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경쟁력만 믿고 플랫폼 경쟁력을 놓치는 상황에서 전반적인 미래성장동력이 떨어지고 있는 지상파와, 콘텐츠 경쟁력이 미비하며 지역 미디어 공공성을 내버린 상황에서 플랫폼을 보유하고 IPTV에 유료방송 패권을 빼앗기고 있는 케이블이 끝장승부를 거듭하고 있다.

사생결단(死生決斷)

지상파 방송사가 지난 1일부터 케이블에 대한 신규 VOD 공급을 중단하자 케이블 업계는 12일부터 지상파 광고 송출 중단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MBC를 시작으로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까지 열어둔 상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부랴부랴 중재에 들어갔으나 이미 양측의 갈등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이다. 이에 앞서 지상파가 지난 1월 VOD 공급을 중단하자 케이블이 지상파 광고 중단을 의결했고, 실제 광고 중단 몇 시간전 방통위의 중재로 최악의 상황을 면한 바 있다.

지상파 VOD 논란은 큰 틀에서 지상파와 유료방송의 CPS 전쟁의 전초전이다. CPS는 유료방송 사업자가 지상파 콘텐츠를 받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비용이며, 통상적으로 280원에 맞춰져있다. 하지만 지상파는 CPS 가격을 최대 400원까지 올려야 한다는 방침이고, 유료방송은 이에 불복하며 오히려 내려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법적으로 정해진 가이드 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위성방송 출현 당시부터 시작된 사업자간 협상의 부작용이다.

일단 CPS 논쟁에 있어 유료방송에서 IPTV는 살짝 비껴간 분위기다. 그러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케이블 업계는 CPS 전반에 대한 협상에 있어 지상파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쌓인 양측은 CPS 인상에 대한 이견차이로 지난 브라질 월드컵 당시 TV 블랙아웃이라는 최악의 사고를 내기도 했다.

이번 VOD 협상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상파가 VOD에도 CPS 정산 방식을 고집한 상황에서 지난 1월 일정정도 해결국면으로 접어들었으나 ‘VOD 문제에서 밀리면 추후 CPS 협상에서 밀린다’는 의식이 양측에 팽팽하기 때문이다. 일단 방통위는 설 연휴 전까지 관련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지만 현 상황은 시계제로다.

지상파와 유료방송 갈등, 도대체 왜?

지상파 CPS 논란과 더불어 VOD 정산방식에 대한 갈등이 불거지자 지상파와 유료방송의 오래된 분쟁도 새삼 조명받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맹과 배신을 거듭하는 한 편의 치정극과 닮았다.

지상파는 공공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국민의 시청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준조세 성격인 수신료(KBS 수신료라는 말은 잘못된 것. 수신료에는 의무재송신 대상인 EBS의 몫도 있음)를 받는 이유다. 하지만 잊어버릴 만 하면 표출되는 수신료 인상에 대부분의 국민이 반대하는 이유는 보도적 측면에서 포착되는 지상파의 공정성 문제와, 낮은 직접수신율 때문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지상파 미디어 플랫폼의 존재 가치를 되묻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이견의 여지는 있으나 지상파 직수율은 약 5%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담이지만 수신료 인상을 주장하기보다 KBS가 거의 대부분의 수신료를 가져가는 현재의 구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 대목에서 유료방송 중 처음으로 등장한 케이블은 지상파의 보완재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지상파 난시청 해소를 위한 중계유선방송이 도입된 이후 1991년 종합유선방송법으로 본격적인 케이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케이블의 목적은 지상파가 닿지 않는 지역에 시청권을 보장하고,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지역의 공공성’을 지키는 일에 있다. 여기까지는 지상파와 케이블이 일종의 공생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IPTV와 위성방송 등 미디어 경쟁이 치열해지며 지상파와 케이블의 공생은 파국에 이르렀다. 지상파가 직수율 제고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상태에서 편하게 콘텐츠를 전송하며 CPS로 수익을 올리고, 케이블은 플랫폼적 역할에 충실하며 지상파 광고를 보장하며 가입료를 받아왔지만, 시장에 ‘경쟁’이라는 단서가 붙자 돌변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전투가 치열해졌고, 지상파와 유료방송의 대립도 격렬해졌다.

