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에 들어설 9600가구의 보금자리 주택에 대한 과천 시민의 반대 기류가 뜨겁다. 전세난에 과천시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보장하겠다는 과천시의 입장과 반대로,
시민들은 ‘누구를 위한 보금자리냐’며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고 나섰다.

과천시의 보금자리주택 정책을 규탄하는 시위가 지난 2일 과천 중앙공원에서 열렸다.


경기도 과천시는 녹지율 90% 이상을 자랑하는 친환경 주거 지역으로 손꼽힌다. 관악산, 우면산 자락을 낀 주변 자연 경관과 조용한 환경 덕에 ‘살기 좋은 도시’로 자리 잡은 과천에 대한 이곳 주민들의 자부심이 큰 까닭이다.

그런데 과천 주민이 단단히 화가 났다. 정부가 과천에 보금자리주택 9600가구 공급안을 발표한 이후 과천 주민들과 과천시장 사이에는 마찰이 끊일 날이 없다. 지난 2일 토요일, 과천시 중앙공원에서는 ‘보금자리주택 반대 시민 비상대책위원회’의 주도하에 집회가 열렸다.

이날 과천시 보금자리주택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이 1000여명 이상 모여 보금자리 정책을 한 목소리로 규탄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과천시 보금자리주택 반대 서명안에는 1만명 가까이 되는 시민들이 서명했다. 7만여명의 인구 중 1만명 가까이 되는 인구가 서명한 사실은 의미가 크다. 심지어 과천 시민들은 여인국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까지 검토하고 있다.

과천 시민은 자체적으로 ‘과천 사랑’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 카페에는 최근 보금자리주택에 관한 안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시민 집회도 이곳에서 모의됐다. 현재까지 열린 집회는 모두 4차례. 곧 열릴 5차 궐기대회를 통해 반대 물살은 다시 한 번 급류를 탈 전망이다.

이들의 거센 반발의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임의 위원직을 맡고 있는 한 과천 시민은 “모두가 과천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이다”라며 “우리가 보금자리 지구 지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라고 말했다.

물론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보금자리주택이 주변 아파트 시세의 80~85%선으로 책정된다면 가격경쟁력을 갖지 못한 주변 집값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생을 성실히 일해 살기 좋은 땅에 들어와 겨우 내 집 한 채 장만했는데, 자기 소유의 집값이 하락한다면 반대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게 그들의 대체적인 입장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과천시는 보금자리지구 지정 발표 이후 집값이 2000만~2500만원가량 하락했다.

낡은 아파트 진절머리… 시장 소환 움직임

과천시 원문동의 주공2단지 아파트는 겉보기에도 낡은데다 외관 벽면이 벗겨진 곳도 있었다. 안은 더하다는 주민의 설명이 더해졌다. 이처럼 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대부분이 지은 지 30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라 재건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도 보금자리에 대한 반대 이유 중 하나다.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서면 재건축 추진이 지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천에 위치한 주공 아파트 단지 중 10년째 재건축이 표류된 단지도 있다는 것. 현재 과천시의 재건축 대상 단지는 12개 단지로 이 중 4개 단지만 재건축이 추진 중이다.

10여년간 재건축을 요구해 온 주민들은 이제 과천시 측의 일처리 속도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불평했다.

아파트가 낡아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물이 나오는 곳도 더러 있다며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이들에게 주거 환경 개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여 시장의 주민소환 추진건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오게 된 보이콧 수단 중 하나다.

지난 6월 13일 ‘보금자리주택 과연 서민과 과천의 미래인가’라는 주제로 서민정책토론회를 연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이 자리에서 재건축 사업의 장기 표류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보금자리지구 주택 용적률이 당초 180%에서 220%로 40%포인트 늘어나면 기존 시가지의 기반시설 확대 수요를 낳아 재건축단지 조성에 제약 조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애초에 과천에는 지식정보타운이 조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갑작스레 정책 방향을 전환하며 보금자리지구 조성에 초점을 맞춰 당초 지식정보타운을 통한 자족성 확보 기능은 약해질 전망이다.

