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지혜 오픈갤러리 디렉터&큐레이터

‘예술’이라는 말은 ‘와, 예술이다’처럼 높은 경지의 결과물에 대한 찬사처럼 쓰이기도 하지만, ‘예술 하고 있네’처럼 현실과 분리되어 쓸데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한 비난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럼 예술은 정말 쓸모가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다. 예술은 쓸모가 없다. 그렇다면 작년에 고갱의 작품이 3600억원에 거래되며 최고가를 갱신한 것이나 50㎝도 안 되는 세잔의 수채화가 230억원이 넘는다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 236억원에 거래된 세잔의 <그린멜톤이 있는 정물화(Nature Marte au Melon Vert)>  ⓒsothebys.com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것의 가치는 ‘쓸모’라는 기준에 의해 정해진다. 사물은 물론이고 사람 또한 ‘쓸모’에 따라 가치, 즉 값어치가 매겨진다. 그러나 예술에 있어 가치와 쓸모는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쓸모가 분명한 도예나 공예는 예술의 범주에 들어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시 말해, 예술은 쓸모없음(Useless) 덕분에 자본주의적 가격 결정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마르셀 뒤샹, <샘(Fountain)> ⓒgoogle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시중에서 구입한 소변기에 사인해 <샘(Foundtain)>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에 출품했다. 예술가가 작품 제작에 개입하지 않은 공산품(Ready-Made)이 예술이 되었던 이 순간을 많은 사람들은 현대미술의 기폭제로 보고 있다.

이 작품은 2009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76만달러에 거래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소변기’가 되었다. 상점의 소변기와 뒤샹의 소변기는 물리적 기능으로 볼 때는 동일하지만 용도는 다르다. 뒤샹은 소변기가 본래 가지고 있던 쓸모를 무력화함으로써 가치가 높은 예술품으로 만들 수 있었다.

▲ 만 레이, <선물(Gift)> ⓒgoogle

러시아 출신의 미국 예술가 만 레이(Man Ray, 1890~1976)는 지인에게 다리미를 선물하기로 하고, 벼룩시장에서 다리미를 산 뒤 구리 못 13개를 한 줄로 붙였다. 그 순간 옷을 평평하게 펴야 하는 다리미는 쓸모를 잃었다. 그 다리미를 이용한다면 옷은 펴지기는커녕 만신창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다리미는 쓸모를 잃은 대가로 <선물(Gift)>이라는 제목의 예술품이 되어 10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는 이후에도 유용한 사물을 무용한 것으로 전환하는 작업들을 했다. 그는 사물은 쓸모가 없는 것이 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가치가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 레이는 “오직 인간만이 쓸데없는 것을 창조하는 유일한 생물이라는 점이 놀랍다”고 말했다. 쓸모 있는 것의 가치를 깎아내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이 시장 논리에 의해 결정되고 효율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는 현대사회에서 예술은 우리가 자본이 아닌 다른 소중한 가치에 몰두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쓸모없음’이 곧 가장 ‘가치 있다’는 역설적인 표현은 우리 삶에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