여기에 정부가 시청권 보장과 미디어 산업 키우기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며 엇박자가 발생하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2010년대에 들어와 양측의 갈등은 치열해졌다. 2011년 4월 MBC가 위성방송 수도권 HD 방송을 중단하고 SBS도 이 대열에 합류해 대대적인 TV 블랙아웃 현상이 발생했다. 같은해 11월에는 케이블에 대한 지상파 3사의 방송 송출 중단사태가 벌어졌으며 2014년 6월에는 브라질 월드컵을 압두고 지상파가 별도의 콘텐츠 대가를 요구해 또 TV 블랙아웃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법적인 소송도 이어져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핵심은 콘텐츠 대가 산정, 즉 CPS 논쟁이다. 지상파는 CPS를 올려 콘텐츠 가격을 더 높게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유료방송은 절대불가 원칙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TV 블랙아웃이 발생하며 유료방송에 가입한 시청자만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반복된 셈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유료방송 내부의 사정이다. 최초 유료방송 업계는 케이블과 IPTV, 위성방송(KT 계열)이 똘똘 뭉쳐 지상파에 대항했으나 최근의 분위기는 다소 변했다. IPTV는 모회사인 통신사와 지상파의 주파수 할당과 달리 미디어 플랫폼 측면에서는 지상파와의 대립에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반면, 케이블은 유료방송협회를 중심으로 여전히 강공모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접시없는 위성방송인 DCS에 있어 케이블이 반발하는 현상도 감지되었으며 케이블은 IPTV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의무재송신 화두 ‘솔솔’

지상파와 유료방송, 정확하게는 지상파와 케이블의 CPS 논쟁이 VOD까지 번지며 양측의 갈등이 심해지자, 최근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지상파 의무재송신 현안이 불거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상파 의무재송신은 유료방송이 공적인 측면에서 반드시 재송신을 해야하는 지상파 채널을 말하며, 원래 KBS와 EBS였으나 지금은 KBS1과 EBS만 포함된다.

일부 언론과 케이블은 지상파 의무재송신 채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무재송신은 말 그대로 ‘국민들이 당연히 시청해야 하는’ 채널이기 때문에 CPS를 제공할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 주장하는 이들은 CPS를 낼 필요가 없는 지상파 채널을 늘려 궁극적으로 논란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지상파 입장에서는 펄쩍 뛸 일이다. 공적인 미디어 역할을 수행하는 입장에서 KBS1과 EBS를 의무재송신 채널에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도 MBC와 SBS까지 의무재송신 대상에 넣자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수익성에 있어 사형선고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MBC와 SBS는 방송사의 성격 상 의무재송신 채널에 포함시키기에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에 입하는 유료방송 업계의 이중잣대에 쏟아지는 비판도 있다. 현재 ENS에서 실시하고 있는 지상파 MMS는 직접수신가구를 대상으로 EBS-2 등의 방식으로 채널을 늘려주는 기술이다. 여기에 유료방송은 지상파 MMS를 KBS, MBC, SBS 등에 확대적용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발해 왔다. 채널이 많아지면 지상파의 시장 장악력이 커진다는 우려지만, 여기에서 종합편성채널등을 가진 일부 신문 사업자의 반발에 숨어있는 행간을 짚어낼 필요가 있다. 결국 정해져있는 TV 광고 수익이 지상파 채널로 쏠리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유료방송이 미디어 시장의 독과점, 지상파의 지나친 쏠림현상을 우려한다는 이유로 의무재송신 채널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지상파 MMS에 반대한다면 의무재송신 확대에도 반발해야 한다. 의무재송신이 확대되면 기존 KBS와 EBS를 넘어 KBS2와 MBC, SBS가 시청자와 만나는 접점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료방송은 이러한 이유로 의무재송신 확대를 반대한 역사도 있다. 그런데 현재에 이르러 CPS 논쟁이 격화되자 의무재송신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다.

케이블이 지상파를 압박하는 전술 중 하나인 ‘광고’가 지상파와 시청자의 접점이 많아질수록 지상파의 위력을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고려하면, 케이블의 광고 차단 전술도 미묘하다는 말도 나온다.

결론적으로 지상파와 케이블의 전투는 점점 줄어드는 ‘파이’를 선점하기 위한 전투의 일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치열한 여론전을 뚫고 누가 승리의 깃발을 차지할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