임원으로 발탁하는 등 보수적인 업계 관행을 뒤엎었다. ‘인재 빼가기’가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업계의 원성이 나돌았을 정도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적정선에서 전문가를 데려가던 관행을 무시하고 공격적으로 인재영입에 베팅하는 김용범 대표를 두고 업계에서 말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영입 인재 대부분은 최고경영자나 임원들과 친분이 있어 캐스팅되는 스타들로, 리더가 그의 조직 내 위치를 깊이 고민하지 않은 상태에서 능력만으로 뽑은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영입은 실패에 그치고 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입 인재가 조직에 들어오기 전에 그의 직무뿐 아니라 기존 구성원과의 관계 형성, 융화 가능성을 고려해 선발하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인재 영입 후 ‘이단아’ 경영자는 보험사 본업이라 할 수 있는 영업과 보장성보험 강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문국 대표는 수장이 된 지 1년 반 만에 기존 보험사들이 시도하지 못한 파격 상품 ‘용감한 오렌지 종신보험’을 내놓는다.

이 상품은 쉽게 말해 '단골고객에게 혜택(환급금과 이자)를 더 주는 종신보험으로 기존 발상을 뒤집은 보험이다. 조기 해지하는 계약자로 인해 얻는 수익은 과감히 포기한 채, 장기 유지하는 고객을 수십 년간 안고 가야하는 ‘비대한’ 상품이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일단 이자부담이 크고 적립금 규모도 올라가 상당한 책임이 요구된다. 그래서 보험사들이 출시하기 꺼렸던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출시를 결단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회사에 도움이 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장기 보장성 보험에 따른 보험료 유입이 길어지기 때문에 보유 계약가치가 올라가 는 효과를 낳는다. 보험사로서 본업에 충실하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계약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오래 유지한 고객이 기존보다 나은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금방 해약하는 고객은 패널티를 문다. 이 상품은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해 3개월간 ING생명만이 판매할 수 있게 됐다. (ING생명 대주주 MBK파트너스는 오는 2017년 ING생명에 대한 적절한 자금회수(엑시트)를 위해 매각을 준비 중이다)

정 대표가 신상품 개발에 직접 나섰다는 점은 책상머리형 보험사 사장들이 반성해야할 대목이다. 대표가 직접 나서 먹거리를 발굴하는 경우는 드물다.

때로는 수장이 나서야 일이 제때 해결되기도 한다. 그는 미국‧일본‧유럽 등 7개국의 보험 상품을 들여보며 외국사(일본‧미국) 방문에도 동참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 보험 전문가 17명의 견해를 들었고 고객 그룹에 대한 14차례 인터뷰에도 참여했다.

기자간담회에서 정문국 대표는 “오랫동안 유지해야 하는 종신보험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고객이 곧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많다. 부담되는 보험료 때문이다. 부담을 줄이면, 오랫동안 계약을 유지할 수 있다.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보험상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다른 보험사들이 이자율로 쉽게 저축보험을 만들 때 ING생명은 보험사 본질에 집중하는 새로운 보장성 보험을 출시해 업계에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ING생명은 정문국 대표 취임 전(2013년)과 후(2015년)로 나뉜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선 외형이 성장했다. 신계약 보험료(APE) 34% 가량 뛰었다(5135억원→6894억원).

수익성도 좋아졌다. 2013년 기준 2000억 수준이었던 당기순이익이 2015년 약 3000억원으로 집계(추정치)됐다. 13회차 계약 유지율도 2.9%p 올랐으며(78.3%→81.2%), 설계사 시험 합격률도 75.7%에서 93.2%로 17.4%p 나아졌다. 상품 포트폴리오 비중도 보장성 중심으로 전환됐다.(보장:저축:변액=39.4%:42.2%:18.4% →보장:저축:변액=51.7%:16%:32.2%)

 

 

◇메리츠화재 김용범 대표, 1년만에 창사이래 최고 이익 달성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가장 극적으로 바뀐 보험사다. 김용범 대표가 ‘지휘’를 맡게 되면서부터.

