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아시아는 19세기 서양 제국주의 시대부터 이어진 침탈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집단적 의식체계는 온라인 및 모바일, O2O와 빅데이터 시대를 맞이한 21세기에도 절절하게 흐르고 있다. 간혹 국수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하며, 합리적이고 냉정한 상황판단에서 논해지기도 한다. 빛과 그림자를 모두 품고 있는 외국 자본의 공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 출처=위키디피아

그들이 우리의 시장에 오는 이유

현재 글로벌 기업의 국내시장 진출은 매우 익숙해졌다. 텐센트의 행보가 극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텐센트의 국내 진출 현황을 묻는 질문에 “국내 IT 기업에 총 8000억원 이상을 투자했을 것”이라며 “특히 온라인 및 게임 영역에서 상당한 투자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이 지점에서 논의의 초점을 텐센트와 소프트뱅크에 집중하면 어떤 대세적 흐름을 포착할 수 있을까? 먼저 국내 시장을 일종의 테스트베드로 삼아 움직이는 지점이다.

현재 텐센트의 국내 투자 추이를 보면, 2012년 720억원을 투자해 카카오 지분 13.8%를 사들이며 2대 주주로 올라선 것을 시작으로(현재 9.4%) 지난해 넷마블 지분 28%를 5300억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또 네시삼십삼분에 라인과 공동으로 1300억원을 공동으로 투자했으며 파티게임즈 200억원, 카본아이드 100억원 등 전방위적 투자를 단행했다. 벤처캐피탈 캡스톤파트너스를 통해 30여곳의 국내 유망 게임업체에 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간접 투자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는 국내시장을 발판으로 삼아 나름의 실험을 거듭하는 과정을 넘어, 자신들의 중국 및 글로벌 정책에 부합되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카카오의 경우 2대 주주로 위치한 상태에서 카카오의 ICT 경쟁력을 자사의 인프라로 녹여내는 데 상당한 신경을 썼다는 후문이다. 결국 ICT 인프라가 촘촘히 박힌 국내의 사정을 제대로 살핀 결과다. 인터넷전문은행 컨소시엄에 참여한 것도 카카오의 요청이 있었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텐센트 입장에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실험의 기회다. 과거에는 성장을 위해, 지금은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연속적인 행보에 돌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카카오의 로엔 인수 당시 카카오 지분을 가지게 된 어피니티가 텐센트에 0.1% 미치지 못하는 9.3%의 지분율을 확보하게 되는 대목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긍정론과 부정론이 갈리는 상황에서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내를 테스트베드로 삼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도약, 즉 중국시장을 넘어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의 발전과 유입을 기대할 수 있으며, 콘텐츠 산업의 부흥까지 노려볼 수 있다. K팝과 아마존 이커머스 진출 시나리오가 대표적이다. 최근 중국 자본의 전방위적 자금 투입이 이뤄지고 있는 K팝은 현재 기회와 위기의 간극에서 콘텐츠적 성격으로는 나름 기회를 잡았다는 평가다.

중국 자본이라는 플랫폼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알려질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기 때문이다. 아마존 이커머스 진출도 만약 이뤄진다면, 좋은 브랜드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우리의 발판’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최근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테스트베드는 쓰고 버리는 실험실의 모르모트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의 경험과 콘텐츠의 확장을 노릴 수 있는 순간으로도 해석된다.

글로벌 기업들의 세계적인 블록전략의 일환으로 국내 진출을 설명할 수도 있다. 소프트뱅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소프트뱅크가 1조1000억원을 투자한 쿠팡이 대표적이다. 쿠팡은 이미 미국 세쿼이어캐피탈로와 블랙록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은 상태였다. 이른바 날개를 달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이 지점에서 소프트뱅크의 쿠팡 투자를 전략적인 측면에서 살필 필요가 있다. 일단 쿠팡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해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손정의 회장의 후계자인 니케시 아로라 소프트뱅크 부회장은 “쿠팡의 기술력, 고객 서비스, 창의적인 배송 모델 등은 전 세계 전자상거래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며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혁신기업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 텐센트 전략적 파트너십 / 출처:하나금융투자

하지만 숨겨진 행간을 읽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 소프트뱅크에서 원칙적인 투자배경을 밝혔지만 한 발 더 깊숙이 들어가 그 원류를 따져볼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가능성 하나만으로 대규모 투자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소프트뱅크가 보여주는 최근의 행보를 따라갈 필요가 있다. 현재 소프트뱅크는 차세대 먹거리로 인터넷을 지목한 상태다. 통신에 치중한 사업 모델을 버리고 인터넷 인프라 구축에 방점을 찍겠다는 의도는 지난해부터 있어 왔다. 이 지점에서 기존 투자한 알리바바와 스냅딜, 쿠팡을 연결하면 흥미로운 대목이 포착된다. 모두 ICT 기술에 기반을 둔 전자상거래 업체다.

