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최근 공장 지역에 폭설이 내려 모든 출입이 마비되고 문제가 커졌던 일이 있었습니다. 보통의 위기 상황에는 대비되어 있는데 이번 것은 십 년 만의 큰 폭설이라 문제였죠. 근데 이렇게 가끔 발생하는 위기에 대해서 항상 대비하고 있는 건 낭비 아닐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상시 준비가 ‘낭비’인지를 판정하려면 먼저 해당 위기로 인해 발생한 ‘유무형 손실 규모’와 그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투여해왔던 ‘상시 투자 규모’가 먼저 규정되어 비교 가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위기관리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대부분 ‘위기 방지 예산’이 위기 발생 후 ‘손실 비용과 개선 및 정상화 비용’을 합한 것보다는 적은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비교에서도 위기 후 ‘손실의 범위’ 그리고 ‘개선 및 정상화 수준’ 등이 먼저 규정되어야 하겠지요. 그럼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옛말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합니다. 이 짧은 격언으로 보아도 평소 외양간을 잘 정비해 놓았었다면 소를 잃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위기 방지 비용은 상당히 적어 보입니다. 사후에는 사전에 투자했어야 했을 외양간 수리 비용은 동일하게 들고, 잃어 보린 소의 값과 다시 외양간에 키워야 할 새 소의 값까지 들게 되니 이만 저만 손해가 아닌 것으로 산정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기업인들에게 하면 ‘그래도 십 년에서 수 십 년에 한 번 발생할까 말까 하는 위기 유형에 대해 상시 대응 준비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낭비’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어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기업인들이 실제 위기관리 체계를 만들어보면 대부분 그 생각이 ‘현실적’이지 않았다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위기관리 체계는 아주 특정한 세부 유형에 맞추어서만 개발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기업이나 조직들이 ‘십 년만의 대폭설’에만 대응 가능한 특별한 위기관리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대신 ‘(자사 주요 공장 주변의 환경 악화로) 공장이 정상적 기능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대비한 위기관리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건 폭설을 포함 홍수, 가뭄, 한파, 화재, 지진, 지역 폭동, 테러 등의 세부 위기 유형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공장은 그러한 비정상적 환경과 그와 관련된 이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평소에 키우는 것뿐입니다. 만약 그러한 이상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공장이 갖추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는가 평소에 돌아보는 것이죠. 통신, 전기, 용수 공급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직원들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설비, 자재와 여러 자산들은 어떻게? 거래처들과의 문제는 어떻게? 대체 생산은 어떻게? 현장은 어떻게 대응 관리해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여러 대비책들이 수립되고 매뉴얼이 구성되고 가상훈련이 평소 실행되고 하는 것이죠.

꼭 ‘수십 년만의 폭설에는 어떻게 대응할까?’ 같이 주제를 협소하게 잡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수십 년만의 폭설이 온 상황이라 해도 공장의 통신, 전기, 용수가 쉽게 소실되고 그 정상화 방법이 모호하다거나, 직원들이 대부분 보호받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설비와 자재 자산들이 어이없이 소실되어 버렸고, 거래처들이 대체 생산 가능성이 없음에 실망하고 떠나버리며, 현장관리조차 엉망인 경우들이 생겼다면 이는 기본적 위기관리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표입니다. ‘십 년 만의 폭설’이 문제라기보다 ‘기본적 위기관리 체계가 부실’한 것이 문제인 것이죠.

물론 예상보다 크고 생소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인력과 자산과 역량들이 투입되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일부 대응 체계가 제 역할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이 위기니까 그에 대한 이해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주 기초적이고 중요한 체계가 대부분 제 역할을 못했다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불가항력적’ 위기였기 때문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평소 투자가 낭비라는 말도 하기 힘들어지는 것이죠. 아무리 큰 위기라고 해도 진행되어야 할 기본 대응은 차근히 진행되는 것이 진짜 위기대응 체계입니다. 처음부터 완전하게 불가항력인 위기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