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말, 삼성과 한화그룹이 삼성의 석유화학·방위산업 부문 4개 계열사의 매각·인수를 통해 ‘빅딜’을 단행했다. 이후 업계 내에서는 한화그룹이 엄청난 손해를 보는 거래를 했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올 법하다. 사업적으로만 보면 삼성은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신성장 동력에 집중, 불필요한 사업 부문을 매각하는 반면, 한화는 기존에 영위하고 있던 방산업 확대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는 화학을 떠안았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한화그룹 입장에서 보면 ‘빅딜’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개편해 수익성 침체를 벗어나는 발판을 마련하는 셈이었다. 석유화학사업에서는 기초유분부터 다운스트림까지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강함으로써 경영 효율성과 산업 내 위험 분산 효과를 갖추게 됐으며, 안정적인 방산부문의 확대로 그룹 변동성 완화에도 일조한 것이다.

물론 1조9000억원에 달하는 인수대금과 석유화학사업 비중이 과중해 사업 변동성이 확대된 것은 부담 요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장의 우려는 화학 분야 즉, 한화케미칼로 집중됐다.

지난 2014년 하반기 시작된 국제유가 폭락은 화학산업에 대한 우려의 근원지였다.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던 유가는 급격히 하락해 같은 해 말 50달러대로 내려앉았다. 이후 저유가는 소비력 증대로 이어지고 소비는 궁극적으로 원자재, 그중에서도 원유의 수요를 증대시켜 유가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지만 2016년 1월 현재 유가는 20달러대로 폭락했다.

국제유가 추이와 단순 ‘정제마진’에 따른 ‘직관적 판단’을 한다면 국내 화학업종은 이미 고사위기에 처했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분명 달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화학업종지수는 지난 2015년 1월 3677.74로 출발해 같은 해 12월 5346.66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업종지수 상승률은 45.4%이다. 화학업종 지수의 상승에는 국내 화장품주들의 선전이 한몫했으나 화학주들의 주가 상승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이 한화케미칼이다. 같은 기간 한화케미칼의 주가는 130.5%의 폭발적인 상승세를 기록했다. 삼성과 한화의 ‘빅딜’이 과연 한화에 독이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한화케미칼은 어떻게 변했나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작년 4분기 한화케미칼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한 1조9000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844.7% 증가한 1209억원으로 시장기대치에 부합할 전망이다.

싱가폴 쉘(Shell)의 불가항력 선언으로 주요 원재료인 에틸렌 가격이 견조세를 유지해 지난해 3분기 대비 기초소재(석유화학) 부문의 감익이 컸을 것으로 보이지만 4분기에는 리테일과 태양광 부문의 계절적 성수기 영향 등으로 타 석유화학 업체 대비 영업이익 감소는 제한적이라는 판단이다.

▲ 출처:하이투자증권

이 중 주목할 부문은 태양광이다. 태양광 부문은 계절성 성수기에 미국 넥스트에라 향 공급개시 등으로 모듈 출하 물량 증가, 폴리실리콘 가격 하락에 따른 원재료비 감소 등으로 전분기 대비 오히려 증익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한화케미칼의 실적전망이 긍정적으로 제시되는 이유다.

한화케미칼의 실적 개선은 지난해 3분기에 이미 두드러졌다. 3분기 영업이익은 1333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42%, 전년 동기 대비 467% 증가했다. 이는 증권사들의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결과이며 원료인 에틸렌 가격약세로 화학부문이 호조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화케미칼 실적개선의 중추적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세계 5위인 자회사 한화큐셀이 깜짝실적을 견인했기 때문이다.

태양광하면 떠오르는 국내 대표업체는 OCI와 한화케미칼이다. 하지만 두 기업의 태양광 사업 포트폴리오는 다르다. OCI는 폴리실리콘 사업을 위주로 하고 있지만 한화케미칼은 폴리실리콘은 물론 셀, 모듈 등 다운스트림 시장으로 역량을 확대했다.

폴리실리콘 분야만 보면 두 회사 모두 좋지 않지만 이를 원재료로 하는 태양전지 등 제품을 만드는 쪽은 상황이 좋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화케미칼은 OCI 대비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증권업계는 한화케미칼의 자회사인 한화큐셀이 2016년 태양광모듈 수급이 타이트한 가운데 대규모 수주(넥스트에라 향)를 기반으로 매출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한화케미칼의 이익 수준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던 한화그룹의 화학 분야와 태양광사업이 ‘빅딜’을 계기로 전환한 셈이다.

태양광산업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친환경’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폭스바겐 배기가스 사태로 인해 친환경 산업은 더욱 부각돼 자동차산업은 엔진 중심에서 전기차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촉매제가 됐다.

하지만 현재 태양광산업이 전반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문마다 상이한 동향을 보이고 있어 태양광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장기적 측면에서 태양광 부문의 다양한 포트폴리오 구성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 출처:하이투자증권

따라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화케미칼이 태양광 부문에서 경쟁업체인 OCI와 차별되는 모습을 보인 이유도 사업 포트폴리오에 있다. 특히 한화케미칼의 전체 태양광사업 중 태양전지부문의 개선이 주목할 부문이다.

한화케미칼의 태양전지 부문 개선 배경은 말레이시아 한화큐셀의 셀 생산능력이다. 곽진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 한화큐셀 공장 탐방기’ 보고서를 통해 한화케미칼의 미래전망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셀, 모듈은 인력 직접도가 높은 사업인데 말레이시아 공장은 전 설비가 자동화돼 있었다. 당시 한화의 태양광 셀 설비는 중국과 말레이시아가 비숫한 규모였는데 중국 한화솔라원(이전 명칭) 직원은 2500여명인 데 반해 말레이시아 큐셀은 800여명이었다. 이는 분명 원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큐셀이 한화케미칼에 인수되기 전, 독일큐셀은 말레이시아 생산공장 설립에 1조8000억원을 들였다. 하지만 한화케미칼은 2012년 큐셀 설비를 3600억원에 인수해 ‘헐값’에 매입했다. 태양광 업황이 악화된 만큼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지만 분명 한화케미칼은 독일큐셀 대비 투자자금 규모 측면에서 ‘이득’을 본 셈이다.

 

태양전지와 방산업의 ‘동침’

1956년 고순도 단결정 실리콘 제조 방법이 개발돼 벨(Bell) 연구소에서 최초로 4% 효율의 단결정 실리콘 태양전지를 만들었다. 이어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이 군사·안보 목적으로 우주개발 경쟁을 하면서 실리콘 태양전지는 인공위성 전원장치의 중요 핵심 소자로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태양전지를 방산업과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이에 한화와 삼성의 ‘빅딜’을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다. 작은 그림으로 보면 한화그룹은 방산과 화학이라는 각 부문을 육성하는 모습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한화그룹이 주력으로 삼는 방산과 화학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태양전지는 미래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로봇산업과도 연결된다. 최근 시장에서 드론의 부각은 이들을 움직일 에너지원으로 2차전지에 시선을 모으고 있다. 2차전지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태양전지에 대한 관심도 동시에 높아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모든 산업은 사실 방산업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산업은 전쟁과 여기에 쓰이는 화학 소재 등이 기초를 닦았다면 이제는 실생활로 퍼지면서 파생영역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화케미칼의 미래는 단순히 화학, 태양광 등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더 큰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되고 있다.