자연스럽게 소프트뱅크 입장에서 인도와 중국, 아시아를 연결하는 전자상거래 인프라를 하나의 라인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서 거점 파트너의 역할로 쿠팡을 점지했다는 뜻이다. 충분히 타당한 시나리오다. 소프트뱅크의 실적 발표와 동시에 터진 인터넷 기업으로의 진출과 맞물리면 가능성이 농후하다. 추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해석된다. 나아가 소프트뱅크를 중심으로 아시아 ICT 블록을 설정할 수 있다.

여기서 더 정교하게 들어가자면 배송이라는 인프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 수준인 스냅딜은 차치해도, 알리바바는 배송 시스템이 그리 강력하지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은 이견의 여지가 있으나 로켓배송이라는 탁월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3개의 지역을 3개의 기업으로 연결하며 쿠팡의 배송 경쟁력을 적절하게 남은 두 개의 기업에 이식하는 방향성도 충분히 고려 가능하다.

▲ 소프트뱅크 그룹의 주요 캐시카우 / 출처:유진투자증권

사실 이러한 전략은 소프트뱅크의 다른 투자에도 쉽게 발견된다. 글로벌 반(反)우버 전선의 중심에 소프트뱅크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정의 회장은 디디콰이디라는 합병법인이 등장하기 전, 알리바바가 투자한 콰이디다처에 5억달러 이상을 투자한 바 있다. 싱가폴의 그랩택시도 소프트뱅크로부터 2억5000만달러의 투자를 받았으며 인도의 올라에도 2억1000만달러를 배팅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마윈의 알리바바를 사실상 키워낸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가 콰이디다처를 통해 디디콰이디에 그 영향력을 뻗치고 있는 상태에서 디디콰이디는 미국의 우버 경쟁자 리프트에 투자를 단행했다. 그리고 리프트는 디디콰이디와 그랩택시, 올라와 시스템 통합이라는 단단한 체계를 완성하고 있으며 이들은 리프트를 제외하고 모두 소프트뱅크 장학생들이다. 말 그대로 우버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손정의라는 접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소프트뱅크 특유의 블록형성 작업이다.

▲ 출처=위키디피아

기대와 우려 사이

텐센트와 소프트뱅크로 대표되는 중국과 일본의 ‘경쟁력’은 다양한 이유로 국내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테스트베드로 삼기 위한 고전적인 방식과 더불어, 내수시장에 대한 약간의 기대감도 섞여 있다. 여기에 중국 및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접근하기도 하며, 이 과정에서 국내 콘텐츠 사업은 나름의 성공 가능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다만 종속성의 문제에서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언급이 자주 포착된다. 텐센트와 국내 게임사들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2008년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텐센트가 넥슨의 ‘던전앤파이터’를 현지에서 성공시키며 연매출 1조원을 기록하며 중국 온라인 게임 차트 순위를 줄 세우기 했을 때 국내 게임사들은 너도나도 텐센트의 품으로 달려갔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보유한 중국을 ‘뚫어줄’ 기대주로 텐센트에 다가섰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하지만 텐센트는 그 순간 ‘초월적인 갑’이 되어버렸다. 총 7단계로 이뤄진 내부 검열단계를 통해 국내 게임사들의 게임을 걸러내는 한편, 이 과정에서 전 세계 7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데브시스터즈의 모바일게임 쿠키런이 텐센트의 ‘간택’을 받지 못하는 사태도 발생하고 말았다. 그 결과 국내 게임업체는 점점 텐센트 종속현상이 심해졌으며, 2016년이 된 지금도 이러한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텐센트는 국내 게임사들을 키워준 동반자에서, 무서운 포식자로 변신하고 있다. 만약 국내 게임업계가 몰락한다면 그 이유 중 텐센트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는 비관론을 펴기도 했다.