비대위는 9600가구면 3만~4만명의 인구가 유입될 텐데 그에 대한 마땅한 대안도 없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그곳에 대단지 주택이 들어서면 예상되는 인구 유입에 따른 도로나 상하수도관 설비 등 도시 계획도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이후 야기될 자연경관의 훼손 가능성에 대한 고려도 충분치 않다는 것. 따라서 과천시의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이 세워져야 보금자리주택 도입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펼치고 있다.

정부천사 이전 계획 발표 이후 과천의 집값은 이미 한 차례 떨어졌다. 이에 대한 보상 없이 또 한 차례 보금자리 정책을 발표하니 과천 지역 경제에 대한 주민의 우려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안양권 통합 문제도 제기되고 있어 지역 주민은 설상가상의 처지에 놓였다. 과천시가 안양권으로 통합되면 정부청사와 함께 과천시의 지역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경마장의 세수마저 뺏기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과천시 전경(왼쪽)과 과천 주공2단지 아파트의 노후한 실태(오른쪽).


주먹구구 세입자대책에도 분노

한편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의왕·과천)은 지난 6월 초 ‘과천시 세입자의 주거안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어 과천시의 높은 세입자 비율을 해결할 대안 마련의 필요성을 논의했다. 이 날 공청회에서 90%에 가까운 그린벨트를 이용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 시장도 이 날 공청회에 참가해 보금자리주택에 대해 “일부에서 공급과잉과 재건축과 겹쳐 기존주택 가격 하락을 우려하고 있지만 추진 시기가 다르고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우려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보금자리주택이 세입자를 위한 정책임을 강조했다. 당초 보금자리주택에는 영구임대, 30년 국민임대, 20년 장기전세, 10년과 5년 분납형 임대 등 다양한 임대주택과 일반분양이 있을 것으로 소개됐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사정은 달랐다.

전체 세입자의 2.8%에 해당하는 485가구만이 국민임대주택 입주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난 까닭에서다. 10년 임대, 분납형, 전세형 등 공공임대주택을 모두 더해도 입주가 가능한 과천 세입자는 7%인 1142가구에 불과하다.

과천 보금자리주택에 들어설 국민임대주택은 전체의 17.2%인 1615가구로, 이 중 30% 가량인 485가구만 과천시민에게 혜택을 준다. 여기에 10년 임대, 전세형, 분납형을 뺀 일반 순수 분양주택 비율은 모두 60%다.

이처럼 보금자리주택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보금자리주택은 ‘반값 아파트’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만 부추겼다가 이제는 로또 아파트라는 별칭을 얻었다. 가뜩이나 분양 물량도 많은데, 이 주택이 주변 시세의 80~85% 가격에 공급되면 여전히 돈 없는 세입자들은 분양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는 과천시 보금자리주택 문제와 관련해 보금자리 주택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보금자리주택이 진짜 서민들을 위한 대안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주변 시세보다 일부 저렴하다고 해도 서민들은 여전히 분양가를 마련할 수 없다. 만약 이들이 대출을 끼고 보금자리주택을 분양받는다면 하우스 푸어가 양산되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보금자리주택은 또 하나의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벌써부터 대기 수요를 양산해 오히려 세입자 난을 부채질하는 꼴이 되기도 한다. 주변 시세보다 싼 값에 주택이 공급되기를 기다리는 실수요자들이 집 살 시기를 기다리며 세 들어 사는 까닭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기곰 칼럼니스트는 과천 시민의 보금자리주택에 대한 반발 기류가 자칫 잘못하면 지역 이기주의로 비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론 보금자리주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은 논의돼야 마땅하다는 것. 그러나 과천 시민이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서는데 따른 환경 파괴와 교통난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 근거가 역으로 재건축 추진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백가혜 기자 lita@er.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