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저성장, 불경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는 회사가 있다. 그 주인공은 폴크스바겐이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남구에 소재하는 수입차 전시장은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작년 9월 폴크스바겐이 디젤 차량의 배기가스를 조작했다는 전 세계적 파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시 폴크스바겐이 디젤차 모델의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져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폴크스바겐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배기가스가 적은 친환경 자동차’라고 속인 것이다. 이에 전 세계 소비자들의 대응은 단호했다. 특히 미국은 배출가스 조작 사실이 밝혀지기 전 작년 8월에 8,688대의 판매실적을 보이다가 배출가스 조작 사실이 밝혀지자 작년 10월에 1,879대로 뚝 떨어졌고 급기야 12월에는 단 76대만 팔렸다. 영국은 –20%, 일본은 –32%의 급감한 판매실적을 보였다.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장치 조작 사건이 불거지기 직전인 지난해 10월에 판매실적이 9% 반짝 감소했지만 한 달 뒤인 11월에는 7,585대가 팔리면서 배 이상의 판매실적을 보였다. 2014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59% 늘어난 수치다. 이에 폴크스바겐은 100조원 이상의 소송비용을 감당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단행했다. 일부 현금 구매고객에게는 1000만~1700만원 정도를 할인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할인공세는 우리나라만 시행한 게 아니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걸까? 물론 “내돈주고 내가 사겠다는데” 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윤리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자동차를 산다는 건 최소한의 도덕심과 사회적 기준을 보고 구매해야 되는 건 아닌가. 일반적으로 재화의 화폐가치가 내려가면 인간은 경제적인 기준을 적용한다. 이 경우 마음으로 비난하지만 조용히 경제적 가치를 누린다. 반면 화폐가치가 올라가는 경우 인간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바뀐다. 공급사를 비난하고 불매운동까지 벌인다.

문제는 구매자의 욕구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폴크스바겐 자동차의 기이한 판매실적에 폴크스바겐은 어떻게 나오겠는가? 폴크스바겐은 한국 고객에게는 리콜 계획조차 밝히지 않았다가 최근 환경부로부터 형사 고발까지 당하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유일하게 불티나게 팔리는데 굳이 리콜이나 보상, 시정조치를 서두를 이유가 있겠는가? 이처럼 부정은 더 큰 부정을, 개인의 이기주의는 국가의 이기주의를 낳는다.

요즘 떠오르는 신조어 ‘있어빌리티’가 있다. ‘있어 보임’과 ‘능력’을 뜻하는 영어 단어 ‘어빌리티(ability)’를 결합한 것으로 있어 보이도록 하는 능력을 말한다. 좀 부정적으로 해석하자면 개인의 치부를 감추고, 좋은 것만 보여주려는 편집된 허세를 말하기도 한다. 즉,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현실에서의 자기 자신보다 더 있어 보이기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있어빌리티’는 일종의 화장술이자 포장술인 셈이다.

유달리 남의 눈을 의식하는 한국인의 허세는 남다른 측면이 있다. 어떤 이상적인 사회 규범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벗어나지 않아야 사람대접을 받다보니 한국인은 늘 남과 비교하는 행동 특성이 몸에 밴 것이다. 개인의 희망보다 타인의 평가에 맞춰 대학은 서울로, 직장은 대기업, 결혼은 조건을 따지는 것 등이 그것이다. 친구가 명품백을 들었으니 카드 할부로라도 구입해야 직성이 풀리고, 고가 패딩이 유행하니 따라 입어야 같은 부류에 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 우리 주변엔 의외로 많다. ‘나의 본모습’보다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하는 자신의 이미지에 더 집착하기 때문이다. 윤리적 문제를 뒤로하고 폭스바겐 자동차를 사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어쩌면 ‘있어빌리티’야말로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르겠다. 과시적 소비나 행동이 이처럼 빈번하게 관찰되는 이유는 성공적으로 인식되었을 때 손에 얻게 되는 결과물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명성이다. 명성은 타인의 눈에 비친 평판이나 가치 평가,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비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염두에 둔다. 타인의 생각은 한 사회 내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지위와 그에 대한 평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기시미 이치로의 책 <미움받을 용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정말로 자신 있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아. 열등감이 심하니까 자랑하는 걸세.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일부러 과시하려고 하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위에 누구 한사람 ‘이런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봐 겁이 나거든”

참고로 필자는 현대자동차를 탄다. 그래도 폼난다.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