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틀리에서 포즈를 취한 권의철(權義鐵) 화백. 작품명제가 비교적 구체적이라는 그는 “이를테면 ‘History-1114’에서 ‘1114’는 2011년도 14번째 그림이라는 의미”라며 “자신의 모든 작품에 이러한 캡션을 붙였다”라고 말했다.

 

“삶과 죽음의 순환이라는 본질의 물음에서 바라보면 비문과 생명성은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형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나는 그것을 회화적으로 전하고 싶었다.” 혹한의 날씨였다. 서울 영등포역 후문 인근, 권의철(Kwon Eui Chul) 화백의 아틀리에서 그를 만났다.

“대개 비문(碑文)은 죽은 자의 기록이지만 동시에 산자의 글이다. 한 영혼이 이승을 떠나지만 비석의 글은 그날로부터 시작된다. 비와 바람에 풍화(風化) 되지만 담겨진 본바탕은 내밀한 삶의 지혜가 스며있음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History-0912, 162.0×130.3㎝, Mixed Media, 2009

 

◇한지, 기다림의 미학

화백은 순하면서도 굳센 한국적 재료인 한지를 첫 개인전에서부터 선택했다. 요즈음은 여러 겹을 캔버스에 붙이거나 어떤 상(像)을 만들어 나이프로 오려 내거나 다시 그 위에 한지를 붙여 이미지를 새겨 마티에르를 만든다. 그렇게 원하는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반복을 거듭하여 특유의 한국적 색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지를 겹겹 중첩해서 붙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종이가 마르는 것이다. 말라야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잘 마르지 않는다는 것인데 자연 상태의 건조를 중시하는 그에게는 기다림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 History-1412, 162.0×72.5㎝, 2014

 

이 과정에서 종이가 어떤 색으로 우러나는지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는 것도 포인트다. 반면 너무 말라버리면 칼끝이 부러질 정도의 강도를 드러낸다. 작업타이밍을 놓치면 헛수고로 돌아가기 때문에 상당한 집중을 요구한다.

“아침 6시쯤 일어나 한지 붙이기 작업을 해놓고 외출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렇게 하여 2~3일 지나서 마르면 그때 작업을 하는데 어떤 경우는 표면만 마르고 속은 마르지 않아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문에 나는 다작(多作) 작가가 아니다. 시간과 노동이 많이 요구된다는 것을 남들은 잘 모른다.”

 

▲ History-1407, 162.0×130.3㎝, 2014

 

◇無我 그 형상화의 정신

화백에게 1974년은 의미 있는 해다. 첫 개인전을 가졌고 그해 제23회 국전에 입선했다. 당시 작품명제가 ‘역사의 장(章)’이었다.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외길로 ‘히스토리(History)’연작을 발표해왔으니 40년이 넘었다. 학장시절 얘기를 슬쩍 꺼냈다. “홍익대 동양화과 64학번이다. 학생시절 고(故) 천경자 화백이 학과장이었는데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라며 잠시 지나온 시간을 회상하듯 창밖을 내다봤다.

비석이나 비문 등을 볼 때 예전엔 지금처럼 핸드폰이 없어서 촬영도 못하고 눈으로 익히거나 작은 스케치북에 이미지를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나의 모든 작품은 돌에 새겨진 비석이나 문양들을 회화작업으로 재현한 것이다. 나무나 다른 재료에 새겨진 이미지들은 한 적이 없고 오직 돌(石)에 있는 것들만 그렸다”라고 밝혔다.

 

▲ History-1504, 53.0×53.0㎝, 2015

 

“나의 작업은 말하자면 어느 한 사람의 일생과 시와 노래 그리고 자연에 대한 기록 등의 흔적을 작업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종이를 붙이고 마르면 또 붙여 오려내고 새기고 하는 작업은 오감의 기운이 일체가 되는 몰입의 무아(無我)에서 이뤄지는 산물”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단색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단색화(Dansaekhwa) 그림을 해야지 하고 작업한 것은 아니다. 40여년을 암각화나 비석 같은 소재를 회화적으로 재현해 왔기 때문에 회색, 검정, 흰색 등이 주조빛깔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