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미 언어문화교육개발원 원장.

필자가 방송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명절 또는 가족 행사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 번씩 혹은 지나가는 얘기로 건네지는 요즘 근황을 물은 뒤 ‘앞으로 뭐 할 거냐?’, ‘취업 준비는 잘 되고 있냐?’는 말들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얘기로 고작 한 두 마디 나누었을 뿐인데도 그 가벼운 말들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쳐 한 가지로 모아졌고, 그것은 스트레스가 되어 지독한 불면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반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배려로 위로가 되었던 분이 있었다. 필자가 20대였던 시절, 한 교회의 목사 사모님이던 그분은 필자에게 섣부른 질문을 하기보단 가볍게 웃으며 ‘요즘 변화 없어?’라고 물으셨다. 말이 이어지진 않았지만, 이제 변화가 생길 거야 얼마 안 남았어, 힘내라 이런 말이 들리는 듯 느껴져 감사했다. 그러면서 ‘나도 저분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명절 때가 되면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거의 언어폭력에 가까운 말들이 쏟아지곤 한다. ‘그래 잘 만났다, 너 한번 상처내 보자’라는 목적이 다분한 의도라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나기 때문에 둘 사이에 딱히 오갈 얘기가 없을 때 말을 붙여보고 싶어 건네는 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 ‘그분 같은 어른’만 있다면 명절 때 대화가 늘 즐거울 텐데, 우리 곁에 ‘그분 같은 어른’이 되고 싶지만 실수가 잦은 이들이 더욱 많다.

상대와 대화를 하고 싶다면 기본적으로 상대가 싫어하거나 불편해 하는 부분을 파악하고 이를 피하거나 배려해 주는 매너가 우선 필요하다.

설 명절에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구직자의 경우 ‘앞으로의 취직 계획’을 묻는 것이고, 미혼 직장인은 연애나 결혼, 기혼 직장인에겐 승진에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살이 쪘니?’하고 외모를 거론하는 이야기나 종교와 정치 문제도 피하는 것이 좋다. 차라리 대화 소재를 의미가 없거나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 낫다. 날씨 변화나 일상, 취미에 대한 내용도 좋다.

상대를 걱정하는 듯한 ‘지나친 오지랖’은 오히려 당사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간섭하고 참견하고 다니는 건 윗사람이나 어른으로서의 보기 좋은 행동이 아닐 것이다. ‘다 관심이고 걱정되어서 하는 소리야’라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관여해서 해결해 주거나 도움을 줄 것이 아니라면 되도록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되도록 대화를 시작할 때는 ‘너는~’으로 시작하기보다 ‘나는~’으로 시작해 소재의 중심을 자신으로 하고, 되도록 남의 집 이야기, 남의 아들이나 손자손녀 이야기를 피해야 한다.

행여 듣기 싫은 말을 들었을 때는 ‘뭘 그런 걸 물어보세요’하고 슬쩍 넘어가거나 질문을 던져 다른 사람이나 소재로 화제를 돌리는 것도 피하는 방법이다. 또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진지하게 자문 구하듯 묻거나 구체적인 도움을 요청한다면 관심 있는 척 접근하는 ‘오지라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우연찮은 도움도 받을 수도 있다.

‘취직 준비 잘하고 있니?’라는 질문에 ‘노후준비 되셨나요?’라고 받아치는 정곡 찌르기로 대응할 수도 있으나, 주로 질문의 주체가 어른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되려 버릇없다고 인식될 수도 있으니 앞서 언급한 대응법을 추천한다.

심리학자 에벨린 크로셜은 부정적 감정들이 상처로 확정될 때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 자기신뢰라고 했다. 즉 자신의 신뢰도가 높고 낮음에 따라 어떤 사람은 ‘왜?’라고 강한 반박을 하지만, 또 다른 이는 ‘그래, 내가 그렇지’하고 수긍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모처럼 가족친지들을 만나고 대화할 일이 잦은 명절 전후,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고 중무장하고 스스로를 믿고 다독이며 사랑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는 가장 큰 명절선물이 아닐까?

더불어 말문을 열기 전에, 대화를 하기 전에 항상 입장을 바꿔서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상대도 똑같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