김용범 사장은 ‘30분 회의’로 효과를 제대로 보는 회의가 되도록 당부했고 전 직원들에게 전자결재를 전면 시행하면서 대면결재를 금지할 것을 요청했다. 이밖에 △효율적으로 사업비를 쓰고 △수익성 중심의 영업을 통해 △성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아울러 영업조직의 작성계약(가짜계약) 단절을 위해 ’전쟁’을 선포했다. 작성계약 금지 위반자로부터 사직서를 받을 정도였다. 가짜계약을 포기하고 무리한 영업을 하지 않아서 일까. 13회차 계약유지율이 80%을 넘어선 가운데 설계사 조직도 10%가량 늘어 7000명 수준의 영업 군단으로 확대됐다.

손해율 지표도 개선돼 이익을 남길 여지가 많아졌다. 첫해년 손해율이 46.4%로 전년대비 8.5%p 개선된 가운데, 장기 위험순손해율도 전년동기 대비 2.2%p 낮은 84.3%로 꺾였다.

투자이익률도 4.4%로 업계 1위를 달성해 ‘기업가치평가(밸류에이션)’ 전문인 김 대표의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대표는 전 직장 메리츠증권 수장을 맡은 3년6개월간 시가총액을 5배로 끌어올린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다.

이밖에 메리츠화재가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진행 중인 '33플랜'도 회사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했한 것으로 보인다. 3년 안에 손보사 3위로 올라서자는 게 33플랜의 요지다. 이를 위해 메리츠화재는 차별화 및 효율화, 사업가 정신 등을 임직원들에게 강조했다. 김 대표 취임 1년만에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이익인 2222억원(연결기준)을 달성했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앞으로 선집행한 사업비 1300억대 추가상각 해결과 아메바 경영 실행을 통해 시장여건이 어려워도 유능한 조직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음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이단아의 공통점 ‘돌파력으로 문제 쳐내 혁신에 집중확실한 자기관리’

잘나가는 경영자도 허세만 잡다간 순간 '훅'하고 날아간다.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폼만 잡고 지적하기보다, 어려운 일 먼저 해결해나가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너무 사소한 일까지 챙겨 ‘마이크로매니저(micromanager)’에 가깝다는 지적과 함께, 기존 조직은 내보내면서 자기 라인은 과도할 정도로 챙긴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정문국 대표는 에이스생명과 ING생명 사장직을 맡게 되자마자 무임승차형, 책상머리 임원을 정리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에이스생명에서 정 대표를 가까이서 본 한 관계자는 “매년 적자 육백억 나는 회사에 일 안하고 월급만 받아가는 임원은 있어선 안 된다고 판단한 듯, 정 대표는 무임승차형 임원들을 냉정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정리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에이스생명에 부임한 지 3개월 때부터 ING생명 대표직으로 이동한다는 설이 나왔고, 정 대표는 에이스생명 근무 마지막 날까지 퇴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정 대표는 리더로서 흐트러지는 임원을 묵과하지 못하는 성품으로 이를 어긴 임원은 가차없이 탈락시키고, 자기 사람은 확실히 챙기는 리더로 알려진다.

김용범 대표는 삼성생명에서도 실패한 바 있는 아메바경영(팀단위의 손익계산·이익기여도 판단 후 성과책정)으로 사업가적 마인드를 조직에 심고 있다. 아메바경영의 단점은 손실보기 쉬운 난해한 업무는 어느 조직도 맡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메리츠에서는 어떤 식으로 소화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 대표는 자기관리에 뛰어난 인물로 지리산 종주 등 산행으로 체력을 다졌다. 다양한 독서와 문화 감상으로 안목을 키운 크로스오버형(증권+보험) 금융사 리더라는 정체성을 보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