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mory Bank, 116.8×80㎝ oil on canvas, 2015

 

풍어제(豊漁祭) 깃발이 펄럭일 때 물안개가 너울거리며 뭍으로 넘어왔다. 하얀 무명치마폭이 생사에 헌신하는 마음을 감싸 안았다. 그때 치우침 없다는 것이 신망의 덕목으로 꼽히듯 동질색감들이 나눔으로써 전체를 이루어가듯 향토성이 무덤덤하게 한결같은 표정으로 점점 드러나 보이기 시작했다.

의식은 끝났다. 축복을 내리듯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세상의 색감과 일치하는 리듬을 탈 수 있게 된다는 것, 자기만의 관찰력이 생겼다는 것. 그때 부옇게 밀려오던 안개 걷힌 언덕에 천연하게 서서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며 재회하는 자아가, 보였다.

 

▲ Brown Flowers, 90.0×72.7㎝

 

집단에 수렴하는 조화

보드라운 한줌 흙이다. 대지에서 꽃이 피어나는 경이로움은 가슴속 가능성을 아로새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누군가 나직하게 얘기했다. 아이가 아장아장 땅을 딛고 일어서서 자라고 찬란한 청춘의 빛깔을 뽐내며 생의 자취를 갈무리하듯, 일생의 기억과 그 너머 광대무변(廣大無邊) 의식의 확장을 맞이해 주는 품이라고도 했다.

흙은 길을 열어주고 또한 그래야만 길이 되는 생명의 본바탕이라는 이름으로 선사했다. 그것은 마침내 세상의 오염을 걸러내는 따스한 질서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지기(地氣) 바로 그곳서 뿜어내는 기운, 황토(黃土)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작업을 하다보면 선배 화가들의 단색화(Dansaekhwa) 작업리듬을 깊게 이해하게 되고 나또한 그 물결에 같이 흘러가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느낀다. 희망을 놓치지 않고 끈을 끝까지 쥐고 계셨던 분들의 지난한 싸움을.”

 

▲ Antique Red Brick, 72.7×60.6㎝

 

자신을 비워서 채워가는 리듬성에서 나오는 균형 잡힌 색깔은 오로지 반복적 행위의 끈질긴 인내의 산물이다. 동시에 그것은 한민족 속성을 빼닮은 것으로 발동이 걸리면 신명나게 되어있다. 그 안에서 색깔과 작업구상이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되는 의식의 광장이 열려지면 그 다음부턴 사람사이 묘미가 발휘되는 것이 우리 인간사 이치가 아니었던가.

“집단의 의사 속에 개인의 의사를 수렴시켜 집단의 일원으로서 조화를 모색, 공존할 때 정이 생긴다. 비록 나 개인의 의사와는 상반되지만 상대방의 이치나 처지를 이해하고 나의 의사를 후퇴시키는 그런 집단주의에서 정이라는 정신적 균이 길러진다. (중략)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판단되더라도 내가 잘못했다고 말함으로써 개아를 집아(集我)속에 소멸시킬수록 정이가고 정이 붙는 이치가 이에 있는 것이다.”<한국인의 의식구조, 이규태 지음, (주)신원문화사>

▲ March in Ochre, 116.8×72.7㎝ oil on canvas, 2014

 

고독과 감격 또 짧은 답

눈보라가 볼을 스친다. 짜릿짜릿 전해오는 차가운 전율 속에 꽃잎이 날리듯 환상적 풍경이 자꾸만 밀려온다. 그대는 누구인가? 오오, ‘같은 공간 공유하는 고마움’이라는 작은 팻말이 눈발 속에 흐릿하게 보였다.

그리고 두터운 외투로 얼굴을 감싼 중년사내가 그 앞을 지나가며 혼자 중얼거렸다. 매우 단순하지만 그것이 답(答)이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 나가는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해서’ 신중하게하고 반성하게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著, 동녘>

 

△글=권동철, 인사이트코리아(Insight Korea) 2016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