텐센트의 국내 인터넷전문은행 진출도 비슷한 이유로 우려를 사고 있다. 현재 텐센트는 중국에서 위뱅크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을 운용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에는 텐센트 홀딩스가 위챗 앱에 개인 대상 대출 서비스를 추가한다는 소식이 알려지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웨이리다이’라고 불리는 이 서비스는 소액 신용대출이라는 뜻으로 보증이나 담보 없이도 20만위안(약 3696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엄청난 실력에 노하우까지 갖춘 텐센트가 안 그래도 1순위로 꼽히는 카카오뱅크 컨소시엄에 합류한 셈이다. 핀테크라는 영역이 근본적이고 민감한 ‘금융의 ICT화’를 정조준한 상태에서 우리의 수준을 뛰어 넘은 텐센트의 출현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경제의 기본 단위는 자본시장적 측면에서 이른바 종속화가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는 이들도 많다. 국내시장은 작고, 텐센트 입장에서 크게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기회비용을 예상’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분위기가 가속화되면 콘텐츠적 측면의 강점을 누린다고 해도, 인력유출이라는 실제적이고 치명적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게임 매체 <게임 룩(Game Look)>에 따르면 중국 게임사 8년차 프로듀서 연봉은 평균 1억원 수준이다. 중견 게임사의 비슷한 경력자 연봉이 4000만원을 넘기지 못하는 상태에서 중국으로의 인력 유출도 심각해지고 있다. 텐센트의 공습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되기도 한다.

공습과 혜택의 사이에서

글로벌 기업의 국내 진출에 있어 발생하는 다양한 담론은 비단 소프트뱅크와 텐센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화웨이와 샤오미, 알리바바를 비롯한 중국 자본의 국내진출에 있어 자주 등장하던 화두이기 때문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중국의 대국굴기와 일본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먼저 중국이다. 최근 막을 내린 CES 2016에서 중국 바람은 대단했다. 3600개의 참가업체 중 무려 33%가 메이드 인 차이나를 들고 나타났다. 화웨이를 중심으로 강렬한 황색돌풍을 보여준 중국은 이제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이제 세계의 중심으로 진격하려는 채비를 마친 분위기다.

이 지점에서 중국의 대국굴기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에 두고 전방위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당장 인수합병의 사이즈가 크다. <차이나데일리>는 1월 13일 시장조사기관 딜로직(Dealogic)을 인용해 중국이 2015년 해외 기업을 인수합병한 규모가 1119억달러(135조8700억원)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규모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증가했으며 평균적으로 19%씩 늘어나는 중이다.

당장 산업의 쌀로 여겨지는 반도체 산업부터 심상치 않다. 중국 정부는 2010년부터 반도체를 ‘7대 전략적 신흥산업’으로 선정해 의욕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D램과 접점이 있지만 미세공정 기술이 덜 요구되는 3D 낸드플래시 기술에 집중하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향한 야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글로벌 가전업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하이얼의 GE 가전 부문 인수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도시바 TV 인프라가 대만의 컴팔과 TCL에 넘어간 부분, 샤프와 도시바가 내놓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사업의 유력한 인수 후보자가 중국기업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하지만 중국의 욕망이 인수합병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와 같은 이른바 ICT 트로이카의 행보가 눈부신 존재감을 보여주며 다양한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한편 인터넷전문은행과 같은 핀테크에도 빠르게 침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대단위 전략을 바탕으로 국내시장에 진출하는 중국의 ‘위세’를 체감해야 한다.

▲ 소프트뱅크 그룹의 주요 투자 포트폴리오 / 출처:유진투자증권

일본도 마찬가지다. 소프트뱅크로 통칭되는 투자의 인프라까지 적절히 배합되며 어려운 시기를 넘겨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샤프와 도시바 등이 줄줄이 어려움에 처하며 위기를 겪고 있지만, 명가재건의 꿈은 상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세계 최초의 드론 전용도시가 탄생한 곳도 일본이다.

이 대목에서 국내시장으로 몰려오는 펭귄제국과 투자의 왕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모두의 고민이 시작되고 표출되는 극적인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