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유난히 추운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현정은 회장이 사재까지 출연하며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상선에 대한 자구안을 마련하자마자 ‘대북 악재’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북한이 우리 기업이 철수한 개성공단에 군사를 배치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와중이라 현대아산은 17년만에 대북사업을 전면 중단하게 됐다.

현대상선 유동성 위기에 대북사업 전면 중단까지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해운업의 장기불황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다. 특히 대규모 채권 만기가 도래하는 2016년 4월과 7월에는 자금난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현대상선은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쏟아왔다. 2013년 말부터 최근까지 현대로지스틱스를 매각하고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3조5000억여원을 확보했다. 1월29일에는 현대아산 주식 전량을 그룹 계열사이자 최대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에 팔기도 했다.

2013년 말 1186%에 이르던 부채 비율은 2015년 3분기 980%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부채규모는 6조314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자 현대그룹은 1월31일 현정은 회장 사재 출연 등을 포함한 현대상선 자구안을 제출했다. 현 회장이 약 300억원의 사재를 직접 출연해 현대상선 경영 정상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은 그룹의 주력 계열사일 뿐 아니라 현정은 회장의 부친인 고 현영원 회장이 남긴 회사인 만큼 (그룹 입장에서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그룹이 ‘현대상선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와중에 또 다른 악재가 터졌다. 개성공단 전면 폐쇄와 함께 사실상 북한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룹의 대북사업 전담 계열사인 현대아산에는 비상이 걸렸다. 지난 1998년부터 금강산 관광 등을 진행해오다 17년3개월만에 모든 대북사업을 중단하게 됐기 때문이다.

현대아산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로 개성사무소에서 철수함에 따라 앞으로는 여행·건설·면세점사업에 전념하게 된다.

현대아산은 앞서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조치에 따라 개성공단의 '송악프라자' 개성사무소의 근무 인력을 모두 철수시키기로 했다.

현대아산 송악프라자는 개성공단에서 식당·숙박시설·주유소 등을 운영해왔다. 평소 송악프라자에는 23명의 직원이 상주해왔으나 설 연휴 기간에는 8명의 직원만 남아 있었다. 이들도 11일 오후 모두 서울로 돌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아산은 지난 1998년 금강산 관광사업을 통해 대북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지난 1998년 11월부터 10여년간 200만명 가까운 관광객을 유치했으나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격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사업을 접었다. 사업 중단에 따른 현대아산의 전체 피해규모는 2015년 5월 1조원대를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 축소로 적자 행진이 이어지자 현대아산의 조직규모도 축소됐다. 한때 1000명을 넘겼던 직원은 260명 안팎으로 줄었다.

지난 2013년까지는 매년 현대그룹 차원의 유상증자에 힘입어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그룹의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유상증자마저 중단됐다.

현대아산은 궁여지책으로 국내건설·면세사업·MICE(국제회의·관광·컨벤션·전시)·ODA(공적개발원조) 사업 등에 진출했다. 현대아산은 지난 2014년 기준 2055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현대그룹은 ‘체질개선’ 차원에서 현대아산을 종합여행사로 발돋움하게 만들 방침이다.

일반관광 부문의 수익성과 성장기반을 확보한 뒤 종합여행기업으로의 성장을 모색할 계획이다.

현대아산은 종합건설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현대아산은 2002년부터 국내공사를 시작했으며 2004년 개성공단 개발사업 북측 지역 공사를 맡았다. 현대아산은 남북관계 경색에 대비해 국내공사 확대를 추진해왔다.

현대아산이 최근 분기보고서를 통해 "품질·안전 최우선 경영으로 대외 신인도를 강화해 국내 중견건설사로서의 면모를 구축할 것이며 현대그룹 위상에 맞는 종합건설사로 도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그룹의 전략과 그 궤를 같이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북 사업이 일정 부분 리스크를 안고 있었던 것인 만큼 이 같은 악재를 기회로 삼아 그룹의 체질개선과 구조조정 작업을 성공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