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 소식에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환율, 산업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이 주를 이룬다. 일본 경제를 보면 사실 마이너스 금리 도입은 단순 환율, 산업적 문제보다 일본의 존폐 자체에 더욱 시선이 모아진다.

물론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온 일본이지만 이는 '과거' 일뿐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만큼 일본의 현 경제상황은 단순 '위기'라는 단어로 감싸기에는 곪아터질 형국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2014년 4월 재정확충을 위해 소비세율을 인상(5%→8%)했으나 이후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진 것으로 확인되자 같은해 10월로 예정됐던 소비세율 추가 인상(8%→10%)을 18개월 미루기로 결정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작년 9월,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하면서 “일본 정부의 경제회복 전략이 현 상태를 향후 2~3년 안에 회복세로 돌리기 힘들 것으로 본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일명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일본의 경기부양책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CED)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말 기준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45%로 OCED 가입국 중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탈리아(132%), 미국(123%), 캐나다(107%) 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국채와 차입금, 정부 단기증권을 더한 일본의 국가채무는 지난해 9월말 기준 1054조4243억엔으로 지속상승하고 있다.

▲ 일본이 보유한 순 해외자산 추이(단위: 억엔)/출처:일본 재무성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은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순 해외자산이다. 지난 2014년 말 기준 일본 정부와 기업, 개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순 해외자산은 366조8560억엔으로 일본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 가지고 있는 순 해외자산을 매각한다면 일본의 재정상태가 현재대비 월등히 좋아질 수 있는 규모다.

그러나 지난해 10월말 기준 일본은 미국채 1조1150억 달러(일본 순 해외자산의 30% 상회)를 보유하고 있어 중국의 미국채 보유량(1조2550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달러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 일본 국가 채무 추이(단위: 억엔)/출처:일본 재무성

달러함정이란 달러자산을 매각할 경우 보유자산의 가치도 하락하는 딜레마를 말한다. 즉, 일본이 미국채 매각시 이를 받아줄 수 있는 주체가 있다면 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채 가격은 폭락하고 그만큼 일본은 미국채 매도에 따른 엄청난 손해를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일본은 미국채를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미·일 ‘암묵적 동맹’이 낳은 결과...‘사면초가’

여기서 2014년으로 돌아가보면 당해 10월 30일 미국은 양적완화를 종료했고 그 다음날인 31일에 일본이 양적완화를 발표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때, 미국은 일본의 정책결정에 대해 ‘침묵’했다. 그 배경에는 미·일간 ‘암묵적 동맹’에 있다.

일본은 지난 2013년 TPP에 가입했다. 시기적으로 이와 이해관계가 맞물려 등장한 것이 ‘아베노믹스’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TPP 가입 이전부터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 경제권에서 일본이 주도적 역할을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코노믹리뷰>는 2014년 9월 23일 ‘한·캐나다 FTA, TPP에 어떤 영향 미칠까’ 기사를 통해 미국과 일본의 TPP를 통한 경제동맹을 조명했다.

일본의 TPP참여가 거론되기 시작한 지난 2012년부터 미국은 ‘아베노믹스’에 대해 유화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후 미국 의회가 ‘아베노믹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지만 이는 형식적일 뿐이었다.

아베는 미국이 공을 들여온 TPP에 힘을 실어주고 미국은 일본의 양적완화를 인정해준 셈이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의 아시아중시 정책과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과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미·일 공조는 세계 경제성장 둔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도 포함돼 있었다.

이에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한 신흥국들의 고성장이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TPP의 먹잇감 될 것이란 의견이 대세를 이룰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 비춰 미국과 일본의 경제 진행 상황을 보자. 미국은 ‘아베노믹스’가 엔화약세를 유도해 달러가 강세 기조를 이루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는 분명 세계 3위의 경제대국과 공조가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은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이 달러강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본을 TPP에 가입시켰다.

중요한 것은 지난해 2월말 기준 일본의 미국채 보유량(현재는 2위)은 1조2244억달러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을 중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미국이 달러강세를 용인하면서 일본에게 TPP가입 외에 다른 것을 요구했다면 그것은 미국채 매입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미국은 2013년 12월 양적완화축소(테이퍼링) 결정을 하면서 테이퍼링이 종료됐을 때 찾아올 수 있는 ‘국채가격 폭락’에 대한 대비를 한 것일까. 공교롭게도 2014년 10월은 국제유가가 급락한 시가다. 테이퍼링 중단으로 힘없이 내려앉을 것으로 예상됐던 미국채 가격이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우려가 발생하면서 저금리시대, 안전자산 선호 등으로 오히려 상승한 시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미국의 양적완화가 ‘미국채가격 상승’을 목표로 했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카드는 대부분 나온 셈이다.

‘마이너스 금리’가 말하는 일본 경제 위험...그리고 세계

지난해 12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기준금리를 기존 0.00~0.25%에서 0.25~0.5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누군가가 미국채를 매수해줄 것이란 희망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일본이 ‘달러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에 정점을 찍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글로벌 경기부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에 대해 실수였다고 지적한다. 물론 금리는 자본시장은 물론 실물시장에도 점차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국채’의 개념만을 두고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채는 채권투자자에게 세 가지 확신을 줘야 한다. 달러의 기축통화 공고, 장기적 달러가치 급락 방지, 낮은 부도 위험성 등이다. 이 부분만 본다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절대 실수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와 미국의 경제 그리고 양국의 채권도 움직이는 매커니즘이 다르다는 점에서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다시 봐야 한다. 우선 일본은 양적완화를 실시함과 동시에 소비세 인상도 시도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일본 주요 세수입 추이/출처:산업연구원

일본 국채가 부도 위험이 낮다는 인식을 투자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는 이자지급은 물론 돈 떼일 염려도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는 바로 일본이 소비세율 인상을 시도한 이유라 할 수 있다. 일본이 양적완화를 하면서 소비세율을 인상하는 등 상반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의아할 수 있겠지만 이는 가파르게 증가하는 부채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의 연간 예산은 약 100조엔 수준이다. 이중 세수로 유입되는 규모는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즉, 일본은 부족한 예산을 채우기 위해 추가로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일본의 국가채무가 1000조엔에 달하는 상황에서 금리가 1%만 오르더라도 이자는 10조엔으로 급격히 늘어난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는 채권발행주체가 이자를 지급하지 않고 오히려 채권투자자들로부터 이자를 받는 격이다. 그만큼 ‘마이너스 금리’가 말하는 일본의 경제는 단순 위험이 아닌 ‘정말’ 위험하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 소식이 전해지자 국가간 환율, 수출 등의 문제를 거론하는 보고서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그런 차원이 아닌 일본의 경제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인 만큼 위기 발생으로 인한 충격여파는 상당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