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내려가는 차들이 설설 기는 설날이다. 천천히 가도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남다르다. 운전하는 남편도 피곤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도 피곤한 민족대명절이지만 가족을 만난다는 설렘이 있다. 학원 수업에 쫒기며 할머니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아이들도 그날만큼은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얼굴을 뵈며 꼬옥 안아드릴 수 있는 날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세배 올리며 목돈 두둑이 챙길 수 있는 횡재의 날이기도 하다.

명절은 모두가 기뻐야 하는 날이지만 우리는 한때 그러지 못했다. 남자들은 먹고 쉬는 날이며 온 집안의 며느리들은 피로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쌓였다. 그러나 최근 가족을 서로 배려하며 형식을 조금씩 줄이는 집안이 늘어나면서 명절의 스타일도 달라지고 있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주문을 해서 음식을 챙기기도 한다. 이렇게 명절도 시대가 바뀌면 스타일이 바뀐다. 제사상을 받는 조상님들도 이제 시대 상황에 맞춰 적응을 하셔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필자는 한때 설날의 설을 눈(雪)으로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 설날에 유독 눈이 많았던 기억 때문이다. 그리고 설날에 먹는 떡국은 또 눈처럼 얼마나 하얗던가. 설날이라는 이름에는 세 가지의 뜻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낯설다는 뜻인데 이는 새로운 날을 맞이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두 번째는 ‘선다’라는 뜻인데 이는 새로운 각오, 희망을 세운다는 의미이다. 세 번째는 옛말 ‘섧다’에서 나온 말로 ‘삼가다’,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날에는 다들 떡국을 먹는다. 떡국은 백의민족인 우리 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식이다. 배고픔을 숙명처럼 알고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떡국에 한과 염원을 담았다. 최근 건강이 강조되면서 삼백식품(흰쌀, 설탕, 밀가루)을 피하라고 하고 있지만 칼로리와 당지수에 대한 걱정을 이날 하루쯤은 버려도 되지 않을까? 떡국은 흰색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과도 궁합이 잘 맞으며, 눈처럼 하얀 떡의 색깔은 지난해 안 좋았던 일을 깨끗하게 잊고 새롭게 새해를 시작하자는 좋은 뜻을 담고 있다. 방앗간에서 김 모락모락 피어 올리며 뽑아내는 가래떡은 아프지 않고 오래, 길게 살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고, 엽전처럼 둥글게 썬 떡국 모양은 올해 부자가 되고 싶다는 희망이라고 한다.

떡국의 유래는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 상고시대의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 음식에서 시작되었다고 나온다. 또 <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에 따르면 떡국은 정조차례와 세찬에 없으면 안 될 음식으로 설날 아침에 반드시 먹었으며, 손님이 오면 꼭 대접했다고 한다. 떡국의 국물은 꿩고기로 만들었는데 서민들은 이렇게 고급스러운 국물을 낼 수가 없어 닭고기로 대신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되었는데 요즘은 꿩고기, 닭고기보다 더 편하게 사용하는 소고기나 멸치로 단백질 국물을 내는 떡국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떡국은 지역별로 모양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 쌀떡에 달걀 고명, 김이 들어간 떡국만을 먹었던 우리들은 고향마다 조금은 생소한 떡국을 만나게 된다. 경기도 개성은 조랭이 떡국을 먹고 강원도는 만두떡국, 충청북도는 미역생떡국과 다슬기생떡국을 먹는다. 꿩고기의 흔적이 남아있는 지방은 전라남도다. 꿩떡국은 꿩고기가 들어간 떡국으로 원조 떡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의학에서는 꿩고기가 약간 찬 성질에 시큼한 맛으로 인체에 기혈의 순환을 도와주고 근육을 튼튼하게 한다고 한다. 굴떡국은 1년 중에 굴이 가장 맛있을 때가 1월이라 경상도에서는 굴떡국을 만들어 먹곤 했다. 떡국 오디션을 보면 그 경쟁도 치열할 것이다. 각 지역마다 영양과 의미가 담긴 맛있는 떡국이 만만치 않은 기세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설날, 새로운 희망을 세우는 특별한 날엔 그 의미를 새기며 한 끼의 떡국을 먹자. 떡국 한 그릇에는 건강과 풍요의 희망이 다 담겨 있다. 입속에 넘어가는 매끄러운 떡의 느낌은 앞으로 모든 일들이 술술 잘 풀릴 것 같은 예감마저 들게 한다. 한국인들의 새해 복은 어쩌면 떡국으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